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당하지 못할 슬픔도 고통도 없 아니 있다. 이게 진짜 일리 없어라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매번 찾아온다. 그럴 때 반복적으로 나를 위로하고 은근슬쩍 넘어갔다. 넌 강한 아이다. 이겨낼 수 있다. 힘내, 인마. 하나마나 한 말을 해주었다. 뭐 이겨 내고 다시 일어서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다가. 그러다 괜찮지 않은 걸 알았다. 포기하고 싶었구나.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갔구나.
어떻게 알았냐면 어느 날부터 이 애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 년 동안 입지 않은 옷과 신지 않은 신발부터. 휴일에 낮잠도 자지 않고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분리수거장을 몇 번이나 드나드는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았다. 말을 걸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려나 보자. 그랬더니 이제는 읽지도 않은 책들도 중고 판매하기를 신청하고 있네.
아무것도 되지 않고 단기 계약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나름 비참한 현실에(이 애는 자기 연민이 강하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샀다. 책장과 책상에 쌓인 책들. 그래놓고 읽을 책이 없다고 계속 샀다. 흘려보내지 못하고 고여 있는 썩은 마음에는 불안의 지분이 높았다. 꼭 읽을 책만 남기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어도 치우기 편하게 물건의 수를 줄이자. 그러면 책부터 없애야겠지.
권혜영의 첫 장편소설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는 비움 속에서 남은 책이다. 신간이기도 하고 전에 읽었던 단편집이 내 취향과 맞았다는 기억이 남기도 했다. 박치기 한 번에 영혼이 뒤바뀐(《신입사원 강회장》) 약간의 막장이 가미된 드라마의 정주행이 끝나기도 해서. 양심상 책 한 장은 읽어줘야 할 것 같아서.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를 펼쳤다. 한 장 아니 한 챕터만 읽으려고 했는데 다 읽어버렸지 뭐야.
서른여덟에 과로사로 죽은 '나'는 눈을 뜬다. 죽었는데 어떻게 눈을 뜰 수 있어?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소설 속 이 세계는 앞으로 더 한 일도 펼쳐질 거니까. 작가가 그렇게 썼다면 아 네 그렇습니까 하면서 읽어내기.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눈을 떴는데도 하필이면 회사 책상이다. 젠장. 일하다 뒤졌는데(이런 과격한 어휘는 쓰고 싶지 않지만 뒤지게 쓰고 싶다.) 눈을 떠도 회사 책상이라니 믿을 수 없어 다시 눈을 감고 싶지만 죽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이 눈을 뜨자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의 속마음이 말풍선으로 떠오른다. 이게 뭐지. 나는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확인한다. 거울 앞에는 쿨뷰티 계열의 미소녀가 있었다. 살아생전 블랙 기업의 야근 머신이었지만 오타쿠이기도 한 나는 곧 이곳이 이세계 회귀물 안이라는 자각을 한다. 얼굴은 예쁘지만 통장 잔고는 그렇지 못한 이누리 주임으로 회빙환의 세계로 들어왔다.
아하. 요즘 트렌드구나. 현실의 내가 방금 본 드라마도 그랬지. 대기업 회장과 다리 다친 축구 선수의 영혼이 바뀐 드라마의 세계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그래도 연결성은 획득했다. 소설에 몰입이 제대로 되겠어. 오랜만에 책을 정주행했다. 쿨뷰티 미소녀 이누리 주임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으니까.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는 그게 그러니까 어떤 소설이냐면. 음.
모든 걸 다 포기하면 좋겠기에 물건 정리를 하는 나를 다시 책 앞으로 데리고 온 아주 고맙고 친절하고 웃기고 관대한 소설이다. 이제는 무엇이 되려고 하기보다 진만(드라마 모자무싸의 주인공의 형)의 말대로 그냥 존재하기를 바라는 나에게 존재하기 얹고 책 읽기(근데 책은 당분간 사지 말고 있는 거 읽어)라고 한 번 더 말해주는 소설이다. 동만(드라마 모자무싸의 주인공)의 말대로 웃기는 사람 되기가 삶의 목적이 되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소설이다.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는 요상하게 사람을 웃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쫓아내고(훠이 훠이 물러가라) 읽었다. 어차피 죽을 거니까 지금 죽지 말라고 말해주는 이세계의 귀한 소설. 버리니까 읽을 수 있었다. 버리니 남았다 같은 역설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