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마리암 마지디의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마리암이다. 작가와 작중 인물의 이름이 같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마리암 마지디가 의도한 것이다. 소설이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을 모방할 때 보이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리암 마지디는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부여했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말장난이 아니다. 마리암 마지디의 살아온 내력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녀가 어떻게 이란을 빠져나왔는지 프랑스에서 망명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위 현장으로 달려간 마리암의 엄마는 그곳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죽임을 당하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본다. 마리암은 엄마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자신 또한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은 끈질기고 집요해서 마리암은 엄마 뱃속에서 살아남는다. 엄마의 움직임을 느끼고 엄마의 눈빛을 읽어내는 마리암. 아이는 태어나서 이야기를 마주한다. 책을 펴고 읽는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짓는다. 


  마리암은 혁명을 이야기하는 자리 한편을 차지한다.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은 마리암. 불심검문에 잡혀간 삼촌. 감옥에서 팔 년을 보낸 삼촌은 마리암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께 갇힌 기자는 매일 <뉴사베의 모험>을 봤다. 유명하고 사회 운동을 하다 수감된 사람이 같은 만화만 보고 의아해했다는 것. 왜 매일 그 만화를 보냐고 물었다. 그는 만화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라고 말했다. 매일 아침마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화를 보는 그 남자. 삼촌은 잊지 않기 위해 '뉴사베'라고 적었다. 


  엄마와 아빠는 마리암에게 가진 모든 것들을 나눠 주고 땅에 묻으라고 했다.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가기 위해서였다. 장난감을 나눠 주고 버리고 마리암은 떠나기 위해 소유할 수 없는 마음을 생각한다. 어렵게 프랑스로 들어간 마리암과 엄마는 허름한 원룸에서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써야 하고 크루아상을 먹고 프랑스어를 배워야 한다. 학교에 가도 마리암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이름과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이 망명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이었다. 페르시아어를 잊고 새로운 말을 배워야 한다.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는 마리암을 다그친다. 마리암은 사실 프랑스어를 잘 배우고 있었다. 잘 듣고 머릿속으로 프랑스어로 말할 준비를 했다. 준비가 되면 그때 말하리라 다짐한다. 학교 아이들이 돼지라고 놀려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가려들을 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가제트 형사>를 보면서 마리암은 프랑스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그녀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살아남아 야한다. 이란에서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유가 없었다. 불심검문을 당해 끌려가고 차를 타고 가면 두 사람이 가족인지 확인이 돼야 풀려났다. 살아남기 위해 조국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난 마리암의 가족. 집에서는 페르시아어로 말을 하고 밖에 나가서는 프랑스어로 말을 한다. 모국어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두 개의 세계. 마리암이 프랑스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프랑스어를 가르쳐도 그녀는 프랑스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란에 가면 그녀의 억양을 듣고 이방인이라 규정한다. 


  두 개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두 개의 세계에서 홀로 떠도는 일이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망명자의 비애가 소설에 절절히 드러나 있다. 태어난 나라를 뒤로하고 희망과 자유를 찾아온 세계에서 마리암은 멸시와 차가운 소외를 받는다.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고 이란의 우마르 하이얌 시인과 사데크 헤다야트 소설가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는 것으로 마리암은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란을 찾아가 친척을 만나고 그들과 뼛속까지 하나임을 느끼면서 마리암은 자신이 발 디딜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느낀다. 


  나의 언어는 하나. 망가진 나라에서 마리암은 택시 기사가 페르시아어로 들려주는 시를 듣는다. 사람들이 떠나고 착취 당하고 죽는 나라에서 오랫동안 쓰인 시. 용기를 가진 시인이 쓴 십사 세기의 시. 프랑스로 떠난 마리암들이 잊지 않고 조국을 그리워하며 배운 페르시아어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조국을 떠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다룬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어제』가 감춰진 서글픔을 그렸다면 마리암 마지디의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잃어버린 자유와 언어를 찾아가는 강인한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시를 읽기 위해 페르시아어 수업을 시작하는 마리암을 통해 우리는 부서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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