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 윤대녕 소설집
윤대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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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윤대녕만을 읽었던 시간이. 『미란』을 읽고 나서였을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찾았다. 대책 없는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그 대책 없음에 끌려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존재의 시원이라고 누군가는 표현했다. 그런 거창함 때문이 아니라 윤대녕을 읽다 보면 마주하는 생의 서늘함에 반했다. 우연히 불려간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 늦은 새벽 수도관에 서서 내리는 비를 맞는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그들은 삶에 지쳐 있었고 늘 어딘가로 떠나려는 음모만을 꾸몄다. 


필사도 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이라는 소설을.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썼던 노트는 지금 없다. 그렇게 무언가에 몰두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그것은 소설이었고 문장이었고 이야기였다. 일상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업 멘트(?)를 뻔뻔하게 날리는 남자와 그런 수작을 지긋이 바라보는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그들은잠깐 만나다 가도 생의 어두움을 어쩌지 못하고 이별했다. 


새롭게 나온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는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이야기들이 한결같이 어둡고 슬프고 아득하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윤대녕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한국을 떠나려고 했다. 실제 그 일이 있고 나서 잠시 한국을 떠났었다. 「서울-북미 간」, 「나이아가라」, 「경옥의 노래」가 외국 체류에 관련된 소설이다. 작가적인 위기였다. 세월호 사건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상처이고 슬픔이었다.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커다란 배가 그대로 넘어가고 바닷속으로 잠기는 걸 봐야 하는 우리 모두가 참담했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의 소설의 화자들은 죽음과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경험한다. 과거의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를 살아간다고 썼지만 그들은 시간을 버티고 있는 정도이다. 예전에 윤대녕의 소설을 읽었을 때는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라고 여기며 읽었다. 비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소설 속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은 작가가 부러 꾸민 것이 아니라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딸을 졸지에 잃어버리고 남은 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남자.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삼촌의 기억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 노래를 부르고자 했으나 과거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들어간 여자. 증오로써 아버지를 대해야만 하는 남매들. 죽은 자들의 흔적을 치우며 경멸로 삶을 끌고 가는 남자들. 외로운 처지를 알아보고 친구가 되어가는 여자들. 영화배우에서 이제는 건물 관리인으로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 죽어가는 남편에게 생의 마지막 복수를 하는 아내. 


윤대녕을 읽었던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는데도 바로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전히 윤대녕이 그리는 사람들은 허방을 내딛고 끝 모를 장소로 떨어진다. 사랑이라고 느끼는 순간까지도 불안해하고 서로에게 이별을 말할 지점으로 찾아 들어간다. 생은 벼락같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은 없다.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슬퍼해봐야 죽어지지 않는다. 죽겠다고 해도 생이 가만두지 않는다. 살아가라고 삶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등을 떠민다. 떠밀리는 대로 우리는 우리의 자리로 찾아 들어오고야 만다. 


「밤의 흔적」,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대에 관한 이야기. 예전 윤대녕의 소설이 혼자임을 어쩌지 못하고 괴로워했다면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누군가들과 함께 하는 내일을 꿈꾼다. 삶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면 우리를 희망하게 할 수도 있음을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서 말한다.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어린 꿈들에게 우리는 사과하지 못했다. 용서받지 못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잘못을 이야기할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 소설가 윤대녕은 소설로써 잘못과 책임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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