정권에 반대하는 영화에 출연했다가 향후 활동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출연 요청을 받은 일본 배우들이 연달아 고사해서 결국 우리 배우인 심은경이 주연을 맡게 되었다는 영화 신문기자. 덕분에 주인공 캐릭터의 배경까지 바뀌었다고 한다.(일본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정권에 미운 털이 바뀌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매장시켜버리는 일본의 분위기가 짙게 묻어나는 부분.

 

     영화는 몇 년 전 일본 아베 정권에서 벌어진 사학 스캔들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여기에 단순히 인허가와 부지매입상의 특혜에 더해 비밀스러운 대학 설립 목적 문제까지 덧붙여지면서 문제는 좀 더 심각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에 부담이 되는 이 모든 사건들이 밝혀지는 것을 막고, 혹여나 드러나게 될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묻어버리기 위해 내각정보조사실을 동원한 여론조작이었다.

 

     분명 일본의 이야기지만,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권과 기무사를 동원한 여론조작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루어졌는데, 일본은 그나마 어영부영 다 묻혀버리는 듯. 우리나라였다면 진작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을 텐데, 어지간히 여론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일당독재 국가인 일본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게 진행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들처럼 각자의 일(여론 동향 파악 및 조작)만을 하고 있는 내각정보조사실 사무실의 모습과 이 기구를 이끌고 있는 전직 경찰간부 출신의 실장의 냉철한 모습이 그 분위기를 묘사하는 주요 이미지다. 그 반대편에는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부당한 일들에 분노하는 여기자(심은경)가 있고, 조사실의 일원으로 여론조작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는 외무성 출신의 조사원의 갈등이 있다

 

     ​최근 다양한 문제로 거리가 시끄럽다. 수많은 사람들을 그 거리로 이끌어낸 것은 단연 어떤 것에 대한 분노다.(그 분노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편견에 근거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어떤 이들은 그런 상황을 보고 국론 분열이니, 극한 대치니 하면서 금세 큰일이라도 날 듯 놀라기도 하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명백히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그리고 현 정부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가 뒤섞여있음을 인정하고, 그 욕구를 합법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으니, 조금은 시끄럽더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     실제로 민주주의일 필요는 없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될 뿐이라는, 영화 속 정보기관 수장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민주주의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연약한 꽃이다.(이건 우리나라의 예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거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여간 한숨이 나오는 일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몸에 좋은 것들은 대개 조심히 다뤄야 하는 것을.

 

     문제는 우리 사회에도 영화 속 그 대사를 진심을 담아 하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음침한 음모를 꾸미는 이들은, 마치 곰팡이가 햇볕에 살균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을 공개하는 것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다. 그들이 정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체다. 적들과 싸워야 하니 너희들은 알 것 없다고 말하는 이들을 주의하자. 그런 이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주범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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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10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대착오적인 삶의 주인공들에게
삶의 지평을 넓혀 주는 카를로 로벨리
선생의 책을 추천해 주고 싶군요.

뭐 그들이 책을 읽을 리도 없지만요.

노란가방 2019-12-12 15:14   좋아요 1 | URL
음.. 물리학자이신가요?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