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소설 땀 시리즈
김혜진 외 지음, 김동현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첫 회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편의점 알바생과 사장이 근로감독관 조진갑 앞에서 알바비로 옥신각신한다. 조진갑은 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고등학생 알바생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여주며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 학생은 울면서 말한다. 이런 동정이 아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고. 후에 학생은 떼인 돈 받아준다는 갑을 기획을 통해 알바비를 받아낸다. 정당하게 일을 하고 돈을 받겠다는데 그걸 못 준다고 하는 어른.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알아서 합의하라고 하는 어른. 어디에도 어린 학생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란 존재는 없었다.

현직 선생님들이 직접 읽고 엮은 창비 교육에서 나온 『땀 흘리는 소설』에서도 드라마와 비슷한 장면들이 나온다. 드라마와 소설은 허구이지만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여덟 편의 소설을 모은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부디 사회에 나가서 약자로서 고통받고 살지 말라는 다정한 선생님들의 응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학교 수업에서는 가르치지 못한 것. 정규 수업을 하느라 냉혹한 현실에서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미안함이 『땀 흘리는 소설』에 담겨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받는 사람이 있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며 나는 프로다를 외치는 초년생이 있다. 공무원 공부를 하는 두 자매의 하루 동안의 어색한 서울 입성기를 그리고 슈퍼우먼을 원하는 직장에 맞추기 위해 트윈 로봇을 주문하는 엄마가 있다. 하루라도 욕을 듣지 않으면 이상한 날로 여기며 살아가는 콜센터 직원의 수다와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나 꿈을 가져보기도 전에 포기해야 하는 이야기. 회사에서 하라는 임상 실험에 참가했다가 도리어 전염병 환자로 취급받는 회사원과 알바생을 자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까지 여덟 편에 담긴 이야기는 21세기 노동 소설에서도 최전방을 그리고 있다.

장강명의 소설 「알바생 자르기」를 읽기 전까지 5인 이상 근무지는 4대 보험 가입이 필수이며 해고 통보 시 서면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알지 못했다. 낯선 세계의 법률이었고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규율이었다. 혜미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최 과장이 얄밉기까지 했다. 김애란의 소설 「기도」를 읽으며 웃으면 안 되는데 웃어 버렸다.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김애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장면 때문이다. 언니에게 베개를 전해주기 위해 서울대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나'의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 왠지 모르게 그들 모두가 서울대학교 학생처럼 느껴진다. 존경하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존경심이 일어난다'라는 마음속 생각 장면 때문에.

시급 17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여섯 시간을 꼬박 일해서 3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았다. 그걸 받아서 책 사고 빵 사 먹고 옷도 사 입었다. 나의 시간과 여유는 소비로써 자꾸 빠져나갔다. 세상은 땀 흘리는 것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한 사람들 다 나오라고 그래라고 외치고 싶은 날들이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진짜 알아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가 『땀 흘리는 소설』에는 나온다. 편견과 차별과 약자에 대한 횡포 없이 정의와 용기, 연대가 뿌리내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자꾸 지치지 않고 꿈을 꾸는 것에는 어떠한 걸림돌도 없다는 것을 학교에서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

엮은이의 말 중에서 젊은 세대와 읽을만한 노동 선집이 없어 이 책을 기획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70~80년 대의 오래된 서고를 뒤질 수 없어 21세기에 나온 소설 중 노동과 직업을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을 골랐다고 한다. 과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사회는 바뀌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처우는 개선되었을까. 근로감독관이 주인공으로 활약을 펼치는 드라마가 나오고 '갑과 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의 'N 포 세대'가 유행어가 되는 시절이다. 변한건 없는데 그럼에도 변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 이렇게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노동에 관한 소설을 모은 『땀 흘리는 소설』이 나온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