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권력 - 혼돈의 시대를 헤쳐가기 위한 정치학 수업
나다 이나다 지음, 송태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자신의 반이 좀처럼 단합되지 않는다는 고민을 가지고 정신과의사인 를 찾아온 학생 ‘A'와의 대화를 통해 권위란 무엇인지, 권력이란 어떤 것인지를 탐구해나가는 책. 마치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떠올리는 진행방식으로, ’는 직접 대답을 해 주는 대신 질문을 통해 ’A‘가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일본 저자가 쓴 심리학, 철학 비스무리한 책들에는 이런 구조가 자주 보인다.

 

     처음 A는 자신의 반 동료들이 단합되지 않는 것은 권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내 는 권위와 권력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로 논지를 이어간다. 대충 정리하자면 권위란 내적인 불안이 동인이 되어 어떤 인물이나 대상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하는 것이고, 권력은 외적인 불안이 좀 더 큰 이유가 된다. , 힘으로 상대방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

 

     이렇게 보면 권력은 좀 더 폭력적이고, 권위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감화력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는 권위든, 권력이든 어린 아이 시기를 지난 성숙한 인간에게는 부정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면 성숙한 판단을 스스로도 내릴 수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다 생각하지 않고 그저 권위에 의존해서 선택하려는 우를 범한다는 것. 그리고 많은 경우 권위에 의존하다보면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어버린다고 덧붙인다.

     그럼 결론은 무엇일까? 개개인이 서로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일치단결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문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단결이 아닌 조화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자발적인 판단과 결정에 의해 전체적으로앞으로 나아가는 상태. 물론 이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느리더라도 (어쩌면 불능하더라도) 이게 옳다면 그렇게 가야지.

 

 

2. 감상평 。。。。。。。

     이런 식의 대화식 구성의 특징은, 나도 모르게 책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는 점이다. 질문을 하는 쪽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달까. 그의 질문은 꼭 내가 궁금한 것을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대화 자체도 저자에 의해 구성된 것인 만큼,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저자의 주장이 보이고, 이에 대한 비판적 사유도 가능해진다.

 

     책을 한 번 다 읽고 다시 읽으면서 퍼뜩 드는 생각은 저자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기초한 권위관, 권력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일체의 권위나 권력의 존재의 타당성을 부정한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권위와 권력을 인정하는 것은 의존적인 모습이자(78), 불안에 굴복한 결과이(85), 이는 어린 아이에게나 어울리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과연 옳을까? 여기서 현재의 인류는 홀로 설 수 있는 성숙한 상태라는 자신감(혹은 교만한)이 엿보이는데, 과연 우리는 그렇게 성숙한상태일까? 그리고 그 성숙함은 무엇이, 혹은 누가 인정하는 것인가(어떤 권위에서 나오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 그대로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절대성을 부정하고 나면 당연히 남는 건 파편화된 개인들뿐이다. 저자는 이를 조화라는 주제로 다시 한 데 묶으려 하고, 그 방법으로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예컨대 교통질서를 지키는 이유는 그것이 전적으로 합리적인 규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79). 여기서 저자는 합리성이 권위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무엇이라고 여기는 듯하지만, 이 또한 입증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다. 오히려 난 인간이란 아무에게도 비난이나 처벌을 받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규칙을 깨고 악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소위 특권층들이 보이는 수준 이하의 언행을 보면,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 안에 떠오르는 악한 충동들을 보면.

 

 

     저자는 권위와 권위의식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생각을 이어나간다. 책에서 권위가 가지는 문제점으로 꼽는 것들은 대개 권위주의가 낳는 부작용들로 보인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좋은 것들도 그것이 하나의 주의(sim)'으로 절대화되는 순간 급격히 성격이 변해버린다. 대개의 경우 특정한 공간과 시간,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긍정적 의의와 기능을 가지는 법인데, 그것을 범위를 벗어나 모든 영역에서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순간 삐걱거림이 시작되는 것이다.(예컨대 평등의 평등주의화가 그렇다)

 

     책이 쓰였던 6~70년대 일본의 정치상황에서는 권위주의 정부의 부작용과 그에 대항하는 강한 극좌투쟁들도 있었으니, 이 책에 실린 것과 같은 권위주의에 대한 강경한 경계심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이 부분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잔재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새겨 읽을 만한 부분이다.

 

     다만 인간은 좋게 설명해준다고 해서 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의나 선, 아름다운 같은 것들은 그저 합의나 조화, 합리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권위를 가진 존재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하는 것이야 말로 합리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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