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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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세계가 당도한다면 어떨까. 인간의 숙명은 죽음. 그걸 거부한 시간을 살아간다면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까. 김성중의 소설 『이슬라』는 죽음이 사라진 이후를 그린다. 열다섯 살에서 시간이 멈춘 '나'는 백 년 동안 사춘기를 살아간다. 성장이 멈춘 채 어린 얼굴 그대로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어떻게 그런 세계가 도래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임종 직전이었고 숙모는 8개월 된 태아를 뱃속에 넣고 있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의 삶은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다. 곡기를 끊었지만 죽어지지 않았다. 숙모의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사막에 살아가는 '나'와 가족들은 비참한 시간을 경험해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어머니와 누나, 동생은 사막에 비가 내릴 때 집이 무너져 죽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나'는 오로지 죽음만을 바라는 삶으로 변화했다. 마을의 신령한 선인장을 잘라 즙을 먹이면 죽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버지는 선인장을 잘랐다.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이 되고 공식적인 죄수가 되었다. 아무도 죽을 수 없는 곳에서 삶은 형벌이 되었다. '나'는 사막을 떠나기로 했다. 가진 물이 바닥나자 쓰러졌다. 술사로 불리는 이탕카와 아야가 목숨을 구해주었다. 아야와 함께 도시로 여행을 시작했다. 도시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사람들은 죽을 수 없다는 것에 환호하는 대신 중독과 절망에 빠졌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시간과 날짜는 흐르지만 계절은 그대로였다. 꽃은 핀 그대로였다. 완벽해질 줄 알았다. 죽음이 사라지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김성중이 만들어낸 『이슬라』의 세계에서는 절망만이 남았다. 죽기 위해 서로를 고문하고 괴롭힌다. 유사 죽음을 가장하고 육체가 죽을 수 없다면 정신이라도 죽여야겠다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인간의 행복은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묻는 소설 『이슬라』에서 구원은 없다는 비관의 메시지를 받아든다.

섬과 고립되었다는 뜻을 가진 이슬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 선물처럼 도착하여야 할 이슬라.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확실하고 위대한 축복은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너무 먼 세계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는가. 자라지 않는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고 노인이 곡기를 끊는데도. 죽음이란 슬퍼하고 그립고 애달픈 일이 아니라 두렵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김성중은 마법 같은 세계에서 전하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자라지 않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반응해 오고 나는 그걸 모른 척한다. 어른의 나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은 어린이의 연령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취한 선택이다. 죽음이 사라진 『이슬라』의 세계에서 도서관은 도피처 혹은 안식처로 그려진다. 그 안에서 백 년도 못 살고 죽은 인간들이 남긴 책을 무한의 삶에 버려진 사람들이 읽는다. 당신들이 저쪽으로 넘어가도 나는 이곳에 남아 책을 읽는 것으로 불멸을 견디겠다. 『이슬라』는 죽음만이 우리의 절망을 없애는 유일한 구원이라는 것을 말한다. 나는 구원받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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