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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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 장편소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의 주인공 다현이처럼 나도 블로그를 한다. 블로그 히스토리를 눌러보니 2004년 12월 2일에 처음 시작했다. 그날그날의 감상을 적어 올리는 목적이었다. 블로그 기능 중 '지난 오늘 글'이 있다. 예전에 썼던 낯 뜨거운 감성 충만 주책 글을 볼 수 있다. 10년 전 오늘, 7년 전 오늘, 5년 전 오늘 등 과거 속 오늘을 만나는데 새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문장은 엉망인데다 비공개로 쓰는 글들이라 실명이 등장하고 지역과 동네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영화 감상글도 올렸는데 대놓고 영화 더럽게 재미없다, 못 만들었다는 글이 있어(이런 글을 비공개로 안 해놓고 공개로 해 놓았다, 왜 그랬냐) 얼른 비공개로 돌려놓는다.

15년 동안 한 공간을 빌려 꾸려가고 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가상의 곳이지만 한 번도 초기화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블로그 이름도 바꾸지 않았다. 그동안 쓴 글의 수는 1794편. 놀라지 마시라. 공개 글 보다 비공개 글이 많다. 말 못 할 고민이 있으면 글로 남겼다. 검색어로 잡히지 않기 위해 제목은 숫자로만 올렸다. 하루에 많아봐야 한두 명이 방문했다. 그러다 책 관련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다. 자랑은 아닌데 이제는 하루 평균 삼사백 명이 들어온다. 이걸 매일 세고 있는 건 아니다. 블로그에 들어가면 방문객 수가 뜬다. 한 주가 지나면 지난주에 많이 읽은 글이 목록으로 보인다. 보고 싶어 보는 것이 아닌 보임을 당해 보는 것이다.

왜 시작했을까, 블로그를.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의 다현이는 체리새우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 비공개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올리고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 때 은따를 경험한 다현이는 블로그의 주제를 '나'로 잡았다. 외갓집에서 체리새우를 처음 보고 예뻐서 블로그 이름도 체리새우로 정했다. 가곡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다현이는 진지충, 선비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자신만 쏙 빼놓고 대화를 하면서 은따의 세계로 들어갔다. 안다, 그 기분. 사람 앞에 놓고 자기들만 아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눈도 안 마주치는 거지 같은 기분. 다현이는 자신을 은따하는 아이들에게 대놓고 자신을 따 시키는 거냐고 물어본다.

아이들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계속 다현이를 무시한다. 그때 설아가 다가와 아이들이 다현이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현이는 튀지 않으려고 했고 조용히 지내며 중학교로 올라왔다. 설아를 다시 만났다. 설아는 자신의 그룹에 다현이를 끼워 주었다. 그렇게 해서 다현, 설아, 아람, 미소, 병희가 모인 다섯 손가락이 만들어졌다. 단톡방도 만들어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마 그 애들에게 체리새우 블로그를 한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처럼 진지충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가장 예민하고 그래서 아픔도 최강으로 느끼는 시기인 사춘기 극강의 중학교 2학년 화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키는 큰데 다리는 짧고 화장품 사는 것을 좋아하는 여학생, 김다현. 그 나이답게 친구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짝남에게 고백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귀염둥이. 자신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걸 모르는 아이. 평범한 걸 거부한다기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스스로 찾아갈 줄 아는 소녀. 누구라도 소설 속 다현이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과 현재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아이 다현이는 지금의 나가 된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관계 맺는 걸 어려워하는 어른을 위한 소설로 읽을 수 있다.

새 학기 첫날, 다섯 손가락 멤버가 정한 밉상 2위인 노은유와 짝이 된 다현이는 모두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소설은 말한다. 세상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신경 쓸 만큼 시간은 많지 않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해도 시간은 모자란다. 눈치 보지 말고 습관처럼 선물하지 말고 분위기에 휩쓸려 남의 험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건 기본 아니냐고? 그런데 이게 은근히 하기 힘들다. 상대가 기분이 나쁘면 나 때문인 것 같고 그 애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눈치면 사줘야 될 것 같다. 쟤는 이상해라고 말하면 맞아, 맞아 해야지 대화에 참여하는 것 같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이 된 우리의 매일이다. 소설은 명랑한 결말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현이는 비공개 블로그를 공개로 바꾼다. 닫힌 자신의 문을 연다. 친구를 오해하는 일은 이해하는 일로 가기 위함이었음을 알아간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잘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그럼 됐지 뭐."
(황영미,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中에서)

은유 말이 맞다. 수능 공부하는 애들 뒷모습을 보며 연습장에 일기를 쓰고 문장을 옮겨 적던 시간을 지나 대학에 왔다. 떼로 몰려다니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아 늘 혼자 지냈다. 친하게 지낼 뻔했던 몇 명의 사람이 있긴 했는데 멀어졌다. 같이 다니다 보면 햇살이 되어주긴커녕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시끄러워지기만 했다. 나무로 살다 보니 햇살과 바람이 동시에 찾아왔다. 햇살과 바람은 혼자 서 있는 나무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추천해 주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주고 그늘을 펼쳐주었다.

햇살은 블로그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시절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제목을 빌려 왔다.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나는 나에게 이야기할 것이 많았다. 유치하다. 그때 쓴 글들을 보면.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들어도 '지난 오늘 글'을 읽는다.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가며 내년 오늘에 읽을 글을 쓴다. 황영미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를 댓글을 다는 심정으로 썼다고 밝힌다. 소설가는 실제 청소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고민 글에 댓글을 달아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다. 황영미 소설가를 알진 못하지만 그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제일 좋아할 것 같다. 그랬기에 아이들의 고민 글을 읽고 진심을 다해 댓글을 썼을 것이다. 댓글은 소설이 되었다. 그는 돌아가신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소설을 썼다. 엄마는 당선소식으로 답장을 보내왔다는 작가의 말. 최근에 읽은 작가의 말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뭉클하고 가슴 시리다.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블로그에는 책 리뷰를 주로 쓴다. 일기는 일기장에 쓴다. 진짜 종이 일기장에. 책 리뷰와 일상 사진을 올리는 카테고리를 공개 설정해 놓았다. 누구라도 와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서로이웃 신청은 받지 않는다. 안부글과 비밀댓글로 블로그를 팔라는 글이 적히기도 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다. 책을 읽고 글쓰기 훈련을 한다는 심정으로 리뷰를 올리며 나무로 살고 있다.

안부글에는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쓴 글이 있다. 어떤 사람과는 오해가 생겼는데 그 사람은 그동안 내 블로그에 쓴 자신의 댓글을 전부 지우기도 했다. 다현이의 블로그 체리새우에도 친구들이 쓴 댓글과 안부글이 쌓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친구들이 채리새우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이가 멀어져 자신이 쓴 글을 지우는 방식으로 관계를 끊기도 할 것이다. 서운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에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나를 주제로 한 블로그였다. 나의 감정과 일상을 기록하고 보관하기 위한. 나를 사랑하기 위한 일이었다.

다현이를 위한 블로그 꿀팁! 네가 쓴 글에 광고글이 달릴 수도 있어. 그럴 땐 신고하기 버튼을 가볍게 클릭하면 돼. 얼굴 사진은 되도록 올리지 말고. 아, 이미 알고 있다고? 멋지구나. 난 서로이웃 신청은 받지 않고 있어. 대신 네 체리새우 블로그를 이웃추가 할게. 댓글은 안 쓰더라도 좋아요는 누를게. 추천 음악도 잘 들을게.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리뷰도 정성스럽게 쓸게. 너도 내 블로그에 놀러 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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