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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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과 헤어지고 잘 지내던 어느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온다. 잘 지내지 못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모든 순간이 너와 행복했었다, 사실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갔을 뿐이다. 비가 오면 함께 손을 잡고 걷던 비 오는 거리가 화창한 날이면 공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이 그립다. 연애의 시작에서 끝까지 잘해주지 못한 기억이 남는다. 


  관계는 어렵다. 연인이든 동료든 친구든. 가족과도 잘 지내기 힘든 시기가 있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수만 번 고민한다. 이런 주제는 불편하지 않을까. 상대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그럼에도 눈을 맞추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어색하게 관계를 끝낸다 하더라도 먼저 용기를 내는 사람이 시작의 출발선 위에 설 수 있다.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는 일본 SNS에서 사랑과 이별에 관한 고민 상담으로 유명해진 디제이 아오이의 글을 담은 책이다. 2년 동안 사귀던 남자친구가 전화로 헤어지자는 일부터 불륜에 관한 고민 상담까지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전화는 괜찮은 편이다, 어떤 이는 일방적으로 SNS나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바람을 피울 때 조심해야 할 열 가지 사항도 알려준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친구와는 단호하게 결별할 것을 조언한다. 

 

  1년 뒤 각자 성장해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는 상대에게는 다른 의미로 구속하겠다는 뜻이므로 단호하게 헤어지라고 말한다. 관계를 마무리 짓는 과정에서 인격이 잘 드러나는 법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사랑이란 거리가 무너지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향한 갈망으로 거리 지키기를 할 수 없다. 적당히 선을 지키라는 조언을 듣기도 하지만 사랑이 끝난 뒤에야 한 걸음 물러날 수 있을 뿐이다.


  징징댈 바엔 울어버리라고 조언하는 책. 연인과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관계의 시작을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를 담은 책이다. 귀찮아, 졸려, 하기 싫어라는 말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지. 한밤중 자니라는 문자를 받고 마음이 어려워지지 않았는지. 얼굴 한 번 본적 없지만 삶의 의욕과 희망을 잃은 이들이 보내온 고민에 친절한 답을 해준 심야 디제이 같은 아오이 씨. 다정한 말투로 내 고민을 들어주고 때론 단호한 해결책을 말하는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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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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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죽고 나의 우울 지수는 그전보다 '약간 위험'의 칸으로 옮겨갔다. 간신히 중간을 유지하고 있던 감정선이 오른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굉장한 일인가라고 생각해보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주변인들 대부분이 엄마가 혹은 아빠가 없다. 그들이 주름살을 만들며 웃고 손을 흔들어 주는 일상적인 일을 살아가고 있어 위안을 받는다. 괜찮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부모의 부재를 걱정 밖으로 밀어내는 힘을 얻는다. 


  우울 지수는 다시 정상 범위로 들어선 듯하다. 집 정리를 하고 서류를 제출하면서 보내고 난 어느 오후의 일에서 나는 다시 세계의 평온으로 넘어왔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 혈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나와 동생 밖에 남지 않아 다시 우울해지려고 할 때 친구가 한 마디를 던졌다. "너랑 EM은 선물 못 받아. 엉엉 울어서 산타가 선물 안 줘." 나는 우는 대신 웃었고 그렇게 세계의 절망 따위는 잊고 살기로 했다. 


  다비드 그로스만의 소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농담의 집합체다. 성적인 농담, 이스라엘을 풍자하는 농담, 자기 비하 농담. 생일을 맞은 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도발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자신의 쇼에 관객으로 와 달라는 것이다. 친구라고는 하나 어렸을 때 수학 과외를 받고 끝나고 버스정류장을 함께 걸어갔던 기억 밖에는 없다. 오래전의 일이고 친구는 그 일 역시 잊어버렸다. 퇴직 판사로 개와 쓸쓸한 노년을 살아가는 친구는 도발레의 부탁에 응한다. 쇼에 와서 자신을 봐 달라는 것, 그리고 쇼에서 본 걸 말해달라는 것. 도발레는 간신히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는다. 


  쇼가 시작된다. 작은 키에 도발레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관객들은 웃거나 야유를 퍼부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 밤 스탠드 업 코미디 쇼에 참석한 그들은 단지 웃음거리와 즐길 거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쉰일곱의 생일밤 도발레의 코미디 쇼에서 관객들은 어떤 웃음을 챙겨갈 것인가. 소설은 도발레의 쇼를 충실히 따라간다. 아슬아슬한 농담을 이어가고 이윽고 쇼는 도발레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낸다.


  그렇다고는 해도 물론 그런 느낌 또한 나의 공격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갑자기, 느닷없이, 나는 그가 인류의 모든 종류의 경솔함을 대표하는 사람 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나무랐기 때문이다. "사실 너 같은 사람들에게는," 나는 부글부글 끓었다. "모든 게 농담 거리지. 모든 사실 하나하나와 모든 사람 한 명 한 명이, 뭐든지, 왜 아니겠어. 순발력이 조금만 있고 머리가 빨리 돌아가기만 하면 뭘 가지고도 개그나 패러디나 희화화가 가능하잖아. 병이든 죽음이든 전쟁이든, 모두가 만만한 대상이지, 응?"


  도발레는 모든 이야기에 거침이 없다. 몇 초 안에 관객들을 웃겨야 한다. 웃음을 주지 못하는 개그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퇴직 판사인 '나'는(소설은 도발레를 관찰하는 친구인 '나'를 서술자로 내세운다.) 쇼에 와달라는 도발레의 말에 너는 모든 게 농담거리라고 공격한다. 농담으로 우스운 말로 살아가는 도발레의 인생을 부정하는 말을 한다. 한참 후에 도발레는 '나'의 말에 답한다. 실은 자신은 전만큼 스탠드업에 흥미가 없다고. 단어 배치에 힘이 들고 목소리가 약간 높아지고 그러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차가워진다고. 그런데 "스탠드 업을 하다 보면 가끔 사람들을 진짜로 웃게 만드는데, 그건 작은 게 아냐."라고 말을 한다. 


  우리 안의 불안과 우울이 잠자고 있다. 언제 우리의 마음속에 잠식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것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우리는 농담을 만들어냈다. 우스운 이야기를 찾아 듣고 즐거운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느닷없이 건네오는 농담 한 마디에 삶의 화살표를 바꾼다. 그럼에도 살아갈 것이라는 방향으로.


  늙은 코미디언 도발레의 농담 인듯 농담 아닌 것 같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객의 반응은 다양하다. 우리는 홀로코스트 쇼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고 계속해도 된다고 눈빛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쇼에서 도발레를 위한 기록을 하기로 한다. 냅킨에 단어를 쓰기도 하고 사람의 표정을 관찰한다. 도발레와 '나'는 추억이라고 할 수도 없는 기억을 공유한다.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도발레는 물구나무를 서서 걷는다.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놀다가도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면 떠난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땅만 보며 걷는 엄마를 지켜주기 위해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기에 도발레는 물구나무를 서며 엄마 옆을 걷는다.


  이발소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엄마는 전쟁의 여섯 달을 열차 한 칸에서 보냈다. 도발레는 쇼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하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방법을 취한다. 스탠드업 쇼를 하는 자신이 되기까지 설명한다. 엄마와 함께 했던 하루 한 시간의 애틋한 시절부터 캠프에서 장례식에 가야 한다며 태워졌던 차 안에서 쉼 없이 개그를 들어야 했던 내력을 말한다. 중간중간 도발레의 이야기는 끊기고 이 쇼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아는 관객은 떠나간다.  도발레의 과거 어느 한 부분을 알고 있는 키가 작은 영매와 '나'가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차를 타고 갔어. 차 안은 오븐 속 같았어. 눈으로 땀이 흘러들었지. 저 사람한데 잘해줘, 엄마가 다시 내 귀에 대고 말했어. 모든 사람이 짧은 시간만 살다 간다는 걸 기억하고, 그 사람들이 그 시간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줘야 해. 


  인생이라는 한 편의 쇼에서 혼자 웃고 울고 넘어지고 구르는 우리는 과연 누구를 웃길 수 있을까. 도발레는 자신의 쇼에서 고독과 불안으로 죽음으로 향해가는 각자의 인생에게 농담을 시작한다. 세상의 빛이 꺼지고 암흑 속에서 장례식장으로 향해 가는 차 안이었다. 울지도 못하는 도발레를 위로한 건 있지도 않은 개그 경연 대회를 나간다고 떠들었던 한 병사의 우스운 말이었다.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에 도발레는 일일 쇼를 기획했다. 엄마만을 위한 특별쇼.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지 할 수 있었던 짧은 쇼.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공포를 매 순간 느껴야 했던 도발레가 선택한 건 웃음이었다. 세상의 전부를 눈물 나게 웃길 수 있는 농담이었다. 


  농담이 죽음을 구원한다. 농담이 우리의 삶을 완성한다. 거리를 유지하고 서운함을 감출 수 있는 무기는 웃음이다.  도발레의 쇼가 지금 시작된다. 당신 눈가에 눈물을 맺히게 하면서 가장 환한 얼굴을 만들어 주는 웃음을 찾기 위한 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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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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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타 겐야는 일본 여행 중에 갑자기 죽은 고모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경찰서에 가서 유류품을 정리하던 중 고모의 수첩에서 '모리 앤드 스탠턴 법률사무소'의 전화번호를 발견한다. 고모인 기쿠에와 친했다던 변호사는 겐야가 지금 로스앤젤레스로 와주길 바란다. 고모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함을 들고 비행기에 오른다. 고모는 오래전 일본을 떠나 미국인 사업가와 결혼을 했다. 남편이 일 년 전에 암으로 죽고 일본 여행을 하던 중 협심증으로 사망. 고모 부부에게는 레일라라는 딸이 있었지만 여섯 살 때 백혈병으로 죽었다. 고모의 유산 상속인으로 조카 겐야가 지정되었다. 


  변호사와 만난 겐야는 엄청난 돈의 유산이 상속 되었다는 것을 듣는다. 고모가 남긴 유언장에는 삭제된 다섯 줄이 있었다. 그 내용이란 레일라를 찾게 되면 겐야에게 물려준 모든 유산의 70퍼센트를 그녀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찾지 못하면 레일라 같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회 운동에 써 달라는 것이었다. 고모의 딸은 여섯 살에 백혈병으로 죽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찾게 되면이라니. 겐야는 혼란스러웠다. 변호사 수잔은 한 가지 감춰진 비밀을 털어놓는다. 


  레일라는 죽은 것이 아니다. 27년 전 대형마트 화장실에서 행방불명 되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레일라를 혼자 보내고 고모는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마트 직원에게 알리고 경찰에게도 신고했다. 결국 레일라는 찾지 못했다. 미국에서 한 해 실종되는 사람들의 수는 백만 명. 그중 85퍼센트가 아이들이다. 고모 부부는 오빠인 겐야의 아버지에게조차 이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 고모 부부는 그 후 레일라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나이가 든 레일라의 얼굴을 복원해서 전단지로 뿌렸다. 서른한 살의 얼굴까지 만들었다. 그러다 고모의 남편 이언은 췌장암에 걸려 죽었다. 고모 역시 갑작스러운 협심증 발작으로 죽었다. 


  그들이 남긴 유산 400억이 넘는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에 빠진 겐야는 고모가 지운 유언의 다섯 문장을 계속 떠올린다. 레일라를 찾게 되면. 그때부터 겐야는 꽃과 나무로 가득한 정원으로 꾸며진 고모의 거대한 집에서 레일라를 찾을 단서를 모은다. 부촌에 지은 집답게 집은 넓고 고급 가구로 꾸며져 있다. 겐야는 집을 탐험하던 중에 비밀 상자를 발견한다. 퍼즐 박스라고 불리는 그 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수십 개의 나무를 움직여야 열 수 있는 상자에서 발견한 열 통의 편지.


  보내온 주소는 일본이지만 편지의 내용은 멜리사라는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캐나다 사람의 이야기였다. 멜리사를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내용의 알 수 없는 편지였다. 겐야는 비밀의 정원 같은 그 집에서 꽃들의 수군거림으로 인해 레일라를 찾기로 결심한다. 감이 좋고 운이 종은 사립 탐정 니콜라이에게 조사를 의뢰한다. 


  미야모토 테루의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는 사라진 레일라를 찾기 위한 겐야의 느린 여정을 담고 있다. 키쿠에는 오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사업가와 결혼했다. 사업이 잘 되어 고모는 부유한 삶을 살았다. 귀여운 딸을 낳았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이었다. 딸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 후에 고모의 생활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고모의 집이었다. 정원사가 따로 와서 관리를 할 만큼 꽃과 나무가 우거진 정원에서 겐야는 남겨진 고모의 외로움과 고독을 마주한다.


  사라진 레일라의 나이에 맞춰 심은 서른세 개의 거베라 화분 밑에서 펼쳐지는 비밀을 감당하기까지 독자들은 숨을 멈추고 다시 내쉬어야 한다. 이 책의 묘미는 풀꽃들이 숨겨 놓은 비밀에 접근하려는 겐야의 노력과 서정적인 묘사 뒤에 감추어진 슬픈 이야기의 균형이다. 추리 소설의 구조를 따라가지만 미야모토 테루는 순수 문학의 거장답게 인물의 심리와 배경 묘사의 탁월함을 펼친다. 기쿠에의 깊은 불안과 내면의 비밀을 감추어 둔 채 예쁜 얼굴로 피어나는 꽃들의 맹세에 독자는 안도한다. 


  그녀가 살고 나는 죽는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찾아낸 처절한 비밀을 풀꽃들은 또 조용히 끌어 안는다. 두 번 안심한 채 우리는 현재의 삶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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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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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독한 추위와 허기가 찾아온 부족민들에게 늙은 두 여자는 골칫거리였다. 두 여자는 성격적 결함이 있었다.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쑤신다 불평을 해댔다. 늙은 것을 과시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도 했다. 주민들은 그런 두 여자의 태도에 별다른 반감을 보이지 않았다. 늙은 두 여자는 그들의 보살핌을 받는 대신 가죽을 무두질해주는 일로 그들과 함께 살아갔다. 


  겨울이었고 짐승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가 굶주리고 있었다. 족장은 회의를 통해 늙은 두 여자를 남겨 놓고 가기로 했다. 더 이상 그들을 보살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기근이 닥쳤을 때 나이는 사람들을 두고 이동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사람들은 족장의 말을 듣고도 충격에 빠지지 않았다. 배고픔은 모두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박새라는 뜻의 칙 디야크와 별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는 그렇게 남겨졌다.


  칙 디야크에게는 딸과 손자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무리들에게서 버려질까 봐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딸은 남겨질 어머니를 위해 가죽끈을 손자는 손도끼를 주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두 늙은 여자의 생존이. 벨마 월리스가 쓰고 짐 그랜트가 그린 소설 『두 늙은 여자』는 알래스카 지방에서 유목을 하며 살아가는 그위친족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극지방에 서구 문화가 도입되기 오래전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내려와 상상이 더해져 한 편의 소설로 탄생된다. 


  늙고 병들어 부족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이유로 버려진 두 늙은 여자는 고난의 겨울을 맞이한다. 외로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칙 디야크에게 사는 분명한 말로 친구를 위로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말이야." 딸과 손자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칙 디야크는 사의 말을 따라 한다. "뭔가 해보고 죽자고." 모닥불을 피우고 마른 이끼를 불 위에 던진다. 사는 손도끼를 꺼내 나무다람쥐를 잡는다. 칙 디야크는 딸이 주고 간 가죽끈으로 덫을 만들어 토끼를 잡는다. 


  아프다고 늙었다고 사람들에게 불평불만을 끊이지 않고 말하던 그들이 달라진다. 두 여자가 늙음이라는 과시에 젖어들기 전에 사용한 수많은 지혜가 쏟아져 나온다. 모닥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먼저 일어나고 서로가 외로움에 지치지 않도록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눈다. 그들 앞에 놓인 긴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웃고 눈신발을 만든다. 


  짐이 되고 쓸모없다고 생각해 버리고 간 두 늙은 여자는 젊은 시절과 함께 했던 생존 기술을 하나씩 찾아낸다. 이곳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예전에 장소를 찾아간다. 지금까지 젊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갔다면 이제부터 그들은 스스로 길을 나선다. 


"우리는 씩씩하게 그들과 맞서야 해. 친구,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에 각오를 하자." 그녀는 한순간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죽음까지도 말이야."


  알래스카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서든 살아가기는 버겁고 힘겨운 일이다. 우리는 『두 늙은 여자』의 생존기를 읽으며 시공간을 초월한 삶의 고단함을 체험한다. 그곳과 이곳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 것이다. 하루를 살아야 할 식량을 얻기 위해 눈바람을 헤치고 걸어야 한다. 혹시 모를 사람들의 해코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흔적을 없애야 한다. 상대가 고독과 외로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존중의 마음을 갖는다. 


  나이가 드는 건 삶의 지혜를 얻는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경험과 지식이 쌓여 그들의 주름을 만들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손가락에 굳은살로 옮겨간 것이라고. 늙었다는 이유로 고독과 외로움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우리 사회에서 『두 늙은 여자』는 꼭 필요한 책이다. 칙 디야크와 사가 들려주는 생존의 이야기, 『두 늙은 여자』는 먼 알래스카에서 날아온 오랜 전설이면서 오늘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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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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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암 마지디의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마리암이다. 작가와 작중 인물의 이름이 같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마리암 마지디가 의도한 것이다. 소설이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을 모방할 때 보이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리암 마지디는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부여했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말장난이 아니다. 마리암 마지디의 살아온 내력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녀가 어떻게 이란을 빠져나왔는지 프랑스에서 망명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위 현장으로 달려간 마리암의 엄마는 그곳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죽임을 당하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본다. 마리암은 엄마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자신 또한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은 끈질기고 집요해서 마리암은 엄마 뱃속에서 살아남는다. 엄마의 움직임을 느끼고 엄마의 눈빛을 읽어내는 마리암. 아이는 태어나서 이야기를 마주한다. 책을 펴고 읽는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짓는다. 


  마리암은 혁명을 이야기하는 자리 한편을 차지한다.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은 마리암. 불심검문에 잡혀간 삼촌. 감옥에서 팔 년을 보낸 삼촌은 마리암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께 갇힌 기자는 매일 <뉴사베의 모험>을 봤다. 유명하고 사회 운동을 하다 수감된 사람이 같은 만화만 보고 의아해했다는 것. 왜 매일 그 만화를 보냐고 물었다. 그는 만화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라고 말했다. 매일 아침마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화를 보는 그 남자. 삼촌은 잊지 않기 위해 '뉴사베'라고 적었다. 


  엄마와 아빠는 마리암에게 가진 모든 것들을 나눠 주고 땅에 묻으라고 했다.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가기 위해서였다. 장난감을 나눠 주고 버리고 마리암은 떠나기 위해 소유할 수 없는 마음을 생각한다. 어렵게 프랑스로 들어간 마리암과 엄마는 허름한 원룸에서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써야 하고 크루아상을 먹고 프랑스어를 배워야 한다. 학교에 가도 마리암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이름과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이 망명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이었다. 페르시아어를 잊고 새로운 말을 배워야 한다.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는 마리암을 다그친다. 마리암은 사실 프랑스어를 잘 배우고 있었다. 잘 듣고 머릿속으로 프랑스어로 말할 준비를 했다. 준비가 되면 그때 말하리라 다짐한다. 학교 아이들이 돼지라고 놀려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가려들을 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가제트 형사>를 보면서 마리암은 프랑스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그녀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살아남아 야한다. 이란에서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유가 없었다. 불심검문을 당해 끌려가고 차를 타고 가면 두 사람이 가족인지 확인이 돼야 풀려났다. 살아남기 위해 조국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난 마리암의 가족. 집에서는 페르시아어로 말을 하고 밖에 나가서는 프랑스어로 말을 한다. 모국어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두 개의 세계. 마리암이 프랑스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프랑스어를 가르쳐도 그녀는 프랑스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란에 가면 그녀의 억양을 듣고 이방인이라 규정한다. 


  두 개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두 개의 세계에서 홀로 떠도는 일이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망명자의 비애가 소설에 절절히 드러나 있다. 태어난 나라를 뒤로하고 희망과 자유를 찾아온 세계에서 마리암은 멸시와 차가운 소외를 받는다.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고 이란의 우마르 하이얌 시인과 사데크 헤다야트 소설가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는 것으로 마리암은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란을 찾아가 친척을 만나고 그들과 뼛속까지 하나임을 느끼면서 마리암은 자신이 발 디딜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느낀다. 


  나의 언어는 하나. 망가진 나라에서 마리암은 택시 기사가 페르시아어로 들려주는 시를 듣는다. 사람들이 떠나고 착취 당하고 죽는 나라에서 오랫동안 쓰인 시. 용기를 가진 시인이 쓴 십사 세기의 시. 프랑스로 떠난 마리암들이 잊지 않고 조국을 그리워하며 배운 페르시아어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조국을 떠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다룬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어제』가 감춰진 서글픔을 그렸다면 마리암 마지디의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잃어버린 자유와 언어를 찾아가는 강인한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시를 읽기 위해 페르시아어 수업을 시작하는 마리암을 통해 우리는 부서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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