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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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점사에서 독서 기록을 내주었는데 지난 몇 년간 가장 많이 산 작가의 책은 마스다 미리였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에세이와 만화로 간결하게 표현해 내는 마스다 미리. 국내에 번역된 책은 모조리 사서 읽었다. 이번에 나온 『여탕에서 생긴 일』은 어린 시절 욕실이 없는 집에서 살았던 마스다 미리의 목욕탕 여정기가 담겨 있다. 세 모녀가 매일 목욕탕을 다닌다. 늦은 시간에 갈 때도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는 음료수 하나를 사서 나눠 먹는 훈훈한 풍경이 있다. 여탕에서 벌어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의 순간이 담겨 있다.

얼마 전까지 나도 일주일에 한 번인 일요일에는 목욕탕을 갔다. 사람이 많은 오전 시간을 피해서 느지막이 오후 시간에 갔다. 목욕 바구니를 들고 뿌연 증기가 오르는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사람이 많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조용히 몸을 씻는다. 안경을 벗고 들어가니 자세한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안경을 벗어서 적나라한 모습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머쓱했던 기억이 있다. 안경을 쓰지 않고 탕 안에 들어갔다. 음료수가 놓여 있는지 모르고 다가갔다가 무섭게 생긴 아줌마에게 혼이 났다. 물이 튀기면 어쩔 거냐고 하면서.

괜히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몸무게를 쟀다. 차이도 없었는데 살이 빠져 있길 바라면서. 간혹 운이 좋으면 옆에서 씻던 사람과 서로 등을 밀어주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팔이 닿는 곳까지만 등의 때를 밀고 나왔다. 먼저 말을 걸 주변이 없어서. 목욕탕에 관한 것으로 에세이를 쓰고 만화를 그리다니 과연 마스다 미리는 일상 포착의 대가이다. 읽으면서 의아했던 건 벌거벗은 아줌마 둘 사이에 카운터 청년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는 것이다. 일본 목욕탕은 한국과 다른 구조로 되어 있나 보다.

아기가 있는 엄마들은 아기를 아기 침대라는 곳에 두고 목욕을 하러 들어간다. 그러면 카운터 아주머니가 와서 우는 아기에게 우유병을 물려주고 달래주기도 한다. 이곳과는 다른 새로운 목욕탕의 풍경이다. 만화책이 놓여 있어서 만화책을 보기도 한다. 유년 시절 속 목욕탕의 정취와 감정을 그리운 마음으로 담아낸다. 여자들만 있는 공간. 은근히 자리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목욕 바구니를 놓아둘 수 있는 목욕탕 단골이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여탕에서 생긴 일』을 샀더니 센스 있게 때수건을 굿즈로 챙겨 주셨다.

때수건 굿즈를 받자마자 때를 밀었다. 이제는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전국노래자랑이 틀어져 있고 속옷만 입은 여자들이 둘러앉아 양푼에 밥을 비벼 먹던 곳. 엄마와 함께 온 아이는 바나나 우유를 먹고 할머니는 손톱과 발톱을 깎던 곳. 때를 박박 밀어 까끌까끌해진 몸의 기분 좋은 감촉을 느끼며 목욕탕을 나서면 일주일을 열심히 살아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집에 가서 밥을 왕창 먹고 낮잠을 잤다. 어떤 날에는 양말을 벗지 않고 그대로 목욕탕으로 들어가 양말이 젖었던 때도 있었다.

『여탕에서 생긴 일』을 읽으며 그리운 기억을 불러올 수 있었다. 나라는 달라도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의 하루는 비슷했다. 어떤 음료를 마실까 고민하고 수압이 좋은 곳은 어딘지 탐색해서 그 자리에만 앉는다. 목욕탕에 가는 길에 학교 친구를 만나면 피해 가던 어린 마스다 미리. 집에 욕실이 없다는 걸 들키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수줍고 내면적인 어린이는 자라서 목욕탕을 다녔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낸다. 추운 겨울 그곳에 가면 조건 없이 나를 환대해 주는 온기가 있었다. 발그레한 얼굴로 나와서 냉장고 앞으로 다가가 알록달록한 음료수를 구경했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기억이 『여탕에서 생긴 일』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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