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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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괜히 불안에 걱정을 달고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느낌이 있고 곧 어떠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조금씩 찾아오는 것 때문에 불안해진다. 이런 말을 하면 나의 불안을 남에게 전가하는 꼴이 되고 쉽게 이해받지 못해서 괴롭다. 최대한 불안을 숨기고 걱정하지 않는 척. 그럼에도 얼굴에는 불안해하고 있는 게 다 드러난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설명해라. 난관을 뚫고 나가기 위한 조언이었다. 설명을 해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예감, 은 적중했고 나는 또 마음이 흔들렸다. 9시에서 6시까지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본심과 본성을 숨기고 잘 꾸민 사회적인 표정으로 무장한 마스크를 벗지 말기. 자꾸 감정을 드러내고 마스크를 벗으려고 해서 숨이 가빴다.


어떻게 지낸지도 모르게 금요일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와 드러눕는다. 한 주 동안 유미리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몇 장을 읽고 나면 잠이 쏟아졌다. 분량상 이틀이면 다 읽어버릴 텐데. 금요일 밤에도 책을 쳐다보기만 했다. 버텼다고 살아남았다고 어디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았고 수심이 깊은 강이나 바다에 서성이지도 않았음에 놀라워하면서. 그런데 집은 14층이다. 가까운 곳에 문만 열면 중력을 따를 수 있다는 것에 소름 끼친다.


국어, 사회, 역사, 도덕, 한문, 기술·가정을 가르칠 때는 들을 수 없던 말들을 요즘에야 듣는다. 아이들은 저들끼리 놀면서 습관처럼 욕을 주고받는다. 그게 애들이니까 그러려니 하면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말이었다. 어른들의 말은 달랐다. 맥락이 없는데 횡설수설 같은데 그걸 또 논리라고 주장한다. 이해시키는 건 안 된다. 듣다가 이야기가 끝나면 고개를 끄덕인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의 주인공 가즈가 고향을 떠나 우에노 역에 정착한 심정을 알 듯 말 듯 방관자의 시선으로 공감한다. 절대적인 건 아니고.


동일본 대지진이 나고 일본 사람들이 차분하게 줄을 서서 구호 물품을 받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았다. 저들의 국민성이야 익히 알고 있어서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뜻하지 않게 집과 가족을 잃었음에도 슬픔을 참는 얼굴, 질서를 지키는 것이 슬픔을 표출하는 것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얼굴이었다. 결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국적과 나라 간의 대립된 정치적 상황을 떠나서 내가 배우고 싶은 자세였다. 문학은 어떤가. 문학은 양극단이었다. 차분하고 경건한 얼굴이 있는가 하면 난폭하고 악의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얼굴이 있었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고향을 떠난 가즈의 생애를 다룬다. 현재 그는 우에노 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천막집에서 알루미늄 캔을 모아 팔거나 일용직에 나가 돈을 번다. 대체로 역사에 앉아서 행인의 대화를 듣거나 과거를 회상하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노숙인이 되기 전에 가즈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부인과 아들, 딸. 공사장을 전전하며 일을 했고 번 돈은 고향의 가족에게 보냈다. 아들이 엑스레이 기사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이제 좀 살만해졌다 싶었을 때 아들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그때부터였다. 가즈의 인생이 조금씩 흔들리고 삐걱거리는 게. 조금만 고생하면 아들은 전문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서 일할 수 있었다. 자취방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아들. 죽는 순간 혼자 있었을 아들을 생각하면 가즈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인다. 정확한 사인도 알 수 없었다. 부인 역시 잠을 자다가 죽었다. 그 순간 자신이 옆에 있었음에도 부인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혼자 죽게 내버려 둔 것이다.


손녀와 함께 살다가 젊은 아이의 인생을 자신을 돌보는 것에 쓸 수 없어 젊은 날 그랬던 것처럼 고향을 떠나온다. 갈 곳이 없어 도쿄 우에노 역에 그대로 살고 있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일본의 다른 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뉴스에서 본 재해에도 흔들림 없던 일본인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원전 지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애인들을 차에 싣고 대피 장소로 갔지만 다른 이들이 거북해한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 당했다. 이는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의 작가의 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일본인 자신은 차별받지 않는다. 그 논리는 일본이 약자를 차별을 방관하고 묵인하는 기제로 쓰인다. 유미리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어린 시절 집단 따돌림으로 학교를 중퇴했다. 일본 사회 안에서 무수한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다. 지지 않고 그러한 기억을 가지고 문학을 한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유미리는 원전 지역 근처로 간다. 그곳에서 후쿠시마현에 사는 사람들과 라디오 인터뷰를 한다. 서점을 열어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쓴다.


'나는 내가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측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에 존재하는, 차별당하고 배제 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미리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힌다. 차별과 배제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의 단단한 발언이다. 죽지 마, 살아남아, 너의 잘못이 아니다 같은 말을 무수히 자신에게 해주었을 거다. 아니면 그 말을 하는 것조차 싶지 않아 희곡을 소설을 문학이라는 탈출구를 찾아냈을 거다. 일단 자신을 먼저 구하기 위해.


때때로 이대로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 상황으로 몰린다. 그때는 그게 제일 쉽고 간단하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의 가즈는 열심히 살았다. 삶의 악조건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시간도 없어 비교 대상은 멀리서 보았던 천황 폐하였다. 가즈의 눈에 그들은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으로 생의 모든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태어남. 고맙고 화나고.


가즈의 마지막을 떠올린다. 나의 어제를 기억해 낸다. 삭제하고 싶지만 한 번 떠올려 보고 잊어버리는 작업을 한다. 오늘이 되었으니까. 어제로 머물지 않는. 죽고 싶음은 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라는 걸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안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내일도 살고 싶었던 한 사람의 내면을 깊고도 내밀하게 응시한다. 뭉개진 서사 안에서도 가즈를 인생을 추적하고 슬픔을 따라가는 일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현실의 나에게도 일어나는 일이었고 어쩌면 더한 경험을 마주할 수도 있기에. 담담한 얼굴로 살아가는 노력의 순간이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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