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0
손보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공상하기를 즐겨 한다. 책을 읽다 문득. 누워 있다가 한없이. 시간 낭비인데도 멈출 수 없다. 중독성이 있다. 미리 걱정하고 나름 방어책을 세우는 일. 가계부를 쓰고 있다. 이미 써 버린 돈을 적어서 무얼 하나 하다가도 계속 쓰게 된다. 한 번 형성된 습관을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핸드폰을 바꿨다. 구형 핸드폰을 오래 썼다. 용량이 작아서 최소한의 앱을 깔아서 썼다. 은행 앱을 겨우 깔아서 필요할 때만 로그인을 했다. 급하게 돈을 보낼 때. 돈을 보내는 일만 자주 일어난다, 어찌 된 게. 지금 핸드폰에서는 수시로 은행 앱을 열어본다. 늘 그대로인 잔고를 들여다본다.

이번 달에는 얼마를 쓰고 다음 달에는 얼마를 써야 할지 고민해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닫는다. 쓸데없다, 이런 짓. 그래봐야 쓸 돈은 쓰고 안 쓸 돈도 쓴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손보미의 소설 우연의 신에는 이런 근사한 말이 나온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라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불안증 환자인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무거운 마음의 살을 줄여주는 일, 소설을 읽은 것은.

우연의 신은 망작이라고 여긴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을 수거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민간 조사원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손보미는 이 소설의 결말을 쓸 때 쾌감을 느꼈을 것 같다. 운명이란 존재하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가 된다.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다. 인간은 그저 앞과 옆, 뒤를 잘 보면서 살아가면 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리 겁을 낼 필요가 없다. 애를 써도 쓰지 않아도 불행한 일은 일어난다. 매 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하나를 선택해서 포기한다. 기회비용을 따지는 일은 우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이 낡고 비루한 세계에서는. 더 나은 선택은 없다.

정해진 규칙 대로 살아가는 민간조사원의 남자는 7년 동안 지킨 루틴을 깨고 일을 받아들인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테러가 일어나고 아는 사람들은 암에 걸려 죽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다. 일이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지키려는 안전선은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이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만 가지고 비행기를 탄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인 입양인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죽기 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품을 정리해 가까운 사람에게 주도록 처리해 놓았다.

소설은 제목대로 흘러간다. '우연의 신'이 장난을 친다. 일은 누군가들의 실수와 착오로 어그러진다.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은 원래의 주인이 아닌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간다. 그는 그 일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둔다.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의 운명을 제멋대로 상상하면서.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잃어버린 걸 찾겠다고? 삶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아. 그냥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못했을 뿐이야. 주어지지 않은 거지. 세상에 그는 그 순간 자신이 다름 아닌 바로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고 나니까, 그의 머릿속에 그녀의 호텔 객실에 남아 있을 화이트 라벨이 떠올랐다.

(손보미, 우연의 신에서)

무언갈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미래를 걱정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겁을 먹고 방어선을 친다. 건강 염려증에 걸리고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고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우연의 신에서 그리는 사건은 완벽한 서사를 맺지 못한다. 소설가 자신의 상상으로 결말을 매듭짓는다. 이야기는 인과, 개연성, 필연, 구성의 지배를 받지 못한다. 소설가라는 사람은 사건 하나를 놓아두고 '우연의 신'이 불러주는 대로 자판을 치고 또 칠 뿐이다. 소설가라도 이야기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

지금 괜찮으면 괜찮다. 커피 주문할 때 오백 원 비싸서 메뉴판 앞에서 고민했다. 이제는 바로 주문한다. 내일의 불행을 미리 끌어와 오늘의 식탁에 올려놓지 않는다. 먹고 쉬고 보는 것. 쉽고 단순한 유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우연의 신에게 대항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 윤대녕 소설집
윤대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대녕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윤대녕만을 읽었던 시간이. 『미란』을 읽고 나서였을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찾았다. 대책 없는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그 대책 없음에 끌려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존재의 시원이라고 누군가는 표현했다. 그런 거창함 때문이 아니라 윤대녕을 읽다 보면 마주하는 생의 서늘함에 반했다. 우연히 불려간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 늦은 새벽 수도관에 서서 내리는 비를 맞는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그들은 삶에 지쳐 있었고 늘 어딘가로 떠나려는 음모만을 꾸몄다. 


필사도 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이라는 소설을.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썼던 노트는 지금 없다. 그렇게 무언가에 몰두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그것은 소설이었고 문장이었고 이야기였다. 일상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업 멘트(?)를 뻔뻔하게 날리는 남자와 그런 수작을 지긋이 바라보는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그들은잠깐 만나다 가도 생의 어두움을 어쩌지 못하고 이별했다. 


새롭게 나온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는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이야기들이 한결같이 어둡고 슬프고 아득하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윤대녕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한국을 떠나려고 했다. 실제 그 일이 있고 나서 잠시 한국을 떠났었다. 「서울-북미 간」, 「나이아가라」, 「경옥의 노래」가 외국 체류에 관련된 소설이다. 작가적인 위기였다. 세월호 사건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상처이고 슬픔이었다.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커다란 배가 그대로 넘어가고 바닷속으로 잠기는 걸 봐야 하는 우리 모두가 참담했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의 소설의 화자들은 죽음과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경험한다. 과거의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를 살아간다고 썼지만 그들은 시간을 버티고 있는 정도이다. 예전에 윤대녕의 소설을 읽었을 때는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라고 여기며 읽었다. 비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소설 속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은 작가가 부러 꾸민 것이 아니라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딸을 졸지에 잃어버리고 남은 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남자.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삼촌의 기억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 노래를 부르고자 했으나 과거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들어간 여자. 증오로써 아버지를 대해야만 하는 남매들. 죽은 자들의 흔적을 치우며 경멸로 삶을 끌고 가는 남자들. 외로운 처지를 알아보고 친구가 되어가는 여자들. 영화배우에서 이제는 건물 관리인으로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 죽어가는 남편에게 생의 마지막 복수를 하는 아내. 


윤대녕을 읽었던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는데도 바로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전히 윤대녕이 그리는 사람들은 허방을 내딛고 끝 모를 장소로 떨어진다. 사랑이라고 느끼는 순간까지도 불안해하고 서로에게 이별을 말할 지점으로 찾아 들어간다. 생은 벼락같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은 없다.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슬퍼해봐야 죽어지지 않는다. 죽겠다고 해도 생이 가만두지 않는다. 살아가라고 삶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등을 떠민다. 떠밀리는 대로 우리는 우리의 자리로 찾아 들어오고야 만다. 


「밤의 흔적」,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대에 관한 이야기. 예전 윤대녕의 소설이 혼자임을 어쩌지 못하고 괴로워했다면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누군가들과 함께 하는 내일을 꿈꾼다. 삶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면 우리를 희망하게 할 수도 있음을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서 말한다.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어린 꿈들에게 우리는 사과하지 못했다. 용서받지 못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잘못을 이야기할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 소설가 윤대녕은 소설로써 잘못과 책임을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요일은 금방 간다.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하루의 반을 써 버린 느낌이 든다. 이불 속에서 누워 있다가 손을 뻗어 전자책을 켠다. 배준의 소설 『시트콤』을 그렇게 읽었다. 일요일. 무언가 재미난 것이 필요했다. 쉽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옆으로 누워서 클릭클릭. 『시트콤』의 시작은 도발적이다. 고등학교 안의 상담실에서 벌어지는 소설은 인물이 자꾸 추가된다. 처음에는 둘이었다가 계속 그 비좁은 상담실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소설의 끝에 가면 왜 이렇게 많은 인물이 상담실에 필요했는지 밝혀진다.


소설의 구성 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 『시트콤』은 완벽한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기숙 학원을 보내려는 엄마와 안 가려는 딸 이연아의 전쟁을 큰 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첫 시작의 배경은 상담실. 애정 행각을 벌이기 위해 찾아든 두 남녀 고등학생이 들어온다. 교무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선생님 무리가 들어온다. 그들이 나가고 연인 관계로 추정되는 선생님이 들어와 뜨거운 사랑의 확인을 한다. 그전에 있던 고등학생은 테이블 밑으로 숨었다. 선생님들이 사랑의 확인을 하려는 순간 다른 인물들이 상담실로 들어온다. 엄마와 이연아, 담임 선생님.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이제 비좁은 테이블 밑에 네 명의 연인이 들어가 있다.


서울대로 목표로 공부 시키려는 엄마는 방학을 맞이하여 연아를 철원에 있는 기숙 학원으로 보내려고 한다. 연아는 반기를 들고 결국 집을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시트콤』은 이야기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결국에는 인물들이 벌이는 난장판이 한 군데로 모인다. 집을 나간 연아는 찜질방으로 간다. 아빠 차를 훔쳐 탄 이웅과 김혁은 우여곡절 끝에 연아가 있는 찜질방으로 흘러든다. 『시트콤』의 주인공 고등학생들은 발랄하고 깜찍한 사건을 일으킨다. 말이 발랄이지 요즘 아이들은 겁도 무서움도 없다는 걸 엉망진창 인물들을 통해 표현한다.


심각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그 사건 안에 있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대사는 가볍다. 진지함을 벗어난 이야기는 한 편의 시트콤을 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오후만 남은 일요일에 읽은 소설 『시트콤』. 심지어 멧돼지까지도 하드캐리로 나오는 소설. 인생을 사는 주체는 나 자신이라는 주제를 슬쩍 끼얹어 놓고 뒤로 치고 빠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소설 『나의 마지막 히어로』의 주인공 리즈는 영화 《록키3》를 보고 인생의 항로를 수정한다. 스물다섯의 그녀는 의사 공부를 하다가 그만두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생활비를 벌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록키 발보아가 클러버 랭과 싸워 챔피언 자리를 되찾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끝나지만 리즈의 삶은 계속된다. 리즈는 망치에 얻어맞은 듯 정신을 못 차린다.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응급 의사가 찾아오고 의사는 리즈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되어 있을 자리였다.


록키 발보아처럼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였다.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록키 발보아처럼 그녀는 공부를 재개할 것이다.

공부를 더 할 것이다.

의과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부를 마칠 것이다.

결심이 섰다.

의사가 될 것이다.

(엠마뉘엘 베르네임, 『나의 마지막 히어로』中에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문장은 짧다. 그래서 소설도 짧다. 짧은 이야기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면 어떨까. 『나의 마지막 히어로』는 대담을 빼면 6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소설이다. 그 안에 한 인물의 생애가 들어있다. 모든 것. 한 사람의 생애. 리즈는 록키에게 반해 그녀가 버려두었던 꿈을 향해 달려간다. 챔피언을 다시 얻은 록키처럼 그녀 인생에도 얻어야 할 것이 있었다. 것이다라고 선언하면서 그녀는 의과대학 시절 공부한 책을 찾으러 부모님의 집으로 간다. 창고가 되어 있는 방에서 책을 찾아오고 일을 그만둔다. 남자친구 미셸과는 헤어진다.


무언가에 영향을 쉽게 받는 사람이 있다.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는 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다. 리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과 사랑에서 고민하지만 그녀는 과감하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록키에게서 찾아낸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한 영화의 주인공이었지만 이후에는 리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도 리즈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화를 보러 간다. 영화배우를 흠모하면서 자신의 꿈에게도 빛을 쐬어준다.


소설 『나의 마지막 히어로』는 살아가다 보면 맞닥뜨리는 절망을 얼마나 잘 피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피하거나 정면에서 마주 보거나. 우리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절망을 마주 보고 희망의 이름으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리즈에게서 삶은 그런대로 살만한 것이라는 긍정을 받아든다.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조연도 단역도 아니다. 관객이 아무도 들지 않아도 상영되는 영화에서 우리는 걷고 달리고 울거나 웃는다. 어느 역할을 정할지는 주인공인 내가 선택한다.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연기해야 할 인물을 공부하고 큐 사인에 맞춰 움직인다.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짧은 소설의 은유는 한 인간의 짧은 생을 의미할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된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정해져 있지만 인생의 길이는 알 수 없다. 『나의 마지막 히어로』는 끝났지만 나의 삶은 이제 시작이다. 것이다라고 끝나는 선언을 준비한다. 『나의 마지막 히어로』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 없는 나의 집
금희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희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읽어 가다 보면 만나는 풍경이 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살아가는 현대판 유목민의 모습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한국에서 다시 중국으로. 금희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륙에서 대륙으로 신산한 삶의 사연을 가지고 떠난다.


그들이 떠나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가지기 위해. 서류와 형식뿐이지만 그네들은 이름 석 자를 집에 새기기 위해 기차를 비행기를 낡은 버스를 탄다.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버린 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무람없이 편견을 내보인다.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실리는 적의와 호의를 이제는 단박에 구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아련한 과거를 더듬는다.


소설은 우리가 살아온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제 소설가 금희는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험으로 글을 썼다. 중국과 한국에서 겪었던 조선족으로서의 삶은 소설로 발화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살아낸 것이 아니다. 사는 것이 소설이 되었다. 소설이 되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청소와 식당 보조 일을 했다. 다시 소설 쓰기로 돌아갔다. 명예와 부 따위는 없다. 그저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아간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겪는 이야기를 엮어가다 보면 어느덧 작가 자신의 지난날을 그려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허구의 세계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해도 서사는 완벽하게 소설가의 과거를 닮아 있다.


책의 처음에 실린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한국어과 강사로 일하는 '나'와 중국인 '닝'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닝'을 '나'는 부러워한다. '닝' 역시 남편과 공동 명의로 집을 가지게 된 '나'의 삶을 동경한다. 집 한 채를 마련하고도 '나'는 그곳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주변인들의 삶에 물음표를 던진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알 수 없음과 알지 못함의 연속이다. 자신이 원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모른 채 방황하는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중간 지대에서 헤매는 소수들의 고뇌를 밀도 있게 그린다. 조선말과 중국말을 전부 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세계에도 완전하게 속해 있지 않다는 절망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봉인된 노래」에서 집안을 들어 먹는 외삼촌에 관한 회상은 우리 민족이 겪어왔던 좌절을 은유한다. 운이 좋지 않다고 자신의 어그러진 인생을 두둔하는 외삼촌의 변명을 들으며 '나'는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느낀다. 남보다 못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외삼촌의 일생을 차갑게 보는 어린 화자는 곧 우리 자신이다. 금희의 문장은 촘촘하다. 생소한 한문이 섞여 있기도 해서 빠르게 읽어나갈 수는 없다.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동시에 중국어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중적인 세계에서 소설가 금희는 문장에 자유를 주는 대신 엄격함을 그대로 표현한다. 금희의 문장이 낯설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과거를 잠시 잊은 것이다. 가난과 상처를 대물림한 예전을 잊고자 노력한 결과가 될 것이다. 낯선 문장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과거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알지 못하는 것은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서사는 우리가 잊고자 했던 과거의 아픔을 그대로 가져온다. 그중에서 「옥화」는 우리를 과거의 상처로 데리고 간다. 북에서 왔다는 여자에게 돈을 꾸어주는 일로 인정을 베푸는 것의 허위를 소설은 낱낱이 밝힌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온정과 배려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교회에서 만난 여인은 홍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청하고 그것이 홍에게만 부탁한 일이 아님이 밝혀진다.


…"왜 내가 줘야 하지?" 홍이 묻자 "가졌으니까" 하고 여자가 대답했다. 홍은 자꾸 옥화로 변하려 하는 여자를 붙들고 물었다. "그래서 줬잖아, 근데도 뭐가 불만이야?" 하면 여자는 매번 꿈속에서 볼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찢어져 올라간 눈으로 홍을 찌뿌둥하니 내려다보았다. "그 잘난 돈, 개도 안 먹는 돈, 그딴 거 쪼꼼 던재준 거 내 한나도 안 고맙다요."

'그딴 거'라니?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홍은 꿈속에서도 가슴이 답답하여 손으로 박박 내리쓸어보았다. "내도 한국 가서 돈 많이 벌어바라, 내는 너들처럼 안 기래." 홍의 몰골을 보고 피식 웃던 여자는 급기야 킬킬대며 배를 부여잡고 웃어대다가 옥화로 변하고 말았다.

(금희, 「옥화」中에서)


금희가 그리는 소설의 인물들은 남녀 구별 없이 떠돌아다닌다. 집이 있음에도 집이 없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고향이 아닌 새로운 어딘가를 꿈꾸며 떠나는 그들은 유랑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든다. 그러나 집을 찾아 떠나는 그들은 좌절하고 만다. 떠나온 그곳과 이곳이 다르지 않음을 잔인하게 깨닫는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주민의 얼굴을 하고서 그들은 다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간다. 홍은 떠나는 여자에게 돈을 빌려주며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홍은 여자를 오해했고 여자 역시 홍의 진심을 오해했다. 오해만을 남겨둔 채 사람들은 이별한다. 하느님만 아시는 믿음은 배반당한다.


결코 대물림하지 않아야할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 이곳과 그곳은 다르지 않다. 격동하는 중국과 한국 사회에서 발붙이고 살아가기는 녹록지 않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벌이는 사업을 위해 돈을 빌리러 떠나는 여정을 그린 「월광무」에서 우리는 지친 아버지의 얼굴을 만난다. "아빠, 어디야?"라고 물어오는 아들의 연락을 받으며 기차와 차량을 갈아타는 유의 시간은 빛이 나다가도 이내 꺼져 버린다. 희망이란 그렇다. 아슴푸레 빛나다가도 사라져 버린다. 달빛 아래 별과 반딧불이가 겨우 반짝이고 있지만 한 걸음 나아갈 수조차 없는 희미한 밝기를 가지고 있다.


소설은 미약한 빛을 쏘아 올린다. 차별과 멸시가 당연시되는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소설가 금희는 이방인의 얼굴로 한국에서 살았다. 소설이 되지 못한 시간을 견디며 자신이 쓰고 싶은 문장을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소설은 힘이 되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없다. 당신의 슬픔을 어루만질 수 있었을까. 나약한 힘마저 없었기에 소설을 썼다.


친동생에게 맡겨 놓은 아들. 그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부터 연락이 와 힘들게 찾아가는 소설 「쓰레기통 위의 쥐」의 시간은 낯설지 않다. 우리가 그랬다.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눈칫밥을 먹여가며 남의 집에 맡겨 놓았었다. 분명한 차별을 견뎠고 적의를 감당해야 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목격한 쥐는 허상이 아니었다. 어떡하든 발버둥 치며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한 자신들이었다.


"허 참, 사람 사는 거 보면……그러네요. 우리는 좀 더 잘 살아보자고 그쪽 나라로 떠나가고, 그쪽은 더 잘 살아보자고 이쪽 나라로 떠나오고……" 박철이도 젓가락을 놓고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흣……" 박철이의 심각한 표정에 여자는 처음으로 피식 엷은 웃음 같은 것을 지어 보였다.

"그래요.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결국 우리는 다 같은 노마드일 뿐이네요."

(금희, 「노마드」中에서)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 국경은 이제 의미가 없다. 산과 강을 경계로 한 지리적인 경계만이 있을 뿐이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삶에서 '집' 한 채를 가지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몽골인들은 현명하다. 가축을 데리고 풀을 찾아 이동하는 자유로운 삶. 생존의 문제로 떠돌아다니는 것이라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던 자유의 이념이 존재한다.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자유를 포기한다. 「노마드」의 박철이는 한국에서 만난 두 여자를 잊지 못한다. 수미와 선아. 그녀들은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돈이라는 불의 앞에서 자유를 포기한다. 중국으로 돌아가 아파트와 가게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번 박철이는 안주할 기회를 엿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변화의 바람이 거센 그곳에서 발붙이고 살 수 있는 여유로움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호적을 옮기는 사무소에서 만난 옛 친구를 아는 척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돌도끼」에서 화자는 사라져간 추억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유년의 기억을 놓아두고 도시로 이주하는 청춘의 얼굴은 늙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거창하게 금희의 소설 속 인물들을 유목민이라고 썼지만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뿐이다. 자유, 정의, 풍요라는 허황된 상징으로 그들을 품으려고 했다. 그들은 가난으로 점철된 과거와 현재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슬픔이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주인공 '나'는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두 개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제대로 된 하나의 세계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나'가 겨우 가질 수 있는 것은 집 한 채. 금희는 집을 가진 이도 가지지 못한 이도 결핍의 시간을 살고 있음을 인물을 통해 형상화한다. 세상에 없다, 나의 집이란. 존재한다고 믿는 믿음만이 겨우 있다. '나'가 집을 사고도 그 안을 꾸밀 기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소유의 개념조차 확고히 가지지 못하고 살았음을 의미한다.


반도라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도 국경 밖을 탈출할 수 없는 우리들. 소설은 국경 밖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조선이라는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의 이름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가는 민족이 있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잊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잊히고 사라진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고 말하는 소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꼭 읽혀야 한다. 다른 삶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부모와 형제와 이웃의 이야기로 현재의 시간으로 불려왔다.


소설가 금희는 소설의 인물들에게 꼭꼭 이름을 지어주고 호명한다. 익명이 아닌 이름과 출생 연도가 있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 무대에 올린다. 경계선에서 서로를 경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설은 내일이라는 미래를 열어준다. 그들이 허물어야 할 벽에서 희미한 빛이 되어주는 금희 작가의 다음 소설을 기대한다. 우리는 서로를 부르기 위해 경계에 서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