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8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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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디에도 있다고 믿었던 자유는 봄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추상과 환상의 일이 아니었을까. 마음껏 돌아다니고 웃고 밥을 먹은 일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나만 힘들다고 슬프다고 징징대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봄은 공평하게 아프다. 원래 잘 돌아다니지 않지만 그건 일정 부분의 자유를 방기하는 데에서 오는 나만의 삶의 특성이었다.

원래 인간은 청개구리 습성이 있어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집에 있어야 한다고 하니 나가고 싶다. 그러다 200년 전에 쓰인 어쩌다가 남극 탐험을 하게 된 인물의 기록을 읽으며 마음은 세계 일주 중이라고 위로해본다.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이상한 모험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내내 누워서 읽었는데 기괴하고 잔인한 내용으로 손에 땀을 쥐고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포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을 읽고 나면 현대에 만들어진 서사의 시초가 이 책에서 발현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은 친구 어거스터스에 의해 펼쳐진다. 도입부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과장된 행동과 유머는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술에 취한 어거스터스가 핌을 배로 데리고 가는 황당함과 유산을 물려주기로 한 외할아버지를 보기 좋게 속이는 핌의 재치를 시작으로 그들은 무모함을 보여준다. 선장을 아버지로 둔 어거스터스는 남태평양을 항해한 경험을 핌에게 들려주곤 한다. 핌은 강렬한 마음으로 바다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는다.

어거스터스의 아버지 버나드가 그램퍼스호를 고래잡이로 개조해 항해에 나서기로 한다. 어거스터스는 핌에게 같이 갈 것을 주문한다. 핌은 가족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거짓으로 꾸민 편지를 써서 친척 집에 가 있겠다고 위장을 한다. 어거스터스는 갑판에 핌을 숨겨 두고 그곳에 약간의 물과 음식을 남겨 둔다. 배가 더 이상 육지로 돌아갈 수 없을 때 핌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 계획은 성공할 것처럼 보인다. 이후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결과로 보자면 핌이 갑판에 숨어 있던 일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핌이 어둠 속에서 몇 날 며칠을 기절해 있는 동안 배에서는 선상 반란이 벌어졌다. 선장은 낡은 배에 태워져 버려졌고 선원 몇몇은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어거스터스는 인디언 혼혈인 피터스의 호의에 의해 죽음은 면했다. 어거스터스는 갈증과 허기로 핌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그를 찾아낸다. 피터스를 위주로 그들은 항해사를 죽이고 배의 권력을 탈취해 온다. 풍랑을 맞고 배가 난파 지경까지 이르면서 겪게 되는 이후의 일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시체가 가득 담긴 배, 갈증과 허기를 이기지 못해 제비 뽑기를 해서 사람을 먹는 행위, 팔이 썩어가면서 죽음을 맞게 되는 친구와의 이별, 또 다른 배에 탑승하면서 경험한 남극에서의 기이한 시간.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핌이 겪은 일을 포가 대신 쓰는 형식으로 출발하지만 결국엔 핌이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다시 쓴다. 소설이라는 갈래를 거부하기라도 하는 듯이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은 문헌의 기록을 그대로 가지고 온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 독자를 배에 태우고 온갖 고초를 옆에서 보게 하면서 남극으로 데리고 간다. 실감 나는 묘사와 긴박한 문체로서 말이다. 세상은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현실이 허구를 압도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속 특정 장면은 지금에 이르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가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에 기대어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감정을 배제한 세련된 문장으로 가장 먼저 잔혹한 서사를 창조해 내었다.

자발적인 칩거 생활을 보내는 와중에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는 여전히 오만하다. 핌이 남극 탐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은 잘난척쟁이에 무식하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행해졌던 인간의 무자비함을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강렬하게 드러낸다. 결말이 소실되면서 핌과 피터스가 겪은 마지막 항해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서 고든 핌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란 모든 이야기의 끝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걸 알아내려고 어리석게 굴지 말고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보라는 것. 자유는 그런 데서 온다고 핌과 포 씨가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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