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백 -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
박창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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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여 우리는 직원연대를 창립합니다. 이제 땅콩 봉지조차 스스로 뜯을 줄 모르는 대한항공의 갑들에게 을들의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항공의 명예를 되찾고 일할 맛나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망친 원흉들을 단죄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박창진, 『플라이 백』中에서)

갑질의 우리말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 갑질은 영어로도 Gapjil이다. 갑질이란 우리말이 국제어가 되었다. 부끄러운 말의 수출이다. 갑질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대한항공이 뜬다. 그 유명한 땅콩 회항 때문이다. 땅콩 한 봉지 때문에 몇 백 명의 승객이 탄 비행기가 제시간에 이륙하지 못했다. 급기야 수석 승무원인 사무장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언론에 사건이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버스도 택시도 아닌(버스도 택시도 그러면 안 되지만) 비행기가 돌아갔다니,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플라이 백』은 그 현장에서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던 수석 승무원 사무장 박창진의 4년여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고 화가 났다. 『플라이 백』은 비행 용어로 회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날 그는 한 사람의 지시에 의해 돌아간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은 그대로 뒤로 돌려졌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타인에 의해서였다. 돌려진 인생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플라이 백』은 갑질에 의해 무너진 그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을 그리고 있다.

그는 피해자였다. 차가운 겨울, 낯선 나라의 공항에서 짐과 함께 남겨져야 했다. 그전에 조현아의 폭언을 비행기 안에서 수십 분 동안 들어야 했다. 마카다미아 땅콩이 봉지째 서비스되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서비스한 여승무원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사무장인 그가 달려갔다. 매뉴얼대로 서비스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일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조현아는 그의 잘못이라는 말로 비행기를 돌려 내리라고 했다. 이후의 시간은 고통이었다. 가해자인 조현아는 언론 플레이를 했고 회사 역시 회유와 압박으로 그를 구석으로 몰아갔다. 국토부 조사위원위는 대한항공 출신으로 포진 되어 있었다.

검찰 조사에서도 그는 변호사 한 명 동석하지 못한 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에 반해 조현아에게 땅콩 서비스를 했던 승무원은 상무와 변호사를 대동했다. 회사는 그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했던 것이다. 죽으려고도 했다. 말기 암 수술을 앞두고 있던 누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자신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을 것이라고 밝힌다. 질 수 없고 끝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는 그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었다. 영어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당했다. 후배 팀장이 그를 박창진 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같은 팀원이 감시를 하고 상부에 보고하기도 했다.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라면. 도망치기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버텼다. 팀장이 아닌 일반 승무원으로 근무를 했고 혼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병이 났다. 이미 정신적으로 불안해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으로 나타났다. 머리에 종양이 생겼다. 회사에 병가 신청을 냈지만 회사는 받아주지 않았다. 수술 날짜를 미뤄야 했다. 그가 수술에 들어가기로 한 날 조현아가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우리 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가해자는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회.

그는 지금도 대한항공에 다니고 있다. 『플라이 백』을 읽으면 대한항공이 얼마나 기가 막힌 회사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직원연대노조를 출범 시키고 지부장을 맡고 있다. 가혹한 시간을 잊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다. 피하지 않고 숨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사회가 건전하고 정의로운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날의 일로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다시 걸음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용기. 그는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인 용기를 내고 있다. 박창진들이 내는 용기가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디 그가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 항공 직원연대노조가 어용노조와 회사에 의해 파괴 당하지 않고 희망의 길로 걸어가기를 응원한다. 나의 무사와 안일을 위한 시간에서 우리의 안녕한 내일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그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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