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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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아침 나는 살아있다.
날이 흐리다. 햇빛이 들어올까 싶어 커튼을 열어두었다.
고구마 두 개와 냉장고에 오래 있는 과일을 구출해주려고 두유와 함께 먹었다.
조금 있으니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다행이다.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에는 카프카의 말을 빌려 희망을 이야기한다. '희망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 그런데 그 희망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야.' 2017년 7월에 암 선고를 받은 김진영은 죽기 전까지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죽어가는 자의 기록은 얼마나 처연한가. 삶의 끝을 알면서도 담담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끝내 사랑과 사랑을 잃지 않고 떠나갔다.

어디에나 있지만 내게는 없는 것 같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끝까지 찾아낸다.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향해간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살아있음에 안도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미움을 가지지 말고 집착을 버려두기. 욕심보다는 평정을. 김진영은 『아침의 피아노』에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을 놓치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감정에 충실해지려고 자신을 다잡는다. 무너지지 않는다.

바울은 옥중 편지에 썼다.
"내 마음을 고백하자면 저는 죽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소망을 뒤로 미룹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언젠가 강의에서 말했었다. 나를 위해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그러나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고.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中에서)

자존감이 바닥일 때가 있다.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 한없이 작아질 때가.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이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나의 쓸모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삶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 사랑은 하나로도 충분하다. 내 안에 담긴 사랑을 지켜내는 삶. 당신은 필요한 존재입니까 라는 물음에 사랑으로 남겠습니다고 말해주는 삶. 죽음이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 오직 희망 없는 삶만이 나를 무너지게 한다.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내가 끝까지 사랑했음에 대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
내 마음은 편안하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中에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삶.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며 『아침의 피아노』는 쓰인다. 싸우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으며 책을 읽고 한 줄의 기록을 남기며 내일로 나아간다.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아침이 밝아오고 빈 공책처럼 하루가 찾아오고 어쩌면 내일을 기대하는 오늘. 냉장고에 채워 놓은 간식을 바라보며 뿌듯하고 더 이상 빈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서 웃을 수 있는 이 아침의 평화.

청소를 한다.
빨래를 걷고 서랍을 정리한다.
일상을 유지하는 힘을 기른다.
사 놓고 읽지 않은 혹은 깜빡한 시집을 꺼내 읽는다.
간밤에 윗집 고양이가 울어서 자다 깨다 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야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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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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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틀 재난 문자가 왔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손씻기, 기침예절, 마스크착용 등 수칙 준수와 발열호흡기 증상발생 시 1399 또는 보건소로 상담바랍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한 폐렴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확진 환자가 발생했고 당국은 긴급 격리 조치를 취하고 강력 대응에 나섰다. 강력 대응으로 2015년에 일어난 메르스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김탁환의 소설 『살아야겠다』는 초기 대처에 실패해서 피해가 확산된 2015년에 발생한 메르스 사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철저한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은 숨 막히도록 답답한 현실을 그려냈다. 긴박한 순간을 따라가는 문장은 거침이 없다. 자신이 메르스에 걸린 줄도 모르고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놓인 3인의 시간을 통해 한국 사회가 가진 병폐를 드러낸다.

길동화, 이첫꽃송이, 김석주는 F병원 응급실에서 만난다. 서로의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남이었지만 응급실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메르스에 감염되어 격리된다. 메르스는 2미터 1시간 이내라는 기존의 상식을 깨고 같은 공간에 머무른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그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악성 림프종을 앓고 있는 김석주였다. 길동화는 후유증으로 폐섬유화가 진행되었다.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았음에도 전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직장에서도 해고된다.

종합 병원 응급실로 이송해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리고자 했던 이첫꽃송이 역시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했다. 아버지를 추도하기 위해 모여든 친척들 중 몇 명도 감염되었고 이모부가 세상을 떠났다.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아 주위의 배려로 방송국 기자가 될 수 있었다. 김석주의 병세는 초기에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음성 판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항암 치료는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김석주의 서사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 국가가 부여한 번호인 80번 환자였던 그는 소설 『살아야겠다』에 나온 이야기대로 전염력이 없음에도 격리 당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일주일이 지나 악성 림프종으로 인한 오한과 발열이 의심되어 다시 병원에 실려갔다. 병원은 그가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격리 병동으로 이송했다.

질병관리본부는 WHO 권고 사항을 따라야 한다며 그를 끝까지 격리 해제 시키지 않았다. 김석주는 격리 병동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당한 채 쓸쓸히 죽었다. 메르스 환자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끝내 메르스 환자로서 죽어가게 만들었다. 이것은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다. 국가가 숨기고 잘못을 회피하기 바쁜 80번 환자의 비밀이다. 김석주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방호복을 입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병실에 홀로 있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방역망에 구멍이 훨씬 많이 뚫린 셈이지. 그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어. 잘못된 제도와 복지부동하는 관료와 무책임한 정치가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전염병이 김석주 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게 아냐. 메르스란 병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세월호란 배에 타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안일하고 허약한 자기합리화가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중이지.
(김탁환, 『살아야겠다』中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며 책임을 모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타인의 불행에 눈 감는 우리가 있었다. 간절히 살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의 외침을 듣지 않은 잘못이 『살아야겠다』를 쓰게 만들었다. 『살아야겠다』는 소설인가 논픽션인가. 따져 묻는 건 의미가 없다. 관료주의와 행정, 무사안일주의가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 아들이었던 꿈 많은 청춘을 외면했다. 그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토록 슬프고 처절한 서사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거듭 말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겠다』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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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솜에게 반하면 - 제10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6
허진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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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이제부터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미숙하고 표현할 줄 몰라 본심과는 반대로 말하며 남에게 상처를 주었던 어린 날의 그 이야기를. 허진희의 소설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그렇게 시작된다. 낯선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경계하느라 한없이 움츠렸던 기억이 찾아온다. 중학교라는 이상한 공간에 발을 디딘 아이들이 모이면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간단히 무너뜨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는 전개를 가지고 있다. 윤성희의 추천대로 장점을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일단 읽어보기를 바란다.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녀라고 불리는 독고솜. 독고솜과 엄마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다. 불행한 기운이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명함을 내민다. 저주를 내리를 작업은 인터넷과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 의뢰는 주로 이메일로 받는다.

의뢰는 자주 들어온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보다 미워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하니까. 새 학기에 전학 온 독고솜에게 서율무는 호기심이 인다. 자칭 명탐정이라고 부르는 율무는 혼자 지내지만 결코 외로워하지 않는 독고솜에게 말을 건다. 자기소개란에 실린 솜이의 사진에 누군가 구멍을 내놓았고 교과서도 찢어진 걸 본 이후 말이다.

평범한 열네 살 중학생들의 이야기 같지만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마법, 마녀, 사건, 힘, 견제, 여왕 등 흥미 가득한 소재와 이야기로 우리를 그 시절, 유치했지만 진지한 사춘기로 끌고 간다.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는 것. 먼저 다가가 이름을 불러주는 것. 소설은 이런 사소한 삶의 규칙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자라버렸을까. 마음이 없이 미움만 간직한 채 자라버린 건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인물을 만들고 성격을 부여하는 능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서율무, 독고솜, 단태희, 박선희, 은영미.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아이는 어른을 보고 자란다. 어른이 하는 행동을 놀랠 정도로 그대로 습득한다. 단태희. 여왕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타인을 조종하는 힘으로 바꿔버리는 아이. 태희의 엄마도 그렇게 행동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 이 같은 뻔한 주제를 말하지 않는다.

아이의 세계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사소한 오해와 다툼으로 다른 색깔의 세계를 형성해 버릴 수 있다. 저 애는 이상해라고 말하지 않았는지. 이상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고 말하는 순간 이상해져 버린다. 함부로 규정하고 벽을 만들지 말자. 단 한 사람. 누군가 내게 다가와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내밀어 준다면 열네 살의 시간은 막막하지 않다. 서율무와 독고솜이 활약하는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나와 만난다. 용기를 내! 하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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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당부 - 십 대부터 알아야 할 노동 인권 이야기 창비청소년문고 36
하종강 외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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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보기가 겁난다. 끔찍한 사건, 사고 소식이 연일 날아온다. 아침에 본 뉴스 하나가 잊히질 않는다. 수능을 본 학생들이 대형 음식점에서 일을 했다. 바쁜 연말 동안 쉬지도 못하고 일을 했다. 새해가 되자 가게를 폐업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정이 좋지 않으니 임금은 나중에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가 보니 가게는 성업 중이었다. 임금을 달라고 하자 대뜸 화부터 냈다. 내가 그 돈 떼어먹지 않는다. 어련히 알아서 줄 텐데, 왜 난리냐. 적반하장이었다. 노동청에 신고를 했지만 밀린 임금은 언제 받을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왜 이럴까. 학생은 인터뷰 끝에 어른이 무섭다고 했다. 더 이상 어른을 믿을 수 없다고도 울먹였다. 어린 학생이라서 그랬다면 더더욱 나쁜 짓을 저지른 어른은 뻔뻔했다. 부모님이 찾아가도 화를 냈다. 우리 사회의 쓸쓸한 민낯을 본 기분이라서 어두운 아침이었다. 창비 교육에서 나온 『열 가지 당부』는 학생들이 알아야 할 노동의 정의, 노동권, 노동법,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각계각층의 노동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근로자와 노동자의 차이점을 시작으로 다른 나라에서 행해지는 노동 교육의 다양함을 알려준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노동, 인권 교육을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노동 과목이 있고 노동자와 사용자의 모의 협상 상황을 주고 수업을 진행한다. 부러운 일이다. 생활은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노동을 빼놓고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왜 노동이라는 영역을 따로 떨어뜨려고 할까. 파업은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임에도 파업이 시행되면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군다.

『열 가지 당부』에서는 노동이 주는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꼭 알아야 할 수칙도 알려준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주휴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것. 휴게 시간과 최저 시급은 법으로 정한 것이므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괜찮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권리를 존중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노동권은 바탕화면 같은 것이어서 누구에게나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일하고 생활하면서 반드시 지켜줘야 할 권리인 인권과 노동권은 성취로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서 비정규직이 된 게 아니다. 그런 조건인지 알고 일을 하면서 왜 불평불만을 하냐. 이런 질문은 없어져야 한다. 사회 구조의 부조리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돌리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다. 네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불평들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면 세상은 점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변할 것이다.

국영수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인권, 노동권 교육이 더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열 가지 당부』는 어른들이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쓰였다. 부당한 차별을 당하지 말라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라고 말한다. 공부를 잘해서 복지와 혜택이 좋은 직장을 가지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건 잘못된 말이다. 누구라도 복지와 혜택이 좋은 곳에서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권이란 특정한 누군가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보편적인 권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사회의 첫 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으려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장들에게. 배달 음식이 늦었다고 음식값을 주지 않는 고객들에게. 『열 가지 당부』를 보낸다. 반드시 읽어보시기를. 우리에게는 노력하라는 말보다는 노조가 필요함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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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이후부터 테이크아웃 8
황현진 지음, 신모래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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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선택할 수없이 선택 당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임시 울타리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니면 어떤 이의 말대로 누가 보지만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것으로. 굴레가 되지 않기 위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사랑과 증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황현진의 소설 『부산 이후부터』는 가족에게 드리운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가난은 한 사람을 규정지을 수 없다. 군대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며 어디가 살기 좋은지를 묻는 아버지 때문에 가족은 여러 곳을 이사 다녀야 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부산. 어머니의 고향은 포항.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포항에서 6개월을 살고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부산이었다. 아버지는 더 큰 바다가 있는 제주도로 가기를 희망했지만 소설 속 태식은 탐탁지 않아 했다.

방 두 개짜리 집에 살면서 더 넓고 좋은 곳으로 가지는 못했다. 안경테를 바꾸지 못해 안경알만 바꿔 쓰던 태식은 결국 시력이 나빠져 버렸다. 렌즈만 바꾸면 초점을 바꾸기 어렵다는 안경사의 말을 무시했다. 그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계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했지만 태식은 기계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월급 80만 원을 받아 방세 20만 원을 내고 생활하고 그러면 20만 원이 남았다. 신발 한 켤레로 일 년을 보냈다. 같이 사는 동창은 태식의 신발을 밖에 두었다. 6년을 일했고 다니던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부산에 남은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결혼을 한다고 했다. 부산으로 내려가 동생의 축의금을 걷고 처음엔 10만 원을 넣었다가 5만 원을 보태서 15만 원을 봉투에 넣었다, 오빠 구태식이라고 써서.

가난은 한 사람을 규정지을 수 없는데 자꾸 규정지으려고 한다. 가난이 태도가 되게 한다. 『부산 이후부터』는 돌연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모인 남은 가족의 하루를 그린다. 장례는 간단하게 치렀다. 빈소도 차리지 않았다. 2만 원을 주고 유골함을 사서 아버지의 뼛가루를 담아 산에 가서 뿌린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빚이 있다고 서울로 올라가면 상속 포기를 하라고 한다. 자신은 이미 이혼을 해두었으니 걱정 없다며.

더 이상 가난해질 수 없을 때까지 가난해지고 아버지는 죽는다. 남겨줄 것이라곤 빚뿐이다. 상속 포기를 하면 괜찮아진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서울로 올라가려는 태식에게 걸려온 동생의 전화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족쇄로 작용할 것을 암시한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오고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아들과 오빠로서의 역할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었다. 우선 내가 살고 볼 일이었다. 울어, 울어. 마지막 말은 동생 태선이 오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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