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예술 - 창조세계의 샬롬을 회복하는 예술의 실천적 본질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신국원 옮김 / IVP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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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기독교적 관점으로 미학을 설명하는 책. 저자는 예술을 오로지 감상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오늘날의 고급예술관을 반박하면서, 예술이 갖는 공()적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세기경에 등장한 새로운(그러나 이제는 주류가 된) 예술에 대한 관점은, 예술이 갖는 다양한 용도들 중 하나에만 과도하게 집중한 것이다.(58-59)

 

     이런 관점은 작품에 대한 심미적 감상 이외의 태도를 배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심미적인 감상 자체를 최고의 목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조물주로 여겨지게 되었다.(101) 그는 다양한 현실적 제약들을 극복하며 투쟁하는(이 과정에서 현대 예술의 다양한 파괴적 모습이 등장한다) 인물이 된 것이다.(107)

 

     이에 대해 저자는 창조 세계의 선함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아래, 예술가가 반드시 자연을 창조를 위한 파괴의 대상으로만 여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술가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이는 책임이라는 단어로 특징 지워진다. 인간은 책임을 지는 존재이며, 이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주변의 자연세계와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부여 받은 존재로(145-151), 무제한의 자유를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151)

 

     저자는 예술계에 샬롬을 바라며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162) 기독교인들은 고급예술속에 짙게 배어 있는 엘리트주의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예술을 통해 그들의 가장 깊은 확신들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364-365)

 

  

2. 감상평 。。。。。。。

     어려운 책을 집어 들었다. 미학. 현대철학의 제 분야들 중에서도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다. 사실 저자와 역자 모두가 유명한 책이니 별 고민 없이 구입을 했지만, 막상 제대로 읽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위의 요약에는 다 적어두지 않았지만, 예술과 아름다움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갖는 구체적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가 한참 진행될 때는 논지를 쫓아가는 데만도 숨이 찼으니까.(서문에 이 책이 전문가들을 위한 게 아니라 훨씬 더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써 있었지만, 난 그 넓은 독자층에도 못 들어가나 보다.)

 

 

     흔히 예술 하면 막연히 어렵고 두려움이 드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잘 모르니까, 말하기도 겁나고, 누가 예술작품이라고 일장 해설이라도 시작할라 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만 끄덕이기 십상이다. 소변기를 갖다 두고도 예술이라고 치켜세우면 딱히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상한 감상적 예술관을 비판하면서, 예술이란 무엇인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칭할 수 있는지를 깊게 탐구해 나간다. 오늘날 일반적인 심미적 감상 중심의 예술은 고작 18세기에나 발생한 것이고,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는 예술의 공공적 성격이 훨씬 더 일반적이었다. 그 모든 배경으로부터 떼어내서 전문가들이나 아는 논리와 단어를 동원해 예술화하는 경향은 생각보다 정당성이 적은 주장이다.

 

     예술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강조는 확실히 예술에 대한 이해에 신선한 자극을 던져준다. 작품에는 그것이 속한 시대적 맥락이 있고, 작가를 비록한 공동체의 제작 목적이 있다. 이런 것들과 완전히 분리된 채로 이루어지는 감상행위는 매우 제한적인 관점이다. 우리도 너무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기독교 관점에서 미학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책 중간중간 실제적인 적용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부분들이 자주 보인다. 관련 부분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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