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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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틀 재난 문자가 왔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손씻기, 기침예절, 마스크착용 등 수칙 준수와 발열호흡기 증상발생 시 1399 또는 보건소로 상담바랍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한 폐렴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확진 환자가 발생했고 당국은 긴급 격리 조치를 취하고 강력 대응에 나섰다. 강력 대응으로 2015년에 일어난 메르스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김탁환의 소설 『살아야겠다』는 초기 대처에 실패해서 피해가 확산된 2015년에 발생한 메르스 사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철저한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은 숨 막히도록 답답한 현실을 그려냈다. 긴박한 순간을 따라가는 문장은 거침이 없다. 자신이 메르스에 걸린 줄도 모르고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놓인 3인의 시간을 통해 한국 사회가 가진 병폐를 드러낸다.

길동화, 이첫꽃송이, 김석주는 F병원 응급실에서 만난다. 서로의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남이었지만 응급실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메르스에 감염되어 격리된다. 메르스는 2미터 1시간 이내라는 기존의 상식을 깨고 같은 공간에 머무른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그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악성 림프종을 앓고 있는 김석주였다. 길동화는 후유증으로 폐섬유화가 진행되었다.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았음에도 전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직장에서도 해고된다.

종합 병원 응급실로 이송해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리고자 했던 이첫꽃송이 역시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했다. 아버지를 추도하기 위해 모여든 친척들 중 몇 명도 감염되었고 이모부가 세상을 떠났다.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아 주위의 배려로 방송국 기자가 될 수 있었다. 김석주의 병세는 초기에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음성 판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항암 치료는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김석주의 서사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 국가가 부여한 번호인 80번 환자였던 그는 소설 『살아야겠다』에 나온 이야기대로 전염력이 없음에도 격리 당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일주일이 지나 악성 림프종으로 인한 오한과 발열이 의심되어 다시 병원에 실려갔다. 병원은 그가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격리 병동으로 이송했다.

질병관리본부는 WHO 권고 사항을 따라야 한다며 그를 끝까지 격리 해제 시키지 않았다. 김석주는 격리 병동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당한 채 쓸쓸히 죽었다. 메르스 환자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끝내 메르스 환자로서 죽어가게 만들었다. 이것은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다. 국가가 숨기고 잘못을 회피하기 바쁜 80번 환자의 비밀이다. 김석주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방호복을 입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병실에 홀로 있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방역망에 구멍이 훨씬 많이 뚫린 셈이지. 그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어. 잘못된 제도와 복지부동하는 관료와 무책임한 정치가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전염병이 김석주 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게 아냐. 메르스란 병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세월호란 배에 타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안일하고 허약한 자기합리화가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중이지.
(김탁환, 『살아야겠다』中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며 책임을 모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타인의 불행에 눈 감는 우리가 있었다. 간절히 살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의 외침을 듣지 않은 잘못이 『살아야겠다』를 쓰게 만들었다. 『살아야겠다』는 소설인가 논픽션인가. 따져 묻는 건 의미가 없다. 관료주의와 행정, 무사안일주의가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 아들이었던 꿈 많은 청춘을 외면했다. 그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토록 슬프고 처절한 서사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거듭 말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겠다』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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