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실제로 일어났던 할리우드의 유명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다만 영화의 많은 부분(특히 결말부분도)은 가상의 이야기다. 예컨대 디카프리오가 맡은 주인공 릭 달튼 캐릭터는 가공인물이다. 하지만 감독은 매우 충실하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할리우드의 풍경과 관행 등을 그려낸다. 영화사적 가치를 포인트로 삼아 감상할 만할 듯.
이런 시대극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인데, 반대로 영화 자체가 그런 ‘그림 보여주기’ 단계에 너무 오랫동안 머문다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별다른 정보 없이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인물과 배경을 묘사만 하면서 진행이 되지 않아 살짝 당황했다. 이후 40분간도 비슷했는데, 그제야 영화표에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3시간이라고 써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그리고도 한참을 더 이런저런 전조들만 보여주다가 마지막 20분 쯤부터 마구 쏟아내기 시작하는 구성. 호흡을 길게 하고 봐야 하는 영화다.
영화사에 대한 조예는 부족하지만,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전반부부터 강렬한 인상으로 등장하다가 후반부에 점점 중요하게 부각되는 히피족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기존 사회의 관습에 저항하는 다양한 조류의 활동들, 작업들을 의미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평화를 사랑하자와 같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면서, 공동생활을 하고, 자신과 자녀들의 이름을 자연물에서 따오고, 꽃을 자주 사용하는 등의 특징적인 외형을 보여준다.
다만 애초에 거대한 혼합주의적 국가인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기 때문인지, 온갖 잡다한 것들이 ‘자유’라는 이름 안에 다 수용된 측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무분별한 환각제, 약물남용, 그리고 영화 속에도 잘 묘사되는 것처럼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폭력’이라는 문제도. 이쯤 되면 그냥 이건 시키는 건 하기 싫고 제멋대로 하겠다는 어리광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철학의 부재, 정확히는 일관성 있는 철학이 없는 상태로, 행동을 우선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일관성의 부재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문제다.
자신들의 폭력성을, 그런 성향을 갖게 만든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는 그 대표적인 예다. 모든 것을 구조적인 문제로 치환해서, 구조를 바꾸면 자연스럽게 다 해결될 것이라는 천진한 대답은, 이들이 얼마나 천진한 사고로 뛰어들었는가를 보여준다. 물론 단지 천진난만을 넘어 도덕과 윤리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했으니 더 문제고.
참고로 영화의 결말은 실제 사건과 사뭇 다르다. 아마도 감독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조금은 과격하게 보이는 그 장면은 아마도 실제 사건에서 희생된 희생자에 대한 일종의 추모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다만 이 장면도 자연스러운 액션이라기보다는 그냥 분풀이(?) 느낌의 작위적 동작들, 딱 그 시대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을 듯한 그림이었다.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해 60년대 할리우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해 나간다는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기대하지는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