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심장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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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김숨의 『제비심장』은 시일까 소설일까, 노래일까. 마구 헷갈리는 그런 밤이었다. 걸어서 집에 오고 씻고 정리하고 어제 한 드라마를 뒤늦게야 보고 방에 들어가 책을 펼쳤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다 읽고 싶었다. 하루하루의 성취는 거의 없다시피 한 시간 앞에서 완독이라도 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하는 일은 어설프고 하찮아서. 그건 그것대로 저녁 여섯시에 놔두고 온다.


그러고서 하는 일. 책을 읽는데. 그것도 어렵다. 많이 있는데 내게 없는 것 중에 체력도 없다. 어쩌다 태어나서 좋고 감사하고 슬프다. 어쩌다 태어났는데 자존감, 체력, 강한 정신력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조선소 노동자 그것도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쓴 소설 『제비심장』은 다양한 문학적 장르가 혼재되어 있다. 장편소설이라고 하니까 처음엔 소설을 읽는 자세로 읽었다.


소설이라고 하니까. 그러다 어, 어. 서사는 이어지지 않았다. 조선소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깔아 놓고 문장은 뒤섞인다. 인물의 대화는 일방적이다.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말만 한다. 그래도 소설은 흘러간다. 어느 시점부터(김숨이 사회 참여적인 소설을 쓸 때부터) 김숨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게 된다. 소설로 읽으려고 했던 밤은 실패했다.


낮의 패배와 무력감이 밤으로까지 달려왔다. 배를 만드는 사람들. 사상공, 포일공, 도장공, 발판공, 용접공, 불 감시자. 그들이 철상자 안에서 고군분투한다. 거대한 철상자 안에서 길을 잃는다. 안전은 무시되기 일쑤다. 쇳가루가 날리고 독한 페인트 냄새가 공기처럼 떠도는 곳. 하루살이 노동자들은 일당을 받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바친다. 어제와 내일은 없고 오늘만 있다. 하루를 벌어야 하루를 산다. 내일은 살 수 없다.


소설로 읽기를 포기하고 책을 덮었다. 조선소 노동자와 달리 나는 내일이 있고 싶었다. 존재하는지 의문이 드는 미약한 내일을 위해.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오늘은 시로 읽었다. 『제비심장』은 시로 읽힌다. 시의 호흡으로 읽어간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있었던가. 세상 물정을 책으로만 배우고 알았기에 나는 그걸 몰랐다. 겨우 김진숙을 알뿐이었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아침에 일어나 밥하고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고 남편과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인다. 다시 눕고 싶지만 그들은 생각하고 말한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일 년에 한 번 지급되는 작업복과 작업화. 그마저도 하루살이 노동자에게는 남이 입던 걸 준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없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있지만 구내식당까지 왕복 30분이 걸린다. 40도가 넘어가는 철상자 안에서 철판을 자르고 조립한다. 높은 곳에서는 불꽃이 떨어진다. 잘못 맞으면 눈이 실명된다.


『제비심장』은 노래로 읽힌다. 그 다음날에는. 내일을 생각하기보다 눈을 뜰 수 있는 날이라고 친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눈을 뜨고 일을 하러 간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하는 생각은 들지 않고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게 아닌데. 꾸역꾸역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직시하고 포기해도 나는 나인데. 『제비심장』을 노래로 읽는 밤에는 내가 내가 되고 싶었다. 먼지와 쇳가루와 불씨가 있는 작업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 일을 하는 노동자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일을 하고 돌아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시와 소설, 노래가 섞인 책을. 문장을 따라가다가 한숨을 쉰다. 숨을 쉬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못된 마음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내가 내 인생을 방기하는 태도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어쩌면 선택이라는 건 강요가 아니었을까. 너는 이렇게 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고 나를 고통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 같아 참담하다.


시가 있을까.


오늘은 있고 내일은 없다.


시가 없는 내일 대신 시가 있는 오늘만.


한 편의 소설에는 시와 노래가 있었다. 소설로 시로 노래로 읽는 밤이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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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
조해진.김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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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모른다. 나인투식스 생활을 할 줄이야. 그러면서 바뀐 건 책을 읽는 횟수. 예전에는 이틀에 한 권꼴로 읽었었는데 요즘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한 권 읽기도 힘든 주가 있기도 하다. 그래도 주말에는 책을 완독하는 걸로 정했다. 유일하게 집에서 안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집 밖으로 위험한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는 박명수 말대로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어요다.


11월의 첫째 주는 어땠더라. 금목서 향기가 나는 천변을 부지런히 걸었다. 출퇴근을 걸어서 한다. 버스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버스를 못 타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싫어서. 걷는다. 집으로 들어갈 때 워치에 만보를 걸어 축하한다고 찍히는 문구를 보는 게 즐거움이다. 만보라니. 만보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니. 기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르지만 이걸로만 보자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다. 하루에 만 보 걷기.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유독 오래 읽었다. 책에서 소개한 영화를 한 편씩 보느라. 전부는 보지 못했고 글을 읽다가 마음이 끌리는 영화가 있으면 봤다. 총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내 마음이 마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있기나 한 걸까 의문이 들 때. 마음이 있지만 그건 돌이 아닐까 멀리 차버리면 날아갈 정도로 하찮게 느껴질 때.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면.


숨겨져 있던 내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사라지지도 날아가지도 않은 채 내가 다시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책의 표현대로 영화를 본다는 건 영화 자체만을 보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던 날의 기억과 함께 한다. 영화를 보러 가야지 계획하고 가는 것도. 영화관 앞을 지나가다 시간이 맞아서 우연히 들어가는 것도. 다 괜찮다. 영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이 영화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해 하면서 보는 것도.


전문적인 영화 리뷰 책은 아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그래서 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볍게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일상에 스며든 어떤 영화 한 편을 서로에게 소개한다. 오늘 영화 한 편을 봤는데 혹시 보셨나요? 과거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 하루네요. 하는 식으로 책은 흘러간다. 9시에서 6시까지의 사회적 자아가 왕성하게 활동한 나머지 6시 이후에도 좀처럼 나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6시 이후의 시간들.


빨리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면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예전에 봤던 영화도 괜찮고 책에서 두 작가가 보면서 감동했던 영화를 한 편씩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일까. 책의 뒤에는 '동시 상영 중인 영화 목록'이 친절하게 딸려 있다. 의욕 없음을 넘어서 무기력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무 생활자', '출퇴근러'인을 위한 약 처방전처럼. 의외로 나 영화 많이 봤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며 안도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였구나.


문화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라 간절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싶어 했던 시간에 한 일이라고는 책 읽기와 영화 보기였다. 어떤 때는 개봉 중인 영화를 전부 봤던 한 주가 있었다. 구체적인 할 일이 없어서 봤던 영화를 또 보러 가기도 했다. 책은 특이하게도 보지 않은 영화라도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소개해 준다. 서로가 가진 일상의 안전함과 편안함을 바라는 두 작가의 다정한 마음 때문이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소설가와 시인의 우정은 이어진다. 친한 관계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요즘에 조해진과 김현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글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맙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다가 본 영화 세 편의 이야기.


《패딩턴》. 사랑스럽고 따뜻한 이 영화를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지금에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페루에서 영국으로 밀항한 곰이라니. 마멀레이드 잼을 좋아하고 말하는 곰이라니. 인간 가족과 허물없이 살게 되어 다행한 곰의 이야기. 공손하고 예의 바른 패딩턴. 내가 제일로 여기는 가치는 존댓말과 예의 바름이다. 인간도 하지 못하는 일을 말하는 곰 패딩턴은 한다. 먼저 인사를 하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한다.


《생일》.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영화가 개봉했을 때. 차마 볼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보지 못하겠다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전도연은 최고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영화 설정이고 연기였을 텐데. 전도연은 한다. 그저 하는 게 아닌 감당해낸다. 영화 밖의 현실을. 엄마, 나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은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여서 애도를 한다.


《걷기왕》. 멀미 때문은 아니지만 다행히 일하는 곳이 가까워 왕복 한 시간을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 만복이는 4살 때부터 시작된 선천성 멀미 증후군 때문에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간다. 지각은 다반사. 당이 떨어져 담임과 면담할 때 사탕을 폭풍 흡입한다. 상상력이 과도한 담임이 가정 면담을 오고 집으로 걸어가는 만복이를 보고 육상부에 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뛰지 않아도 좋아. 멈추고 싶으면 멈춰. 영화는 할 수 없음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준다.


단 한 장의 책도 읽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옆으로 누워 영화 한 편을 때리는 것도 좋지. 당분간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의 영화 목록에 줄을 그어가면서 6시 이후의 나를 달래줘야지. 오랜만에 시를 생각했다. 김현은 추신의 자리에 오늘 쓴 시를 조해진에게 보낸다.


주말 이틀은 왜 이틀뿐일까 사흘이거나 나흘이어도 좋을 텐데 빨간색으로 가득 찬 한 장의 달력을 갖고 싶어 내가 울 때 네가 그걸 가지고 온다면 나는 기쁠 거야 일어나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오로라를 보러 가는 일도 어렵지 않겠지 쓰지 않은 머그컵을 꺼내는 일부터 할 거야


내가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한 시절 영화를 보면서 살아낼 수 있었다. 불 꺼진 상영관에 들어가 앉은 내 곁으로 어제의 기억과 추억이 될 오늘이 찾아온다. 다음에 개봉될 영화의 예고편이 끝나면 영화는 시작된다. 잠깐의 어둠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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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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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만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걱정과 두려움 없이 오늘을 즐기며 살고 싶다. 나만 이런가. 모두들 그렇지 않을까. 내일 따위는 없다는 듯, 거침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아마 이렇게 살다가는 인성 쓰레기라는 말을 듣지 싶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성격과 성향의 문제가 있다. 타고난 게 이 모양인데. 누가 침묵하고 있으면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믿기지 않겠지만 내내 이런 걱정을 하며 살았다.


오늘도 당황해서 죄송합니다를 말했고 사실 그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는데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뭐가 죄송한데? 모르겠다, 나도. 실력을 키우고 돈을 벌어서 지금의 위치보다 높은 곳에 가겠다는 열망을 품지 않는 건 그 자리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책임감. 하여 학교 다닐 때 반장 선거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나 하나 돌보지 못하는데 반 전체를 어떻게 통솔하고 책임 지나. 내내 뒷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숙제를 했다.


이혁진의 장편소설 『관리자들』은 책임감을 정의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경이 굴착기를 현장 식당 앞으로 몰고 온다. 식당 안에서는 소장과 인부들이 회식을 하고 있다. 거침없이 현경은 굴착기의 액셀을 밟는다. 장면이 바뀌고 식당에서 현경은 목 씨에게 선길이 멧돼지 보초병으로 서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웬 멧돼지? 공사 밥이 부실하다는 인부들의 원성을 듣자 식당 주인은 난장판이 된 부식 비닐하우스를 보여준다. 멧돼지가 내려와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 바람에 밥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국도 옆 관을 매립하는 공사를 하는 현장이 『관리자들』의 배경이다. 소장을 비롯한 인부들은 공기(공사기간)를 맞추기 위해 겨울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관리자로 대표되는 소장은 소설에서 비열하게 그려진다. 멧돼지는 없었다. 식당 주인과 짜고 공사비를 뒷돈으로 만들기 위해 부린 수작이었다.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길은 소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반장의 술수로 심야에 공사 현장에서 보초를 서게 된다. 있지도 않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소설은 일의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을 다양한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일의 절차와 순서, 원칙은 상관이 없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일을 빨리 끝내고 그 사이에 자리를 지키고 빼 먹을 수 있는 돈이 있다면 없으면 만들어 내서라도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다. 주먹구구식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놀란다지 않는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대충대충 하는 것에. 하루 종일 전화를 돌리다 보면 아는 게 있다. 궁금해서 물어보면 정작 당사자도 잘 알지 못해 전화기를 돌린다.


혹은 이것도 모르냐는 식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침묵. 그래 나 몰라. 몰라서 전화하는데 왜 그걸 모르냐는 질문을 하면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 건데. 『관리자들』을 읽어가다 보면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 소장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거지 같은데 그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다는 것에. 개소리를 길고도 성의 있게 한다. 읽다 보면 그렇지, 세상 일이라는 게 책임감을 갖는 게 아닌 책임감에서 멀어질수록 이득이 되는 거지. 수긍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소설은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뜨린다. 현경이 굴착기를 밀고 들어가는 소설의 시작은 끝부분으로 이어진다. 왜 회식하는 인부들이 있는 식당으로 굴착기를 몰고 갈 수밖에 없는지 『관리자들』은 점진적으로 이야기한다. 소위 관리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보고 들었다. 경험도 했으리라. 교묘하게 책임감을 지우는 자들, 관리자들. 사람들 모이는 곳에 권력이 생기고 정치질이 시작된다.


그게 싫어서 진저리 나서 이렇게 살고 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까지 천천히 걸어와서 씻고 눕는다. 천변을 걷다 보면 금목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앞에 가는 어떤 이가 향기를 맡기 위해 마스크를 잠깐 벗었다. 모습이 아름다워 울컥했다. 전염병이 돌고 있어도 사람들이 아파도 꽃은 피고 향기를 퍼뜨린다. 여름 지나 가을.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잠시 서서 숨을 들이켠다. 살아 있어서 맡을 수 있는 향기에 감사하며. 다시 마스크를 쓰고 밤길을 걸어가더라. 나 역시 그렇게 했다.


『관리자들』의 마지막은 얇실한 희망을 피어 올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함께 일하고 밥 먹는 이를 궁지에 몰아넣는 그들은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착하고 순수하다는 말은 나쁜 뜻이란다. 좋은 말이 아니라고. 멍청하고 바보 같다는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는 거라고. 문학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피하고 도망가고 자꾸 숨는 나를. 너만은 나를 이해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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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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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괜히 불안에 걱정을 달고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느낌이 있고 곧 어떠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조금씩 찾아오는 것 때문에 불안해진다. 이런 말을 하면 나의 불안을 남에게 전가하는 꼴이 되고 쉽게 이해받지 못해서 괴롭다. 최대한 불안을 숨기고 걱정하지 않는 척. 그럼에도 얼굴에는 불안해하고 있는 게 다 드러난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설명해라. 난관을 뚫고 나가기 위한 조언이었다. 설명을 해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예감, 은 적중했고 나는 또 마음이 흔들렸다. 9시에서 6시까지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본심과 본성을 숨기고 잘 꾸민 사회적인 표정으로 무장한 마스크를 벗지 말기. 자꾸 감정을 드러내고 마스크를 벗으려고 해서 숨이 가빴다.


어떻게 지낸지도 모르게 금요일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와 드러눕는다. 한 주 동안 유미리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몇 장을 읽고 나면 잠이 쏟아졌다. 분량상 이틀이면 다 읽어버릴 텐데. 금요일 밤에도 책을 쳐다보기만 했다. 버텼다고 살아남았다고 어디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았고 수심이 깊은 강이나 바다에 서성이지도 않았음에 놀라워하면서. 그런데 집은 14층이다. 가까운 곳에 문만 열면 중력을 따를 수 있다는 것에 소름 끼친다.


국어, 사회, 역사, 도덕, 한문, 기술·가정을 가르칠 때는 들을 수 없던 말들을 요즘에야 듣는다. 아이들은 저들끼리 놀면서 습관처럼 욕을 주고받는다. 그게 애들이니까 그러려니 하면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말이었다. 어른들의 말은 달랐다. 맥락이 없는데 횡설수설 같은데 그걸 또 논리라고 주장한다. 이해시키는 건 안 된다. 듣다가 이야기가 끝나면 고개를 끄덕인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의 주인공 가즈가 고향을 떠나 우에노 역에 정착한 심정을 알 듯 말 듯 방관자의 시선으로 공감한다. 절대적인 건 아니고.


동일본 대지진이 나고 일본 사람들이 차분하게 줄을 서서 구호 물품을 받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았다. 저들의 국민성이야 익히 알고 있어서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뜻하지 않게 집과 가족을 잃었음에도 슬픔을 참는 얼굴, 질서를 지키는 것이 슬픔을 표출하는 것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얼굴이었다. 결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국적과 나라 간의 대립된 정치적 상황을 떠나서 내가 배우고 싶은 자세였다. 문학은 어떤가. 문학은 양극단이었다. 차분하고 경건한 얼굴이 있는가 하면 난폭하고 악의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얼굴이 있었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고향을 떠난 가즈의 생애를 다룬다. 현재 그는 우에노 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천막집에서 알루미늄 캔을 모아 팔거나 일용직에 나가 돈을 번다. 대체로 역사에 앉아서 행인의 대화를 듣거나 과거를 회상하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노숙인이 되기 전에 가즈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부인과 아들, 딸. 공사장을 전전하며 일을 했고 번 돈은 고향의 가족에게 보냈다. 아들이 엑스레이 기사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이제 좀 살만해졌다 싶었을 때 아들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그때부터였다. 가즈의 인생이 조금씩 흔들리고 삐걱거리는 게. 조금만 고생하면 아들은 전문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서 일할 수 있었다. 자취방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아들. 죽는 순간 혼자 있었을 아들을 생각하면 가즈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인다. 정확한 사인도 알 수 없었다. 부인 역시 잠을 자다가 죽었다. 그 순간 자신이 옆에 있었음에도 부인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혼자 죽게 내버려 둔 것이다.


손녀와 함께 살다가 젊은 아이의 인생을 자신을 돌보는 것에 쓸 수 없어 젊은 날 그랬던 것처럼 고향을 떠나온다. 갈 곳이 없어 도쿄 우에노 역에 그대로 살고 있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일본의 다른 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뉴스에서 본 재해에도 흔들림 없던 일본인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원전 지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애인들을 차에 싣고 대피 장소로 갔지만 다른 이들이 거북해한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 당했다. 이는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의 작가의 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일본인 자신은 차별받지 않는다. 그 논리는 일본이 약자를 차별을 방관하고 묵인하는 기제로 쓰인다. 유미리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어린 시절 집단 따돌림으로 학교를 중퇴했다. 일본 사회 안에서 무수한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다. 지지 않고 그러한 기억을 가지고 문학을 한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유미리는 원전 지역 근처로 간다. 그곳에서 후쿠시마현에 사는 사람들과 라디오 인터뷰를 한다. 서점을 열어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쓴다.


'나는 내가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측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에 존재하는, 차별당하고 배제 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미리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힌다. 차별과 배제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의 단단한 발언이다. 죽지 마, 살아남아, 너의 잘못이 아니다 같은 말을 무수히 자신에게 해주었을 거다. 아니면 그 말을 하는 것조차 싶지 않아 희곡을 소설을 문학이라는 탈출구를 찾아냈을 거다. 일단 자신을 먼저 구하기 위해.


때때로 이대로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 상황으로 몰린다. 그때는 그게 제일 쉽고 간단하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의 가즈는 열심히 살았다. 삶의 악조건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시간도 없어 비교 대상은 멀리서 보았던 천황 폐하였다. 가즈의 눈에 그들은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으로 생의 모든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태어남. 고맙고 화나고.


가즈의 마지막을 떠올린다. 나의 어제를 기억해 낸다. 삭제하고 싶지만 한 번 떠올려 보고 잊어버리는 작업을 한다. 오늘이 되었으니까. 어제로 머물지 않는. 죽고 싶음은 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라는 걸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안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내일도 살고 싶었던 한 사람의 내면을 깊고도 내밀하게 응시한다. 뭉개진 서사 안에서도 가즈를 인생을 추적하고 슬픔을 따라가는 일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현실의 나에게도 일어나는 일이었고 어쩌면 더한 경험을 마주할 수도 있기에. 담담한 얼굴로 살아가는 노력의 순간이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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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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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다리고고기다리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다. 기쁘다. 기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최근 들어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잔여 백신이 있을까 봐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숫자 0이 뜰 때마다 나중에 차례가 되면 맞지 뭐 애써 아쉬움을 기대로 돌려놓았는데. 순서가 돼서 예약을 하고 친절하게 맞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병원에 가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얌전히 내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1차와 2차까지 접종을 끝마쳤다.


1차 때보다 2차가 더 아팠다.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 근육통이 오고 어지러웠다. 진통제 세 알을 먹고서야 괜찮아졌다. 3일 째인 오늘, 팔만 욱신거리고 괜찮다, 다 괜찮다고, 헛소리를 섞은 개소리를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할란다. 나는야 백신 접종자니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일상생활이 일상생활이 아니게 됐을 때 오늘을 희망할 수 있었나. 아무래도 그건 먼 미래의 일쯤으로 여겨 우선 나부터 조심하면서 지내야지 했다.


원래도 잘 안 돌아다니지만 더 집에만 있는 사람이 됐다. 내가 움직이면 내가 움직여서 혹시나 병을 옮길까 봐 또는 병에 옮을까봐 두려움이 가득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보내오던 안전 문자에서 확진자 동선을 보며 긴장했고 마음을 졸였다. 슈퍼, 미용실, 학원, 택시, 버스, 회사. 그곳은 늘 내가 우리가 다니던 곳이었고 다녀야만 했던 곳이다. 일상을 격리 당했고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오늘까지 지냈다.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확진자가 다녀갔으니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를 받고(동선이 겹치지는 않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횟수를 늘렸다.


황정은의 산문집 『일기日記』는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소설가의 하루하루가 담겨 있다. 황정은의 문체를 좋아한다. 생략과 생략으로 이어진 문장.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하기보다 인물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으로 소설 읽기를 마칠 수 있는 소설을 쓰는 황정은. 2004년 1월 1일,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버스터미널에서 샀다. 그리고 발견한 황정은의 소설, 황정은. 누런색의 공책에 데뷔작 「마더」의 감상을 썼다. 앞으로 응원해야지. 소설집이 나오면 사야지.


『일기日記』를 읽다가 끝부분을 읽어가다가 크게 놀라고야 말았다. 내가 아는 황정은이 맞나 싶어서. 이 말은 잘못됐다는 걸 안다. 나는 인간 황정은을 모른다. 다만 그가 쓰는 소설을 읽고 어떤 부분을 짐작하는 정도이다. 이 책은 표지에 '황정은 에세이'라고 적혀 있는데. 소설이 아닌데. 왜 나는 『일기日記』를 소설로 읽고 싶을까. 차라리 소설로서 허구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호를 해주고 싶은 걸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아픈 책이었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것은? 황정은의 대답은 허리와 척추 건강이다. 의자에 앉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의자에 앉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면 하루나 이틀이 아니고 내내 그래야 한다면 힘들고 막막한 일이 될 수 있다. 뭣 모르던 시절, 사무직이나 할까 그랬다. 역지사지를 모르고서. 남이 하는 일은 쉬워 보이는 같잖은 생각으로. 세상에는 내가 하는 일이 제일 어렵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만이 고되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모든 이들이여, 힘을 내시길.


산보, 파주, 동거인, 세월호, 일기, 작약, 종이책, 전자책, 문장이라는 단어를 『일기日記』를 읽으면 만날 수 있다. 하루 종일 숫자를 들여다보고 숫자를 생각하는 내가 혹은 당신이 『일기日記』를 펼치게 되는 행운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쓰는 사람도 이해했을까 싶은 문장이 아닌 주어, 목적어, 서술어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문장으로 담담한 어조로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어려운 시절을 들려준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마스크를 쓴 채로 수업을 하면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의아해하던 시간을 지나 마스크가 한 몸이 된 듯 살아가는 지금까지 힘든 티를 조금만 내면서 잘 버티고 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만큼 힘든 티를 내는 것. 많이 힘든 건 일기에 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아닌 곳에 일기를 쓴다. 연필을 눌러 공책에 쓰거나 비공개로 쓰면서 혼자만 들여다본다. 안 힘들다고 했지만 사실은 너무 힘이 들어 하루를 포기할까도 마음먹은 우리, 나였다. 소설가 황정은의 일상도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조카를 자주 보는 대신 건강과 안녕을 빌어주고 좋은 책상을 사서 보내준다. 2014년 4월 16일이 흐르고 매해 4월이 되면 목포로 떠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나의 안녕은 곧 당신과 우리의 안녕이라는 걸 배웠다. 전 국민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었다는 뉴스를 보며 벅차하면서 아프다고 징징대는 나를 위해 비싼 샤인 머스캣을 사서 안겨주는 아름다운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일기를 쓰는 오늘이 있다는 것에 행복과 안도를 느낀다. 무사한 오늘을 기록으로 남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지랄맞은 일에 화를 내지 않고 심호흡을 하고 참아내면서. 좋게 말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짜증이나 내지 말아라. 네가 하기 싫은 걸 왜 나에게 시키는 건데. 이럴 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 썩은 내 표정을 반은 가릴 수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나의 본성(일희일비하고 짜증쟁이에 소심하고 불안한)을 드러내지 않고 바닥에 겨우 남은 사회성을 긁어모아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잠깐 웃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황정은이 친필로 쓴 '평안하시기를'이라는 문구를 들여다본다. 감당하지 못할 일이 닥쳐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일상인인 황정은이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한다. 내일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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