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이진송 지음, 윤의진 그림 / 프런티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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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일수록 웃음이 필요하다. 아니 아니. 웃음은 매일 필요하다.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건 비타민C와 라면 한 그릇, 포복절도. 꼭 그래야 한다. 배를 그러안고 웃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내일이라는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는다. 심란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불안도 웃고 나면 옅어지는 기분이다. 나만 그런가. 이진송의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를 읽으며 웃고 있으니 괜찮아졌다.

-하지 않아도 와 -아니어도로 시작하는 제목의 글을 읽고 있으니 괜찮아지는 기분이다. 나는 안 괜찮은데 자꾸 괜찮아 괜찮아, 그거 하지 마 그거 아니어도라고 말해주니 살짝 나 자신이 좋아졌다. 현실에서 육성으로 괜찮아라고 말하면 짜증 지대로 일 텐데 책이니까 괜찮다. 게다가 어려운 주제인데 농담과 드립을 섞어서 들려주니 이해도 잘 된다.

제목을 봐서 알겠지만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책이다. 아니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책인 것이다. 읽어보면 안다. 서문에서 밝히듯이 나이 차이가 많은 여동생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쓰였다. 동생이 초등학생일 때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서 깨달음이 왔단다. 한국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언니가 하는 말 잘 들어봐.

시간이 없다고 한다면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의 목차만 봐도 좋겠다. '내면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어도, 방긋방긋 웃지 않아도, 여자여자하지 않아도, 자연 미인이 아니어도, 잘 먹으면서 날씬하지 않아도, 가족을 용서하지 않아도, 친구 같은 딸이 아니어도'. 제목에서부터 흥미가 마구 돋지 않는가. 우리가 기본값으로 생각했던 우리가 모르고 상식으로 여겼던 여성을 바라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부숴버린다.

읽으면서 웃겼던 부분.

돈을 감당할 수없이 많이 주거나, 일이 너무 적성에 맞아서 자아실현에 대한 기쁨으로 횡격막이 터질 것 같더라도 매 순간 웃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세팅해둔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여성에게 자기가 '보시기 좋으라고' 웃는 얼굴을 요구하는 걸까? 여성이 웃지 않으면 웃으라고 말하기 전에, 왜 유독 한 성별의 무표정이 거슬리는지 자신의 마음과 대화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모난 돌이 정 맞는 세상에서 너무 튀지 않으려고 적당히 장단을 맞춰보지만, '여자여자해'라는 요구는 끝이 없다.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욕망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매일매일. 모호하고 광범위한 말을 던져놓고는 여성이 알아서 맞추기를, 즉 알아서 '기길' 바라는 사회에서 누구도 기준치에 도달할 수 없다.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어도 '더' 가느다란 다리를 '더' 오므리고 앉으라는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여자여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가서 할리갈리나 해라.
(이진송,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中에서)

더 있는데 이 정도만. 나머지는 책을 읽어보시길.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서 웃으면 미친 사람 소리 나 듣기 더 하겠어 생각하지만 웃는다. 그래야 한다니까. 그런데 이진송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월급이나 많이 주면서 개그에 손뼉을 치라고 하면 치겠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웃으라니, 분위기 살리라니. 월급을 많이 줘도 매순간 웃을 수는 없다. 웃음 강요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는 대중가요,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다뤄지는 여성 서사를 비틀고 꼬집고 비웃는다. 잘못된 상황인지도 모르고 당해왔던 굴욕과 모멸의 순간이 눈앞을 스치면서 눈물 또르르(나한테 화장하고 다니라고 했던 그 인간과 그걸 옆에서 동조했던 그 인간, 둘의 성별은 다릅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라는 책. 착해야 하고 얌전해야 하고 예뻐야 하고 그런데 성형은 안 되고 전문직이면서 모성애도 있어야 하는. 온통 해야 한다는 굴레에서 아니야 넌 하지 않아도 돼 설레게 막 이러면서 나를 끌어안아준다. 웃다가 울다가. 다시 웃다가. 아닙니다. 거기에 뿔 안 났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생각 없이 보고 읽고 노래했다. 친동생이 지금보다 나은 담론이 생성되는 곳에서 살기를 바란 마음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나에게까지 날아왔다. 어제는 힘이 안 났지만 오늘은 힘이 난다. 힘이 난다. 힘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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