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금지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4
박상률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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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의 밤에 나는 바보였다. 그 밤에 누군가는 국회에 진입하는 군용차를 맨몸으로 막아서고 월담하는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도왔으며 밤새 추위에 떨며 계엄 해제를 부르짖었는데. 사람들의 사소하고 거친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척했고 이내 피곤해져 쓰러져 잤다. 뉴스도 기사도 보지 못했다. 내가 세상을 외면한 사이에 용기가 있든 없든 깨어 있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달려나갔다. 


세상에. 말도 안 돼. 2024년에 계엄령이라니. 계엄의 시대를 살아본 적도 없었지만 그 시절이 얼마나 무섭고 엄혹했는지 책과 영화, 드라마, 영상에서 추체험을 했다. 서울역에서 대학생들이 회군을 한 다음날 광주에서만이 비폭력 시위가 있었다. 광주를 진압하러 공수부대가 들어왔고 그들은 작전명을 '화려한 휴가'라고 이름 짓고 얼마 전에는 충정 훈련을 했다. 


같은 나라 국민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고 대검을 찌르고 총을 발사했다. 앉아쏴 자세. 조준사격. 헬기 사격. 광주는 고립되었고 그 와중에도 강도나 폭행 사건이 없었다. 다친 사람들을 위해 헌혈을 했고 밥을 나누며 고립의 시간을 견뎠다. 전남도청에서의 마지막 날에도 어린 소년은 집에 가지 않았다. 엄마가 난중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할 때 알겠다고 어여 가라고 한 소년이 거기 아직 있다. 소년은 오고 있는 중이다. 그 밤과 낮의 시간이 다시 찾아오는 것일까.


박상률의 청소년 소설 『통행금지』는 우리의 2024년 12월 3일을 지켜냈던 1980년 5월 18일을 다룬다. 현재가 과거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바꿔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 때 그렇다고 단박에 말할 수 있었던 건 1980년 5월의 광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광주를 혼자 두었다. 광주를 오해했다. 광주를 감췄다. 문학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외친다. 광주를 환한 빛으로 꽃 핀 쪽으로 데리고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통행금지』는 광주 외곽에서 딸기 농사를 하는 광민이네 가족의 봄을 그린다. 쥐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진돗개 찐돌이와 광민이네 가족의 봄의 이야기. 창고에 쌓인 곡식을 쥐로부터 지키기 위한 찐돌이의 아침마다의 사투를 시작으로 소박하지만 화목한 광민이네 가족은 1980년 5월의 봄에도 그렇게 내내 살수 있을 줄 알았다. 광민이는 중학생이고 농구공을 갖고 싶어 한다. 아버지는 광민이의 그런 마음을 알아채고 서둘러 딸기를 수확한다. 


늦은 봄에 귀하게 나온 딸기는 시장에서 다 팔리고 아버지는 광민이를 위해 농구공을 사서 돌아간다. 광민이는 아버지와 농구공을 반가워하고 찐돌이와 농구를 한다. 딸기가 짓무르기 전에 따서 서둘러 팔아야 한다. 아버지는 광주 시내에서 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그저 봄이니까 잠깐 시끄럽겠지 하면서 딸기를 팔러 광주로 들어간다. 그 밤 광주 밖으로는 모든 출입이 통제되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다시 광주 시내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역사가 스포일러이기에 『통행금지』를 읽어갈수록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아버지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총을 쏜 사람들은 있는데 총을 쏘라고 지시한 자는 없다니.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니. 전시 상황도 아닌데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해놓고 뻔뻔하게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다니. 


세상이 너무 어두워 집에서 가장 밝은 걸 들고나왔다는 말에 울컥했다. 어려운 시절에 우리는 유머와 해학을 잃지 않는 민족이므로 깃발에 적힌 재미있는 문구와 함께 1980년 5월 광주의 어둠과 빛으로 지금을 이겨낸다. 문학은 그래서 힘이 있다. 『통행금지』는 그래서 소중한 빛이다. 걱정은 조금만 하고 검소하게 살아내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책이다. 


죽은 자가 산자를 구했다. 이제는 산자가 산자를 위해 그 밤에 달려 나갔다. 두려움 없이 차를 막아 서고 '전국누워있기연합-"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줘라 우리가 집에서 나와서 일어나야겠냐"'라는 구호를 적어 깃발을 만들어 집회에 참석했다. 유머가 세상을 구한다. 귀여움과 다정함 더해서. 그 어떤 시각에도 우리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광민이 아버지가 농사지은 딸기를 사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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