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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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일주일에 만 원을 주고 행복을 느껴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만 원을 알뜰살뜰하게 썼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물은 정수기 물로 마시고. 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얼마간의 돈을 받았다. 지금은 그런 예능이 힘들겠지. 겨우 국밥 한 그릇 먹고 편의점 가서 커피 우유를 사 마시는 정도. 시집 한 권을 사면 시집 한 권만 손에 남는 정도.

내 지갑 속 만 원이 누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 보았던 구절. 현자가 문제를 낸다. 이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물건을 사가지고 오너라. 천 원도 안 되는 돈을 주고서. 뭐야, 치사하게. 천 원이 다 뭐냐. 십만 원은 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라. 나는 현자의 질문을 비웃으며 답을 알고 싶어 서둘러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초를 사 오면 된단다. 초에 불을 붙이면 그 불빛으로 방을 밝히고도 창문 너머까지 밝게 할 수 있단다.

지금은? 내가 했던 사치 중에 하나는 양키 캔들을 산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얼마 안 썼다. 기분 탓인지 그걸 쓰고 나서는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좋은 냄새가 나긴 나는데 하루 종일 지속되지는 않고 초는 금방금방 닳아 버리고. 무언갈 태우는데 돈을 쓴다는 게 합리적이지 않아 보였다. 소심한 꼼쟁이에게 양키 캔들은 쓰임이 없었다. 자꾸 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없다. 아니 구체적이고 신파적인 이유가 있는데 솔직하지 못한 나는 그걸 글로 쓸 자신이 없다. 아마 이슬아라면 썼겠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뒤늦게 읽었다.

에스엔에스를 안 하는 나로서는 이슬아가 직접 독자를 구하고 자신의 글을 메일로 쏴주는 그런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공짜는 아니고 만 원을 받는단다. 그래서 글 앞에 만 원에 대해 구질구질하게 쓴 것이다. 나에게 만 원이란.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돈은 아니고 좋아하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푸짐하게는 아니고 고르고 골라서 사는 정도의 돈. 관리비, 인터넷비, 휴대전화비, 각종 보험료를 내는데 보태는 돈. 만 원의 가치는 지금에서야 아주 미약해서 그걸로는 무얼 다 낼 수는 없고 그저 보태는 정도.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 사람은 부지런하고 생각이 많고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구나였다. 2018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서 만 원을 입금한 이에게 보냈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때론 힘에 부쳐서 제시간에 보내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그는 빠짐없이 글을 써서 보냈다. 아마 그 원동력이란 만 원의 힘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글을 쓸 수 있게 만든 힘은 돈이었을 거라도. 돈은 그런 힘이 있다. 나를 주눅 들게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다그친다. 내일 내야 할 돈을 생각하면 오늘의 나는 글이란 걸 쓸 수밖에 없거나 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양이를 기르고 화분 열 개를 책임지는 사람. 엄마, 아빠, 동생을 사랑하는 사람. 자기가 벌어서 교정도 하고 그게 좋음을 알고 동생도 시켜주는 사람. 유럽 여행에 가서 외국인들에게 당했던 추행과 기행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사람. 여행의 낭만을 포장하기 보다 자신이 겪은 그 일이 두려움으로 남았더라도 글로 써서 누군가에 들려주는 사람. 자기보다 잘 쓰는 친구의 글을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서 돈을 주고 사서 독자에게 보내는 사람. 그 돈이 친구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서 행복한 사람.

나는 왜 이슬아가 돈에 대해 쓴 부분이 유독 좋을까.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는 그가 돈 때문에 겪은 일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돈이 너무 좋다고도 쓴다. 돈에 대해 말할 줄 아는 사람. 올 한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 쪽으로. 담백하게 말하고 싶다. 사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하루 만에도 다 읽을 수 있었다. 내게는 그럴 시간이 요즘에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내내 균형이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이 없거나. 시간이 많거나. 돈이 없거나. 돈이 있거나, 이건 아니네. 늘 돈은 부족한 쪽으로만 있었네.

적당하게 재화와 서비스가 내 삶에는 분포되어 있지 않다. 이슬아 역시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친구를 사귄다. 그와 나를 비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일들은 무엇이 많다고 해서 알맞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대단하다고 추켜 세울 수밖에. 그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꿈을 꾸고 꿈을 팔면서도 서로가 가진 생활의 안녕을 기원한다. 무언갈 쓸 수 있어서 좋다고. 친구와 자신은 쓸 줄 아는 사람이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두껍다. 6개월치의 글이 묶여 있어서. 나는 책을 캐릭터 인형 위에 올려놓고 누워서 읽었다.

어떤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의 시력이 0.1111…이 좋아지곤 한다. 세상을 보는 나의 관점은 비비 꼬여 있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하는데 그걸 눌러주는 게 책이다. 책을 읽으면 나보다 잘났는데 꼬여 있지도 않고 자신만의 색다른 관점을 가진 타인들이 세계를 정의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현상을 이야기해 준다. 난 그걸 읽으며 착하게 살고 돈에 대해서는 관대해지자면서 약간의 소비를 즐긴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으며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 방식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나 대신 솔직해줘서 고맙기까지 한다.

내 지갑 속 만 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 돈으로 누군가가 아닌 이슬아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괴한 확신이 들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통해서. 한 달에 만 원을 내면 내 메일함으로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직조한 이슬아의 일상이 꽂히는 것이다. 그걸 보고 힘을 내거나 힘을 잃거나 하면서 하루를 살 수 있다. 되도록이면 힘을 낼 수 있는 쪽으로 버텨보는 것은 수신인인 나의 몫이겠지만. 초를 사서 방안을 밝히는 대신 글을 사서 마음과 오늘을 밝히며 내일을 기대해보는 21세기적 고통 치유제로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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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이진송 지음, 윤의진 그림 / 프런티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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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일수록 웃음이 필요하다. 아니 아니. 웃음은 매일 필요하다.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건 비타민C와 라면 한 그릇, 포복절도. 꼭 그래야 한다. 배를 그러안고 웃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내일이라는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는다. 심란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불안도 웃고 나면 옅어지는 기분이다. 나만 그런가. 이진송의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를 읽으며 웃고 있으니 괜찮아졌다.

-하지 않아도 와 -아니어도로 시작하는 제목의 글을 읽고 있으니 괜찮아지는 기분이다. 나는 안 괜찮은데 자꾸 괜찮아 괜찮아, 그거 하지 마 그거 아니어도라고 말해주니 살짝 나 자신이 좋아졌다. 현실에서 육성으로 괜찮아라고 말하면 짜증 지대로 일 텐데 책이니까 괜찮다. 게다가 어려운 주제인데 농담과 드립을 섞어서 들려주니 이해도 잘 된다.

제목을 봐서 알겠지만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책이다. 아니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책인 것이다. 읽어보면 안다. 서문에서 밝히듯이 나이 차이가 많은 여동생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쓰였다. 동생이 초등학생일 때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서 깨달음이 왔단다. 한국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언니가 하는 말 잘 들어봐.

시간이 없다고 한다면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의 목차만 봐도 좋겠다. '내면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어도, 방긋방긋 웃지 않아도, 여자여자하지 않아도, 자연 미인이 아니어도, 잘 먹으면서 날씬하지 않아도, 가족을 용서하지 않아도, 친구 같은 딸이 아니어도'. 제목에서부터 흥미가 마구 돋지 않는가. 우리가 기본값으로 생각했던 우리가 모르고 상식으로 여겼던 여성을 바라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부숴버린다.

읽으면서 웃겼던 부분.

돈을 감당할 수없이 많이 주거나, 일이 너무 적성에 맞아서 자아실현에 대한 기쁨으로 횡격막이 터질 것 같더라도 매 순간 웃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세팅해둔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여성에게 자기가 '보시기 좋으라고' 웃는 얼굴을 요구하는 걸까? 여성이 웃지 않으면 웃으라고 말하기 전에, 왜 유독 한 성별의 무표정이 거슬리는지 자신의 마음과 대화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모난 돌이 정 맞는 세상에서 너무 튀지 않으려고 적당히 장단을 맞춰보지만, '여자여자해'라는 요구는 끝이 없다.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욕망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매일매일. 모호하고 광범위한 말을 던져놓고는 여성이 알아서 맞추기를, 즉 알아서 '기길' 바라는 사회에서 누구도 기준치에 도달할 수 없다.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어도 '더' 가느다란 다리를 '더' 오므리고 앉으라는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여자여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가서 할리갈리나 해라.
(이진송,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中에서)

더 있는데 이 정도만. 나머지는 책을 읽어보시길.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서 웃으면 미친 사람 소리 나 듣기 더 하겠어 생각하지만 웃는다. 그래야 한다니까. 그런데 이진송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월급이나 많이 주면서 개그에 손뼉을 치라고 하면 치겠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웃으라니, 분위기 살리라니. 월급을 많이 줘도 매순간 웃을 수는 없다. 웃음 강요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는 대중가요,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다뤄지는 여성 서사를 비틀고 꼬집고 비웃는다. 잘못된 상황인지도 모르고 당해왔던 굴욕과 모멸의 순간이 눈앞을 스치면서 눈물 또르르(나한테 화장하고 다니라고 했던 그 인간과 그걸 옆에서 동조했던 그 인간, 둘의 성별은 다릅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라는 책. 착해야 하고 얌전해야 하고 예뻐야 하고 그런데 성형은 안 되고 전문직이면서 모성애도 있어야 하는. 온통 해야 한다는 굴레에서 아니야 넌 하지 않아도 돼 설레게 막 이러면서 나를 끌어안아준다. 웃다가 울다가. 다시 웃다가. 아닙니다. 거기에 뿔 안 났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생각 없이 보고 읽고 노래했다. 친동생이 지금보다 나은 담론이 생성되는 곳에서 살기를 바란 마음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나에게까지 날아왔다. 어제는 힘이 안 났지만 오늘은 힘이 난다. 힘이 난다. 힘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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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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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운자도 모르는 나. 숨쉬기도 운동이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부들부들한 분홍색 이불에 감겨서 전기장판과 한 몸인 나. 어쩔 수 없이 집에만 있게 된 지 4주가 되어 생활 반경이라고는 방과 방 사이가 된 나. 한때는 요가를 다니며 날씬이로 거듭나겠다고 했던 나. 그마저도 '인싸의 습격'으로 그만두고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다이어트는 무조건 굶는 것으로 해결 보려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나.

이러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운동을 하고 싶은데 움직이는 게 귀찮으니까. 운동을 열심히 한 누구들의 기록을 읽는다. 이진송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책이다. 내가 해보지 않은 운동 체험에 대해 자신을 아낌없이 갈아서 들려준다. 나는 이런 운동을 해서 저런 효과를 봤으니 여러분도 이렇게 저렇게 해보세요,라고 주접을 떨지 않는 책이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재밌고 뻔뻔하고 이거 내 얘기 아닌감? 하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난다. 제목을 다시 한번 볼까?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이다. 무려 오늘은 인 것이다. 오늘도가 아니다. 오늘은,이라는 말은 어제도 그제도 운동하러 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뭐야, 이거. 내 집에 CCTV 달아서 내 얘기 쓴 거 아니야? 하하하. 이진송은 이 책에서 자신을 운동 기부 천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열의를 가지고 운동을 배우겠다는 그 열망 하나만으로 등록을 한다. 각종 할인의 미끼를 덥석 잡아 최소 3개월 치를 끊는다. 처음 며칠은 열심히 나가다가 그렇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 그 시기가 온다. 오늘은 쉴까? 그러다가 문자가 온다. 운동화를 가지러 오라, 왜 안 오세요 회원님으로 시작하는 협박과 회유의 문자. 많이도 배웠다. 이진송은. 헬스는 기본으로 나는 이름도 생소한 아쿠아로빅, 필라테스, 요가, 복싱 등등.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는 단순히 운동 체험기가 아니다. 운동을 배우러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그중에서 가장 격한 공감을 자아냈던 건 아쿠아로빅에서 만난 '인싸'였다. 처음 보는데 등을 문질러 주고 보디 크림을 발라주면서 신상을 캐는 '인싸'. 나 역시 인싸를 만나서 그 자리에서 신상이 다 털리고 나중에는 에어컨까지 켜드려야 했다. 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피티 선생님이 배와 어깨를 찌르면서 살을 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운동은 뒷전이고 사생활 캐기에 열심일 때. 여성이 운동을 한다고 할 때 무조건 다이어트와 연관 지어서 말할 때.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에서는 그 같은 상황에 처하면서 깨달은 '나의 몸 사랑하기'의 지침이 있다. 나 역시 울퉁불퉁 못난이 내 몸을 사랑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매일 몸무게를 재면서 자책과 후회에 빠진다.

각종 운동을 체험판으로 섭렵한 이진송은 말한다. 환불도 교환도 안 되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보아 달라고. 레깅스를 입겠다고 다리에 보톡스를 맞았던 이진송은 무너진 근육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자신을 쳐다보며 의아한 눈빛으로 '왜 안되지?' 했을 때를 시작으로 다이어트가 아닌 마른 몸매가 아닌 건강하고 자신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한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읽었으니 나는 어떤 운동을 해볼까. 집에만 있으니까. 홈트는 어떨까.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일단 이진송의 재기 발랄하고 실패 가득한 운동 체험기 때문에 웃음이 먼저 터지지만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몸무게 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해본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책을 읽고 싶다.

아니, 당장 운동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책에서 추천한 홈트 유튜브 '땅끄부부'를 보겠다고요. 그러다 보면 기막힌 알고리즘으로 다른 채널도 추천해 줄 것이고 그러면 난 또 누워서 우와, 이야, 훌륭해 같은 말을 내뱉으며 감탄해 마지않겠네요. 오늘은 아니지만 내일은 운동하러 갈 것 같은 예감에 뿌듯해하며. 아주 약간 우울해 있었는데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읽는 내내 웃을 수 있었다. 안면 근육 운동은 실컷 했다. 이만하면 이 책의 소임은 다했다. 많이 웃어서 귀여워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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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
김애순.이진송 지음 / 알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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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未婚)의 사전적 정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음. 혹은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다. 비혼(非婚)은 '결혼하지 않음. 또는 그런 사람'이다. 차이를 알겠는가. 미혼은 결혼할 여지를 남겨 두는데 반해 비혼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요즘은 미혼이라는 말 대신 비혼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다. 비혼에는 자발적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직'이라는 말이 붙는 것과 붙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88년생 이진송과 41년 김애순이 가지는 공통점이란 그들이 여자이고 '비혼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걸로 함께 책을 쓴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은 오랜 시간 그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넘어서서 살아가는 여자 즉 한 인간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독신, 싱글, 비혼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 41년생 김애순은 혼자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중학교 때 본 영화 한 편 덕분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실천하는 길에 결혼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절 여자로서는 드물게 대학을 가고 공무원이 되었고 나중에는 국회 비서관으로도 일했다. 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싶어 수녀 생활을 잠깐 했고 독신 여성들의 단체 '한국여성한마음회'를 만들기도 했다. 김애순은 그렇게 혼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한국 사회에서 '비혼'으로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몸과 건강 챙기기, 아늑한 주거지 만들기 등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혼자이지만 부모, 친척, 이웃과 지내는 법까지 김애순은 이진송에게 다양한 삶의 노하우를 알려준다. 이진송은 역시 비혼으로서 살아가는데 겪는 불편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비혼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다양해지기를 바란다.

결혼을 기본값이라고 보는 시선에 대해. 타인의 결혼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오지랖에 대해. 여성 혼자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조건에 대해.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솔직하고 격의가 없다. 결혼과 출산의 짐을 여성에게 지우려는 것으로써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제도의 편협함을 안타까워한다. 김애순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하기 싫으니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삶에 대해 어떤 사연과 이유를 끌어내려고 하지만 그냥 싫은 게 전부이다.

포기가 아니다. 선택이다, 비혼은. 김애순과 이진송은 그렇게 말한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외롭다고들 하는데 외롭지 않으려고 결혼을 한다는 게 이유가 되나. 이진송의 말대로 인간은 혼자라서 오는 고독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자식이 없으면 말년에 어떻게 할 거냐고도 하는데. 자식을 노후 대책으로 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나의 행복을 위해서 비혼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지 대단한 삶의 신념을 이루려고 하는 게 아니다.

너나 잘하세요. 나의 삶에 이런저런 간섭을 늘어놓는 이에게 김애순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비혼'이라는 말이 특별하지 않을 때가 오겠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은 나와 잘 지내는 것으로서 1인분의 행복이 완성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책임지지 않으려고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자유와 행복 추구 같은 보편적인 삶의 만족을 위해 '비혼'을 선택한 김애순과 이진송의 진솔한 대화는 이상한 용기를 불어 넣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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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8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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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디에도 있다고 믿었던 자유는 봄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추상과 환상의 일이 아니었을까. 마음껏 돌아다니고 웃고 밥을 먹은 일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나만 힘들다고 슬프다고 징징대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봄은 공평하게 아프다. 원래 잘 돌아다니지 않지만 그건 일정 부분의 자유를 방기하는 데에서 오는 나만의 삶의 특성이었다.

원래 인간은 청개구리 습성이 있어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집에 있어야 한다고 하니 나가고 싶다. 그러다 200년 전에 쓰인 어쩌다가 남극 탐험을 하게 된 인물의 기록을 읽으며 마음은 세계 일주 중이라고 위로해본다.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이상한 모험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내내 누워서 읽었는데 기괴하고 잔인한 내용으로 손에 땀을 쥐고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포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을 읽고 나면 현대에 만들어진 서사의 시초가 이 책에서 발현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은 친구 어거스터스에 의해 펼쳐진다. 도입부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과장된 행동과 유머는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술에 취한 어거스터스가 핌을 배로 데리고 가는 황당함과 유산을 물려주기로 한 외할아버지를 보기 좋게 속이는 핌의 재치를 시작으로 그들은 무모함을 보여준다. 선장을 아버지로 둔 어거스터스는 남태평양을 항해한 경험을 핌에게 들려주곤 한다. 핌은 강렬한 마음으로 바다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는다.

어거스터스의 아버지 버나드가 그램퍼스호를 고래잡이로 개조해 항해에 나서기로 한다. 어거스터스는 핌에게 같이 갈 것을 주문한다. 핌은 가족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거짓으로 꾸민 편지를 써서 친척 집에 가 있겠다고 위장을 한다. 어거스터스는 갑판에 핌을 숨겨 두고 그곳에 약간의 물과 음식을 남겨 둔다. 배가 더 이상 육지로 돌아갈 수 없을 때 핌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 계획은 성공할 것처럼 보인다. 이후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결과로 보자면 핌이 갑판에 숨어 있던 일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핌이 어둠 속에서 몇 날 며칠을 기절해 있는 동안 배에서는 선상 반란이 벌어졌다. 선장은 낡은 배에 태워져 버려졌고 선원 몇몇은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어거스터스는 인디언 혼혈인 피터스의 호의에 의해 죽음은 면했다. 어거스터스는 갈증과 허기로 핌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그를 찾아낸다. 피터스를 위주로 그들은 항해사를 죽이고 배의 권력을 탈취해 온다. 풍랑을 맞고 배가 난파 지경까지 이르면서 겪게 되는 이후의 일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시체가 가득 담긴 배, 갈증과 허기를 이기지 못해 제비 뽑기를 해서 사람을 먹는 행위, 팔이 썩어가면서 죽음을 맞게 되는 친구와의 이별, 또 다른 배에 탑승하면서 경험한 남극에서의 기이한 시간.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핌이 겪은 일을 포가 대신 쓰는 형식으로 출발하지만 결국엔 핌이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다시 쓴다. 소설이라는 갈래를 거부하기라도 하는 듯이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은 문헌의 기록을 그대로 가지고 온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 독자를 배에 태우고 온갖 고초를 옆에서 보게 하면서 남극으로 데리고 간다. 실감 나는 묘사와 긴박한 문체로서 말이다. 세상은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현실이 허구를 압도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속 특정 장면은 지금에 이르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가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에 기대어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감정을 배제한 세련된 문장으로 가장 먼저 잔혹한 서사를 창조해 내었다.

자발적인 칩거 생활을 보내는 와중에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는 여전히 오만하다. 핌이 남극 탐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은 잘난척쟁이에 무식하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행해졌던 인간의 무자비함을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강렬하게 드러낸다. 결말이 소실되면서 핌과 피터스가 겪은 마지막 항해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서 고든 핌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란 모든 이야기의 끝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걸 알아내려고 어리석게 굴지 말고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보라는 것. 자유는 그런 데서 온다고 핌과 포 씨가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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