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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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서울과 맞닿아 있는 가상의 도시 화양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눈이 빨갛게 된 후 며칠 만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고, 마침내 도시 전체가 봉쇄되기에 이른다.

     유기동물을 돌보며 홀로 조용히 살아가던 재형과 그에 관한 반쪽짜리 기사로 재형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윤주, 소방대원인 기준과 간호사 수진, 사이코패스 동해 등의 인물들이 고립된 도시 안에서 겪는 극도의 혼란상을 그린 소설.

 

  

2. 감상평 。。。。。。。

     책장을 한참 정신없이 넘기다가 (1/4?) 문득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나도 의심스럽지만, 오래 전 읽어봐야 할 책 목록에 넣어두었던 제목만 보였고, 정말 작가의 이름은 생각조차 못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이었다. 책 초반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호감이 가지 않는 주요 인물들의 성격, 그리고 책 전체에 깔려 있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실은 이 작가의 책을 앞서 두 권 읽었었다(7년의 밤, 종의 기원). 긴박감이 묻어있는 문장 덕에 금세 읽히긴 했지만(이건 작가로서 좋은 자질이다), 워낙에 독한 이야기들이었기에 읽고 난 후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읽은 두 작품의 주인공이 공통적으로 사이코패스이자 피해망상에 빠져 주변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인간들이었으니까.

 

      “종의 기원보다 앞서 나왔던 이 작품도 다른 두 이야기의 인물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동해라는 인물은 “7년의 밤영제종의 기원유진과 비슷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어 초반 어그로를 강하게 끌고 있다면, ‘재형이라는 인물은 현수’(7년의 밤)처럼 답답하고 좀처럼 실수를 고치지 못해 이야기를 엉클어뜨린다. 덕분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장에 무슨 끈적끈적한 게 묻어있는 듯한 찝찝함이 오래 간다.

 

      앞서 읽었던 두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의미. 이해하기 어려운 잔혹 복수극이나 피해망상에 빠져 광란의 살육을 벌이던 이야기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인간애와 용서, 인간과 동물의 교감, 생태주의, 사회비판의식 같은 것들이 보인다.(그리고 어쩌면 레드콤플렉스에 관한 내용도)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이건 뭘 말하려는 걸까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다만 그걸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악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마찬가지...

 

      작가는 악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는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자연히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강렬한 악을 전면에 배치하면 확실히 눈길을 끌기는 한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단지 묘사가 뛰어나거나 흡입력이 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그런 식이라면 아침 막장드라마가 늘 작품상을 받아야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 단지 눈길을 끌게 만드는 것 이상이 아니라면 오히려 감점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아무리 소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떠받드는 시대라지만, 똥을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걸 보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한 기자(윤주)의 반쯤은 공명심에 취한 특종욕심에 기초해서 낸, 하지만 팩트체크는 제대로 되지 않은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덕분에 기사의 고발 대상이었던 재형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데 실패하고 말았고, 그가 돌보던 유기동물들은 학살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사이코패스인 동해의 음모가 깔려 있었다는 건데, 선의(나름 진실을 드러내겠다는 윤주의 나머지 절반의 마음)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

 

      그렇게 초반부터 비호감이었던 윤주는 얼마 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어쩔 줄 모른 채 분명한 목적 없이 그저 바쁘게 뛰어다니기만 한다. 한편 자기만의 생각에 갇힌 재형은 행동해야 할 때 주저하고, 멈춰야 할 때 뛰어들기를 반복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후회만 반복하는 발전 없는 캐릭터인지라 주인공임에도 그닥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 사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우왕좌왕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그렇게 단순히 반쪽 사실을 담은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인가 싶을 때, 갑자기 등장한 빨간 눈의 전염병은 이야기의 성격을 급격히 바꾸는 동시에 판을 엄청 키운다. 이야기를 읽으며 이 빨간 눈이 뭘 말하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80년 광주가 떠올랐다. 소설 속 가상의 도시는 화양시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불볕이라는 뜻이다. 광주의 빛고을과도 묘하게 매칭되는 데다가, 화양시에 고립되어 군대에 의해 진압되는 시민들의 이미지는 광주에서 일었던 그 일과 묘하게 닮아 있다. 결정적으로 아직도 그들을 빨갱이라고 몰고 가는 이들도 있고.

 

 

     소설은 심각한 재난상황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극도로 무질서해지고 난폭해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상에 기초해 내용을 전개한다. 일단 언론에서 대체로 그런 식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일반인으로서는 그런 선입관을 갖게 되겠지만, 레베카 솔닛이 쓴 이 폐허를 응시하라같은 책들을 보면, 많은 재난의 현장에서 오히려 시민들은 자발적인 질서를 수립해 혼란을 막아내곤 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사실적인 묘사처럼 보이던 이야기는 그야말로 딱 픽션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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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2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에는 전개와 서사 구조가 마음에
들었었는데,

왠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 작위적인 결말도 아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란가방 2019-04-23 14:07   좋아요 0 | URL
장황한 악의 이야기에서 뭘 말하려는 걸까 혼란스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