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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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세계가 당도한다면 어떨까. 인간의 숙명은 죽음. 그걸 거부한 시간을 살아간다면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까. 김성중의 소설 『이슬라』는 죽음이 사라진 이후를 그린다. 열다섯 살에서 시간이 멈춘 '나'는 백 년 동안 사춘기를 살아간다. 성장이 멈춘 채 어린 얼굴 그대로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어떻게 그런 세계가 도래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임종 직전이었고 숙모는 8개월 된 태아를 뱃속에 넣고 있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의 삶은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다. 곡기를 끊었지만 죽어지지 않았다. 숙모의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사막에 살아가는 '나'와 가족들은 비참한 시간을 경험해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어머니와 누나, 동생은 사막에 비가 내릴 때 집이 무너져 죽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나'는 오로지 죽음만을 바라는 삶으로 변화했다. 마을의 신령한 선인장을 잘라 즙을 먹이면 죽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버지는 선인장을 잘랐다.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이 되고 공식적인 죄수가 되었다. 아무도 죽을 수 없는 곳에서 삶은 형벌이 되었다. '나'는 사막을 떠나기로 했다. 가진 물이 바닥나자 쓰러졌다. 술사로 불리는 이탕카와 아야가 목숨을 구해주었다. 아야와 함께 도시로 여행을 시작했다. 도시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사람들은 죽을 수 없다는 것에 환호하는 대신 중독과 절망에 빠졌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시간과 날짜는 흐르지만 계절은 그대로였다. 꽃은 핀 그대로였다. 완벽해질 줄 알았다. 죽음이 사라지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김성중이 만들어낸 『이슬라』의 세계에서는 절망만이 남았다. 죽기 위해 서로를 고문하고 괴롭힌다. 유사 죽음을 가장하고 육체가 죽을 수 없다면 정신이라도 죽여야겠다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인간의 행복은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묻는 소설 『이슬라』에서 구원은 없다는 비관의 메시지를 받아든다.

섬과 고립되었다는 뜻을 가진 이슬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 선물처럼 도착하여야 할 이슬라.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확실하고 위대한 축복은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너무 먼 세계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는가. 자라지 않는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고 노인이 곡기를 끊는데도. 죽음이란 슬퍼하고 그립고 애달픈 일이 아니라 두렵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김성중은 마법 같은 세계에서 전하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자라지 않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반응해 오고 나는 그걸 모른 척한다. 어른의 나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은 어린이의 연령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취한 선택이다. 죽음이 사라진 『이슬라』의 세계에서 도서관은 도피처 혹은 안식처로 그려진다. 그 안에서 백 년도 못 살고 죽은 인간들이 남긴 책을 무한의 삶에 버려진 사람들이 읽는다. 당신들이 저쪽으로 넘어가도 나는 이곳에 남아 책을 읽는 것으로 불멸을 견디겠다. 『이슬라』는 죽음만이 우리의 절망을 없애는 유일한 구원이라는 것을 말한다. 나는 구원받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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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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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쓰기는 밝은 탁자 위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과의 단절, 고독이라는 깊은 어둠을 거쳐서만 비로소 그것은 나타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들은 단숨에 우리의 시선을 낚아채지만 어떤 문장들은 서서히 그 속에 스며들 것을 요구한다. 그런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우리가 견뎌야 하는 것은 어둠이라는 시간이다.
(장혜령, 『사랑의 단상들』, 「어둠이라는 권리」中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과 함께 한다. 눈 뜨면 전날 읽었던 책을 펼친다.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워밍업. 전자책 리더기로 책을 읽은 뒤부터는 몇 시간이고 어둠 속에 누워서 책 읽기가 가능해졌다.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느라 손목이 아프지도 않다. 암막 커튼 아래에서 게으르게 문장을 훑는다. 바깥세상의 안위는 잊은 채 이야기를 따라간다. 종종 어둠 속에서 읽은 책은 빛이 들어오는 순간 탁, 하고 꺼져 버린다. 서사는 희미해지고 문장은 휘발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을 얻으려는 것이다. 


장혜령의 산문집 『사랑의 단상들』을 읽는 내내 내 방의 불은 꺼져 있었다. 웬만하면 형광등을 켜지 않는 방. 스탠드 불빛 아래이거나 그마저도 꺼져 있는 방에서 책을 읽었다. 십 년 동안 발표할 지면을 기약하지 않으며 쓴 글을 모았다고 했다. 작가가 되려는 마음은 있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으리라. 세상으로 내보내기에는 완벽하지 않은 글. 여행의 기록과 일상의 기억을 모아 문장으로 썼을 그 방도 내내 어두웠으리라. 『사랑의 단상들』은 사랑이란 주제로 묶어가는 끝나지 않은 시다. 에필로그로 글은 끝나지만 사랑의 속성처럼 이 책은 끝나지 않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혼자라서 가능 한 일. 그럼에도 외롭지 않은 일. 책 읽기는 광활한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빛 속에서 책을 읽었다, 그동안. 문장을 이야기를 놓칠까 봐.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안다. 이해한 것보다 놓쳐버린 이야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어떤 문장은 종이 위에서 번져가는 걸 지켜보기만 해도 흘러간다는 것을. 『사랑의 단상들』을 읽으며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좋았지만 전부를 사랑할 순 없었다. 사랑의 정의를 찾아가는 『사랑의 단상들』은 흑백 처리된 과거를 불러왔다.

 

지나고 나면 사랑이었다. 우리의 순간은. 그걸 모른 채 살아가고 죽는다. 죽으면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건너온다는 말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는 만난다.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죽음을 정의하기에는 이 세계에서의 기억과 추억이 너무 많다. 일상을 견디는 힘으로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의 추억과 시간의 잔상을 모아 기록한다. 써야겠다는 의식도 없이 여백에 채워지는 글 때문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말하여질 수 없다. 그저 느끼다가 사라지면 수긍하는 것. 언젠가는 그게 있었지 하며 떠올리는 것. 『사랑의 단상들』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슬프거나 기억의 덫에 빠질 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알 수 없는 시간에 붙잡혀 후회하는 동안 읽었듯 당신도 원인 모를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읽으면 되는 책이다. 우리가 읽은 책이 본 영화가 걸었던 장소는 한 권의 책이 된다. 


출근길, 합정에서 당산으로 향하는 2호선 지하철 안에서 어린 남자아이를 보았다. 내 허리 높이보다 작은 키의 꼬마였다. 아이들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나는 전동차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아이가 어느새 내 앞에 자연스레 끼어들어 있었다. 봄이었다. 바깥의 따스한 햇살이 문안으로 들이쳤다. 그 애가 유리 문에 입술을 맞추며 뭔가를 계속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향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다른 세계를 향해 교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장혜령, 『사랑의 잔상들』, 「낯선 것이 우리를 호명할 때」中에서-


시시각각 나는 다른 세계로 불려간다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다

이 하루는 저 하루와 다르다

어떤 말은 듣지 않는 게 좋다
그 말은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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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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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 장편소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의 주인공 다현이처럼 나도 블로그를 한다. 블로그 히스토리를 눌러보니 2004년 12월 2일에 처음 시작했다. 그날그날의 감상을 적어 올리는 목적이었다. 블로그 기능 중 '지난 오늘 글'이 있다. 예전에 썼던 낯 뜨거운 감성 충만 주책 글을 볼 수 있다. 10년 전 오늘, 7년 전 오늘, 5년 전 오늘 등 과거 속 오늘을 만나는데 새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문장은 엉망인데다 비공개로 쓰는 글들이라 실명이 등장하고 지역과 동네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영화 감상글도 올렸는데 대놓고 영화 더럽게 재미없다, 못 만들었다는 글이 있어(이런 글을 비공개로 안 해놓고 공개로 해 놓았다, 왜 그랬냐) 얼른 비공개로 돌려놓는다.

15년 동안 한 공간을 빌려 꾸려가고 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가상의 곳이지만 한 번도 초기화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블로그 이름도 바꾸지 않았다. 그동안 쓴 글의 수는 1794편. 놀라지 마시라. 공개 글 보다 비공개 글이 많다. 말 못 할 고민이 있으면 글로 남겼다. 검색어로 잡히지 않기 위해 제목은 숫자로만 올렸다. 하루에 많아봐야 한두 명이 방문했다. 그러다 책 관련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다. 자랑은 아닌데 이제는 하루 평균 삼사백 명이 들어온다. 이걸 매일 세고 있는 건 아니다. 블로그에 들어가면 방문객 수가 뜬다. 한 주가 지나면 지난주에 많이 읽은 글이 목록으로 보인다. 보고 싶어 보는 것이 아닌 보임을 당해 보는 것이다.

왜 시작했을까, 블로그를.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의 다현이는 체리새우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 비공개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올리고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 때 은따를 경험한 다현이는 블로그의 주제를 '나'로 잡았다. 외갓집에서 체리새우를 처음 보고 예뻐서 블로그 이름도 체리새우로 정했다. 가곡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다현이는 진지충, 선비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자신만 쏙 빼놓고 대화를 하면서 은따의 세계로 들어갔다. 안다, 그 기분. 사람 앞에 놓고 자기들만 아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눈도 안 마주치는 거지 같은 기분. 다현이는 자신을 은따하는 아이들에게 대놓고 자신을 따 시키는 거냐고 물어본다.

아이들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계속 다현이를 무시한다. 그때 설아가 다가와 아이들이 다현이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현이는 튀지 않으려고 했고 조용히 지내며 중학교로 올라왔다. 설아를 다시 만났다. 설아는 자신의 그룹에 다현이를 끼워 주었다. 그렇게 해서 다현, 설아, 아람, 미소, 병희가 모인 다섯 손가락이 만들어졌다. 단톡방도 만들어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마 그 애들에게 체리새우 블로그를 한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처럼 진지충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가장 예민하고 그래서 아픔도 최강으로 느끼는 시기인 사춘기 극강의 중학교 2학년 화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키는 큰데 다리는 짧고 화장품 사는 것을 좋아하는 여학생, 김다현. 그 나이답게 친구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짝남에게 고백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귀염둥이. 자신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걸 모르는 아이. 평범한 걸 거부한다기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스스로 찾아갈 줄 아는 소녀. 누구라도 소설 속 다현이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과 현재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아이 다현이는 지금의 나가 된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관계 맺는 걸 어려워하는 어른을 위한 소설로 읽을 수 있다.

새 학기 첫날, 다섯 손가락 멤버가 정한 밉상 2위인 노은유와 짝이 된 다현이는 모두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소설은 말한다. 세상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신경 쓸 만큼 시간은 많지 않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해도 시간은 모자란다. 눈치 보지 말고 습관처럼 선물하지 말고 분위기에 휩쓸려 남의 험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건 기본 아니냐고? 그런데 이게 은근히 하기 힘들다. 상대가 기분이 나쁘면 나 때문인 것 같고 그 애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눈치면 사줘야 될 것 같다. 쟤는 이상해라고 말하면 맞아, 맞아 해야지 대화에 참여하는 것 같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이 된 우리의 매일이다. 소설은 명랑한 결말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현이는 비공개 블로그를 공개로 바꾼다. 닫힌 자신의 문을 연다. 친구를 오해하는 일은 이해하는 일로 가기 위함이었음을 알아간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잘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그럼 됐지 뭐."
(황영미,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中에서)

은유 말이 맞다. 수능 공부하는 애들 뒷모습을 보며 연습장에 일기를 쓰고 문장을 옮겨 적던 시간을 지나 대학에 왔다. 떼로 몰려다니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아 늘 혼자 지냈다. 친하게 지낼 뻔했던 몇 명의 사람이 있긴 했는데 멀어졌다. 같이 다니다 보면 햇살이 되어주긴커녕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시끄러워지기만 했다. 나무로 살다 보니 햇살과 바람이 동시에 찾아왔다. 햇살과 바람은 혼자 서 있는 나무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추천해 주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주고 그늘을 펼쳐주었다.

햇살은 블로그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시절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제목을 빌려 왔다.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나는 나에게 이야기할 것이 많았다. 유치하다. 그때 쓴 글들을 보면.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들어도 '지난 오늘 글'을 읽는다.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가며 내년 오늘에 읽을 글을 쓴다. 황영미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를 댓글을 다는 심정으로 썼다고 밝힌다. 소설가는 실제 청소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고민 글에 댓글을 달아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다. 황영미 소설가를 알진 못하지만 그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제일 좋아할 것 같다. 그랬기에 아이들의 고민 글을 읽고 진심을 다해 댓글을 썼을 것이다. 댓글은 소설이 되었다. 그는 돌아가신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소설을 썼다. 엄마는 당선소식으로 답장을 보내왔다는 작가의 말. 최근에 읽은 작가의 말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뭉클하고 가슴 시리다.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블로그에는 책 리뷰를 주로 쓴다. 일기는 일기장에 쓴다. 진짜 종이 일기장에. 책 리뷰와 일상 사진을 올리는 카테고리를 공개 설정해 놓았다. 누구라도 와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서로이웃 신청은 받지 않는다. 안부글과 비밀댓글로 블로그를 팔라는 글이 적히기도 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다. 책을 읽고 글쓰기 훈련을 한다는 심정으로 리뷰를 올리며 나무로 살고 있다.

안부글에는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쓴 글이 있다. 어떤 사람과는 오해가 생겼는데 그 사람은 그동안 내 블로그에 쓴 자신의 댓글을 전부 지우기도 했다. 다현이의 블로그 체리새우에도 친구들이 쓴 댓글과 안부글이 쌓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친구들이 채리새우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이가 멀어져 자신이 쓴 글을 지우는 방식으로 관계를 끊기도 할 것이다. 서운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에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나를 주제로 한 블로그였다. 나의 감정과 일상을 기록하고 보관하기 위한. 나를 사랑하기 위한 일이었다.

다현이를 위한 블로그 꿀팁! 네가 쓴 글에 광고글이 달릴 수도 있어. 그럴 땐 신고하기 버튼을 가볍게 클릭하면 돼. 얼굴 사진은 되도록 올리지 말고. 아, 이미 알고 있다고? 멋지구나. 난 서로이웃 신청은 받지 않고 있어. 대신 네 체리새우 블로그를 이웃추가 할게. 댓글은 안 쓰더라도 좋아요는 누를게. 추천 음악도 잘 들을게.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리뷰도 정성스럽게 쓸게. 너도 내 블로그에 놀러 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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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백 -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
박창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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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우리는 직원연대를 창립합니다. 이제 땅콩 봉지조차 스스로 뜯을 줄 모르는 대한항공의 갑들에게 을들의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항공의 명예를 되찾고 일할 맛나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망친 원흉들을 단죄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박창진, 『플라이 백』中에서)

갑질의 우리말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 갑질은 영어로도 Gapjil이다. 갑질이란 우리말이 국제어가 되었다. 부끄러운 말의 수출이다. 갑질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대한항공이 뜬다. 그 유명한 땅콩 회항 때문이다. 땅콩 한 봉지 때문에 몇 백 명의 승객이 탄 비행기가 제시간에 이륙하지 못했다. 급기야 수석 승무원인 사무장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언론에 사건이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버스도 택시도 아닌(버스도 택시도 그러면 안 되지만) 비행기가 돌아갔다니,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플라이 백』은 그 현장에서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던 수석 승무원 사무장 박창진의 4년여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고 화가 났다. 『플라이 백』은 비행 용어로 회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날 그는 한 사람의 지시에 의해 돌아간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은 그대로 뒤로 돌려졌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타인에 의해서였다. 돌려진 인생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플라이 백』은 갑질에 의해 무너진 그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을 그리고 있다.

그는 피해자였다. 차가운 겨울, 낯선 나라의 공항에서 짐과 함께 남겨져야 했다. 그전에 조현아의 폭언을 비행기 안에서 수십 분 동안 들어야 했다. 마카다미아 땅콩이 봉지째 서비스되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서비스한 여승무원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사무장인 그가 달려갔다. 매뉴얼대로 서비스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일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조현아는 그의 잘못이라는 말로 비행기를 돌려 내리라고 했다. 이후의 시간은 고통이었다. 가해자인 조현아는 언론 플레이를 했고 회사 역시 회유와 압박으로 그를 구석으로 몰아갔다. 국토부 조사위원위는 대한항공 출신으로 포진 되어 있었다.

검찰 조사에서도 그는 변호사 한 명 동석하지 못한 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에 반해 조현아에게 땅콩 서비스를 했던 승무원은 상무와 변호사를 대동했다. 회사는 그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했던 것이다. 죽으려고도 했다. 말기 암 수술을 앞두고 있던 누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자신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을 것이라고 밝힌다. 질 수 없고 끝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는 그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었다. 영어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당했다. 후배 팀장이 그를 박창진 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같은 팀원이 감시를 하고 상부에 보고하기도 했다.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라면. 도망치기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버텼다. 팀장이 아닌 일반 승무원으로 근무를 했고 혼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병이 났다. 이미 정신적으로 불안해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으로 나타났다. 머리에 종양이 생겼다. 회사에 병가 신청을 냈지만 회사는 받아주지 않았다. 수술 날짜를 미뤄야 했다. 그가 수술에 들어가기로 한 날 조현아가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우리 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가해자는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회.

그는 지금도 대한항공에 다니고 있다. 『플라이 백』을 읽으면 대한항공이 얼마나 기가 막힌 회사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직원연대노조를 출범 시키고 지부장을 맡고 있다. 가혹한 시간을 잊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다. 피하지 않고 숨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사회가 건전하고 정의로운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날의 일로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다시 걸음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용기. 그는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인 용기를 내고 있다. 박창진들이 내는 용기가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디 그가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 항공 직원연대노조가 어용노조와 회사에 의해 파괴 당하지 않고 희망의 길로 걸어가기를 응원한다. 나의 무사와 안일을 위한 시간에서 우리의 안녕한 내일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그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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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18 소설 보다
박민정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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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약속을 잡고 장소에 나가 기다려야 하고 흥미 없는 이야깃거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게 좋다,라는 건 나만의 생각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게 좋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을 수는 있다. 소설을 읽어가는 일은 근사하다. 처음에는 문장을 중간에는 이야기를 끝에서는 주제를 따라가는 일. 문지에서 계절별로 소설을 모아서 내는 '보다' 시리즈를 읽으면 한 계절이 끝나가는구나 실감한다. 『소설 보다 겨울 2018』을 읽었으니 겨울이 끝났다고 여기기로 한다.

네 편의 소설은 네 개의 시절. 네 편의 소설은 네 개의 세계. 백수린은 김신식과의 인터뷰에서 사회, 세상, 세계 중 어느 단어가 끌리라는 질문에 세계라고 답했다. 나 역시 그중에서 고르라면 세계라는 단어를 고르겠다. 소설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이기에 이런 근사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어느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하겠는가. 문학이 있기에 가능하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싶은 네 개의 세계에서 전해오는 목소리를 듣는다.

『소설 보다 겨울 2018』에 실린 첫 번째 소설 이야기. 박민정의 「나의 사촌 리사」는 메타 픽션이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아이돌로 활동한 사촌 리사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 하는 화자가 나온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리사는 나이가 들어가는 채로 프리터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있었지만 이제는 없는 영광의 자리를 더듬어 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실패라고 썼지만 실패하기 위해 소설을 쓰는 태도를 그린다.

최근에 좋아하게 된 소설가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이 제일 좋았다. 백수린은 대중적인 조해진 같다. 문장으로 소설을 쓰려는 게 반. 서사를 중심에 두려는 게 반. 반반이 모여 소설이 된다. 프랑스에서 만난 한 인연의 궤적을 소설은 충실히 따라간다. 이방의 얼굴로 만난 서로는 시간이 지나 흐릿한 추억이 된다. 그때를 생각하면 울고 싶어지기도 한다. 세계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작가라면 계속 소설을 읽어가도 좋을 것 같다. 소설의 표현대로 취향이 같은 한국인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세 번째 소설, 서이제의 「미신迷信」은 소설가가 되면 한 번쯤은 써야 할 소재를 가져온다. 과거를 통과한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을 상실의 흔적. 소설의 문장은 그럴지도 모른다와 아니었다를 반복한다. 우리는 우리를 모른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소설은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기를 주저한다. 현재로 넘어온 우리에게 과거란 죽은 자들과의 대화일 뿐이다.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은 죽음 이후를 그리고 있다. 딸아이를 사고로 잃어버린 가족의 현재를 보여준다. 제목처럼 삶은 사라지는 것들에 포함되어 있다. 살아있지만 죽음으로 건너가기 위해 애를 쓰는 어머니와 여행을 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겨울을 그리는 풍경화처럼 다가온다. 하이쿠를 읽는 어머니. 아내가 즐겨듣던 노래 속 가사를 되뇌는 아들. 그들은 시가 되지 못한 사연을 가진 채 겨울 바다에 서 있다.

그렇게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소설 보다 겨울 2018』에 실린 소설은 죽음을 곁에 둔다. 생각해보면 모든 이야기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이란 살고 죽는 것의 변론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생각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소설을 이야기하다 보면 깨닫는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백수린의 소설 「시간의 궤적」에서 그린 인연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람에게 몰두한 어느 시절로 데리고 간다.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을 읽으며 죽음을 책임질 수 없이 살아가는 현재란 지옥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소설은 인식의 도구. 『소설 보다 겨울 2018』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다시 봄이 오다니 놀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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