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
수신지 지음 / 귤프레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떡볶이와 만두를 너무 먹었다. 결국엔 체해서 콜라를 마시고 손을 땄다. 외식을 안 하는 대신에 집에서 과식을 하고 말았다. 비는 오고 배도 부르고 그래서 책을 읽는다. 수신지의 『며느라기』의 주인공 민사린은 나와 비슷하다. 생긴 모습이. 눈은 작고 단발머리에 늘 웃는 얼굴이다. 할 말이 많은데도 하지 못하고 웃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발견하는 모습까지도. 인스타와 페이스북에 연재했다더니 만화 구성도 한 컷의 사진처럼 되어 있다. 두툼한 가족 앨범을 넘기는 듯한 기분을 주는 『며느라기』의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아, 골 때리네 하는 생각에 소화가 될 듯 말 듯 하다가 책 뒤편에 실린 사이다 댓글 모음을 읽고 체기가 내려갔다. 손을 딴 게 주효했지만.

책에서 정의하는 '며느라기'는 여성들이 결혼을 앞두거나 결혼을 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으로 인정 욕구가 극에 달하는 시기이다. 예쁨과 칭찬을 받고 싶어서 뭐든지 다 하겠다고 나서는 기간. 사람에 따라 며느라기를 겪는 기간은 다양하다. 무서운 건 며느라기가 끝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사린 씨의 시어머님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며느라기』는 사린 씨가 대학교 때 만난 구영과 결혼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별다른 사건도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소름 끼치고 스릴 만점이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시어머니 생일날. 사린 씨는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전날부터 시집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생애 처음 황태 미역국을 끓인다. 밥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면서 먹고 설거지를 하고 오니 시집 식구들은 과일을 다 먹었다. 시어머니는 남은 사과를 함께 처리하자고 한다. 이런. 갈변한 사과를 누가 먹고 싶다고. 허 허 참 나.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사린 씨. 일주일 출장을 간다고 하자 자기 아들 밥해줄 사람이 없으니 핑계를 대서 가지 말라고도 한다. 아들이 부엌에 들어오면 이런 일하는 거 아니라며 당장 나가라고 한다. 사린 씨는 점점 시집 부엌의 지박령이 되어간다. 시어머니가 사린 씨에게 준 선물은 리넨 소재의 앞치마이다.

잔잔하게 사린 씨의 일상을 표현하는데 무심하게 툭툭 사린 씨의 감정을 그리는데 슬프다. 사린 씨는 지금 며느라기를 겪고 있다. 이런 농담이 떠오른다. 아내가 아이를 낳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 자가 들어가는 모든 걸 싫어한다. 시집. 시어머니. 시누이. 시아버지. 시동생 등 등등. 눈치 없는 남편은 나는 시 자가 안 들어가네 하고 좋아한다. 그러자 아내가 너는 시XX이잖아 했다는 무시무시한 농담. 구영 씨는 설날 처가에 갔다가 돌아와 지친 사린 씨에게 다시 저녁 먹으러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사린 씨는 거절한다. 시집에 가면 다시 밥을 차리고 치우는 무한 루프에 빠질 게 뻔하니까.

누가 누구에게 준 며느라기일까. 사린 씨의 꿈은 그게 진짜 꿈이었을까. 사춘기도 극복 못해서 미숙한 인간으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데 며느라기까지 겪어야 한다니 암담하다. 며늘아기에서 나온 며느라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며늘아기는 며느리를 귀엽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고 보니 사위아기라는 말은 없네. 사위는 귀엽게 보지 않는 걸까. 귀여워해 줘도 좋을 텐데. 사위를 귀엽게 이르는 사위아기라는 말이 만들어지면 모두 귀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사위아기에서 파생된 말로 『사위라기』라는 만화가 나오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냉동실에 잠들어 있는 떡과 만두를 냄비에 한가득 끓여 먹었다. 토요일 밤은 모든 게 느슨해진다. 밥과 과자를 배부르게 먹어도 콜라를 마셔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한 주를 열심히 산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버텨냈다는 마음에. 이런저런 행복한 마음을 이어가고자 책을 펼쳤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단숨에 읽었다. 재미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인 가족이 기본 가족 구성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형태의 가족들이 등장하고 있다. 1인 가구는 흔해졌고 이제는 2인 가구, 그것도 필요와 계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족이 나왔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트위터로 알게 된 카피라이터 김하나와 잡지 에디터 황선우의 동거 기록을 담아내고 있다. 각자 혼자 살고 있다가 집을 알아보고 대출을 해서 망원동에 덜컥 아파트를 구매했다. 황선우의 표현대로라면 생애 가장 큰 지름을 한 것이다.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두 여자가 함께 산다니, 나라면 절대 시도조차 하지 않을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흥미로웠다. 대체 어떤 사람들인 거야 하는 마음에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으로 가는 내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어 내려갔다.

김하나는 자신의 가족 형태를 분자 가족이라고 말한다. 여자 둘(W2)과 고양이 둘(C2)이 이루어진 각각의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된 가족 형태(W2C2). 김하나는 요즘 말로 미니멀리스트. 황선우는 요즘 말로 맥시멀리스트. 따로 살았을 때 김하나는 종종 황선우의 집에 가서 그야말로 물건들의 천국에 가서 천사 노릇을 했다. 망가진 물건을 수리하고 청소를 했다. 그러다 의기투합해서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30평 대 아파트였는데 이사 첫날 황선우의 짐이 들어오는 순간 김하나는 도망가고 싶었다고 밝힌다.

두 개 있는 물건은 하나만 남기고 서로의 영역을 정해서 정리를 해 나갔다. 김하나의 서랍에서 셔츠 몇 벌을 빼고 황하나의 옷을 넣어주는 식으로. 물건 하나를 들이기 전에는 황선우도 고민을 한다. 그밖에 청소를 포함한 집안일하는 것에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타협하고 받아들인다. 황선우의 글에서 많은 공감을 하고 배웠다. 여자 둘이 산다고 하는 말에 가지는 사람들의 편견과 결혼하지 않는 자신에게 가하는 오지랖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점에서 말이다. 여자 둘이 사는 가족의 형태에 대해 장단점을 조곤조곤 알려준다. 바쁜 황선우는 일주일에 한 번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받기로 한다. 네 시간이 기본이었는데 어느 날 일찍 들어갔더니 네 시간을 채우지 않고 도우미 분이 가버렸단다.

윗집에서 물이 새서 고쳐 주기로 했는데 주인아저씨의 태도가 싹 바뀌는 에피소드 역시 한국 사회가 가지는 더러운 편견을 보여준다. 결혼하지 않는다. 여자 둘이 산다. 사람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납득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간의 사정과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김하나와 황선우가 오지라퍼들에게 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지 밝히는 책이다. 둘 다 글을 잘 쓴다. 그래서 김하나의 책 『힘 빼기의 기술』을 샀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남에게는 관심이 없다. 일회성 호기심만 있을 뿐이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싫어하는 것에는 대화를 요구하면서 그들은 살아간다.

노후를 준비하는 게 나중에 차릴 가게에 틀 음악을 고르는 것이라니. 책의 말미에 나오는 생활동반자법의 발의를 지지한다. 정해진 규율에 따르지 않을 때 가해지는 폭력과 의아함에서 놓여날 수 있는 법이다. 다양성과 새로움이 우리를 지켜 나간다. 여자 둘이 셋이 넷이 살아도 특별한 것이 아닌 내일로 가는 길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놓여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서점사에서 독서 기록을 내주었는데 지난 몇 년간 가장 많이 산 작가의 책은 마스다 미리였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에세이와 만화로 간결하게 표현해 내는 마스다 미리. 국내에 번역된 책은 모조리 사서 읽었다. 이번에 나온 『여탕에서 생긴 일』은 어린 시절 욕실이 없는 집에서 살았던 마스다 미리의 목욕탕 여정기가 담겨 있다. 세 모녀가 매일 목욕탕을 다닌다. 늦은 시간에 갈 때도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는 음료수 하나를 사서 나눠 먹는 훈훈한 풍경이 있다. 여탕에서 벌어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의 순간이 담겨 있다.

얼마 전까지 나도 일주일에 한 번인 일요일에는 목욕탕을 갔다. 사람이 많은 오전 시간을 피해서 느지막이 오후 시간에 갔다. 목욕 바구니를 들고 뿌연 증기가 오르는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사람이 많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조용히 몸을 씻는다. 안경을 벗고 들어가니 자세한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안경을 벗어서 적나라한 모습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머쓱했던 기억이 있다. 안경을 쓰지 않고 탕 안에 들어갔다. 음료수가 놓여 있는지 모르고 다가갔다가 무섭게 생긴 아줌마에게 혼이 났다. 물이 튀기면 어쩔 거냐고 하면서.

괜히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몸무게를 쟀다. 차이도 없었는데 살이 빠져 있길 바라면서. 간혹 운이 좋으면 옆에서 씻던 사람과 서로 등을 밀어주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팔이 닿는 곳까지만 등의 때를 밀고 나왔다. 먼저 말을 걸 주변이 없어서. 목욕탕에 관한 것으로 에세이를 쓰고 만화를 그리다니 과연 마스다 미리는 일상 포착의 대가이다. 읽으면서 의아했던 건 벌거벗은 아줌마 둘 사이에 카운터 청년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는 것이다. 일본 목욕탕은 한국과 다른 구조로 되어 있나 보다.

아기가 있는 엄마들은 아기를 아기 침대라는 곳에 두고 목욕을 하러 들어간다. 그러면 카운터 아주머니가 와서 우는 아기에게 우유병을 물려주고 달래주기도 한다. 이곳과는 다른 새로운 목욕탕의 풍경이다. 만화책이 놓여 있어서 만화책을 보기도 한다. 유년 시절 속 목욕탕의 정취와 감정을 그리운 마음으로 담아낸다. 여자들만 있는 공간. 은근히 자리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목욕 바구니를 놓아둘 수 있는 목욕탕 단골이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여탕에서 생긴 일』을 샀더니 센스 있게 때수건을 굿즈로 챙겨 주셨다.

때수건 굿즈를 받자마자 때를 밀었다. 이제는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전국노래자랑이 틀어져 있고 속옷만 입은 여자들이 둘러앉아 양푼에 밥을 비벼 먹던 곳. 엄마와 함께 온 아이는 바나나 우유를 먹고 할머니는 손톱과 발톱을 깎던 곳. 때를 박박 밀어 까끌까끌해진 몸의 기분 좋은 감촉을 느끼며 목욕탕을 나서면 일주일을 열심히 살아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집에 가서 밥을 왕창 먹고 낮잠을 잤다. 어떤 날에는 양말을 벗지 않고 그대로 목욕탕으로 들어가 양말이 젖었던 때도 있었다.

『여탕에서 생긴 일』을 읽으며 그리운 기억을 불러올 수 있었다. 나라는 달라도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의 하루는 비슷했다. 어떤 음료를 마실까 고민하고 수압이 좋은 곳은 어딘지 탐색해서 그 자리에만 앉는다. 목욕탕에 가는 길에 학교 친구를 만나면 피해 가던 어린 마스다 미리. 집에 욕실이 없다는 걸 들키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수줍고 내면적인 어린이는 자라서 목욕탕을 다녔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낸다. 추운 겨울 그곳에 가면 조건 없이 나를 환대해 주는 온기가 있었다. 발그레한 얼굴로 나와서 냉장고 앞으로 다가가 알록달록한 음료수를 구경했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기억이 『여탕에서 생긴 일』에는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늘 꾸던 꿈이 있다.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날개도 없이 텅 빈 하늘을 날았다. 꿈이라서 그런가 무섭지 않았다. 빌딩 위를 날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깨고 나면 아쉬웠다. 한 번쯤 생각해 보았다.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면 어떨까 하고.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는데 날아다니고 싶다니. 현실의 꿈은 터무니없다. 구병모의 소설 『버드 스트라이크』에는 하늘을 나는 인간이 나온다. 터무니 없는 현실을 사는 인간의 꿈은 소설에서 이루어진다. 익인과 인간의 세계를 특별함이 아닌 보통의 평범함으로 구축한다. 구병모의 놀라운 소설적 기법이 더해지면서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 『버드 스트라이크』는 환상과 모험의 이야기이다.

사막에 한 사람이 표류한다. 시험 비행을 나왔다가 사막에 불시착한 것이다. 생명이 꺼져갈 때쯤 누군가 다가온다. 거대한 날개가 그의 몸을 감는다.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진다. 비오는 다른 익인과는 다르게 날개가 작다. 아버지에게 그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아버지는 비오가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고 충고한다. 이야기는 다시 다음 장면으로 연결된다.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날아든 익인들. 그들은 청사를 습격한다. 원하는 것을 미처 말하지 못하고 비오만이 경비병들한테 잡힌다. 왜 이곳까지 날아와 피해를 입혔는지 말해야 하지만 비오는 말 할 수가 없다. 그때 인간 세계의 책임자인 시행의 딸이 익인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들어왔다가 비오의 인질이 된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종족인 익인은 인간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산물을 인간에게 내다 판다. 인간들은 갈수록 더한 것을 요구한다. 익인과 인간은 하나의 세상에서 공존을 꾀할 수 있을까. 비오의 인질이 된 시행의 딸, 루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구병모는 소설 세계에서 알아주는 마법사로 통한다. 환상과 모험, 현실과 꿈의 중재자로서 구병모는 완벽한 소설의 세계를 완성한다. 인간이 흠모하는 특별함은 익인들에게는 평범함이었다. 대체 하늘을 어떻게 날고 날개는 몸의 어느 부분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서 불법을 저지르는 미오의 행동을 통해 구병모는 조화와 공존, 연대를 이야기한다.

소설의 결말로 나아갈수록 비오와 루의 염원은 날것의 희망으로 연주된다. 그들이 서로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하늘로 나아가는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구병모는 힘찬 문장과 서사로 소설을 끌고 간다. 단지 하늘을 나는 흥미로운 인물이 나오는 것으로 극적인 재미를 주지 않는다. 다르다는 것과 낯설다는 것으로 서로를 소외시키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버드 스트라이크』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실험적이고 파괴적인 소재와 인물을 창조하는 구병모의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든다.

물리적으로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다. 혹시 모를 일이다. 우리 몸속에 날개가 숨어 있을지. 날개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단 한 번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기 위해 날개를 펼칠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우리조차 모르는 날개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 소설이다. 현실과 꿈이 충돌할 때 꿈의 길로 인도해 줄 날개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좌절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지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땀 흘리는 소설 땀 시리즈
김혜진 외 지음, 김동현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첫 회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편의점 알바생과 사장이 근로감독관 조진갑 앞에서 알바비로 옥신각신한다. 조진갑은 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고등학생 알바생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여주며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 학생은 울면서 말한다. 이런 동정이 아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고. 후에 학생은 떼인 돈 받아준다는 갑을 기획을 통해 알바비를 받아낸다. 정당하게 일을 하고 돈을 받겠다는데 그걸 못 준다고 하는 어른.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알아서 합의하라고 하는 어른. 어디에도 어린 학생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란 존재는 없었다.

현직 선생님들이 직접 읽고 엮은 창비 교육에서 나온 『땀 흘리는 소설』에서도 드라마와 비슷한 장면들이 나온다. 드라마와 소설은 허구이지만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여덟 편의 소설을 모은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부디 사회에 나가서 약자로서 고통받고 살지 말라는 다정한 선생님들의 응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학교 수업에서는 가르치지 못한 것. 정규 수업을 하느라 냉혹한 현실에서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미안함이 『땀 흘리는 소설』에 담겨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받는 사람이 있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며 나는 프로다를 외치는 초년생이 있다. 공무원 공부를 하는 두 자매의 하루 동안의 어색한 서울 입성기를 그리고 슈퍼우먼을 원하는 직장에 맞추기 위해 트윈 로봇을 주문하는 엄마가 있다. 하루라도 욕을 듣지 않으면 이상한 날로 여기며 살아가는 콜센터 직원의 수다와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나 꿈을 가져보기도 전에 포기해야 하는 이야기. 회사에서 하라는 임상 실험에 참가했다가 도리어 전염병 환자로 취급받는 회사원과 알바생을 자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까지 여덟 편에 담긴 이야기는 21세기 노동 소설에서도 최전방을 그리고 있다.

장강명의 소설 「알바생 자르기」를 읽기 전까지 5인 이상 근무지는 4대 보험 가입이 필수이며 해고 통보 시 서면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알지 못했다. 낯선 세계의 법률이었고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규율이었다. 혜미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최 과장이 얄밉기까지 했다. 김애란의 소설 「기도」를 읽으며 웃으면 안 되는데 웃어 버렸다.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김애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장면 때문이다. 언니에게 베개를 전해주기 위해 서울대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나'의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 왠지 모르게 그들 모두가 서울대학교 학생처럼 느껴진다. 존경하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존경심이 일어난다'라는 마음속 생각 장면 때문에.

시급 17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여섯 시간을 꼬박 일해서 3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았다. 그걸 받아서 책 사고 빵 사 먹고 옷도 사 입었다. 나의 시간과 여유는 소비로써 자꾸 빠져나갔다. 세상은 땀 흘리는 것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한 사람들 다 나오라고 그래라고 외치고 싶은 날들이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진짜 알아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가 『땀 흘리는 소설』에는 나온다. 편견과 차별과 약자에 대한 횡포 없이 정의와 용기, 연대가 뿌리내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자꾸 지치지 않고 꿈을 꾸는 것에는 어떠한 걸림돌도 없다는 것을 학교에서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

엮은이의 말 중에서 젊은 세대와 읽을만한 노동 선집이 없어 이 책을 기획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70~80년 대의 오래된 서고를 뒤질 수 없어 21세기에 나온 소설 중 노동과 직업을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을 골랐다고 한다. 과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사회는 바뀌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처우는 개선되었을까. 근로감독관이 주인공으로 활약을 펼치는 드라마가 나오고 '갑과 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의 'N 포 세대'가 유행어가 되는 시절이다. 변한건 없는데 그럼에도 변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 이렇게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노동에 관한 소설을 모은 『땀 흘리는 소설』이 나온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