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방지매트로 800평이나 되는 농장을 다 깔을 수는 없었다. 우선은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특수재질로 만들어진 잡초방지매트는 물론이고 그것을 땅바닥에 고정시킬 때 쓰는 핀(자 형 핀이다) 또한 저렴하지 않다. 그러니 작물을 심은 밭 중심으로 잡초방지매트를 깔 수밖에 없을 터, 그 외는 잡초들이 나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별나게 기승을 부리는 잡초들이 K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특히 비닐하우스 뒤편의 잡초들이 그랬다. K더 이상 놈들을 방치할 없다!’고 판단했다.

간만에 예초기의 시동을 건 뒤 어깨에 메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무성한 채로 K를 반기는(?) 놈들. 이런 놈들은 최대한 바짝 깎아서 기를 꺾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예초기 날을 지면과 평행되게 한 뒤 바짝 낮추고는 천천히 나아갔다.

왜에에엥!’

사납게 도는 날에 거침없이 잘리는 잡초들. 얼마나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인지, 잘리면 대개 흙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그대로 더미로 쌓여 흙바닥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K는 한 20분 간 놈들을 해치우고서 농막으로 돌아왔다.

바로 일주일 전의 일이다.

 

오늘 일주일 만에 K는 다시 그곳으로 예초기를 메고 갔다. 만약 놈들이 다시 자라는 기미가 보이면 한 번 더 예초기를 돌릴 작정으로.

다행히 그렇지 않고 먼젓번 잘린 잡초들이 부피가 바짝 줄어든 채로 널려 있었다. K가 아는 한, 모든 생명체는 일단 숨이 끊기면 서서히 몸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부피가 바짝 줄어들어 나중에는 마른 거죽만 남는다. 별나게 기승부리던 잡초들이 그렇게 되었다. K는 마음 편히 그 꼴들을 보다가, 기겁했다. 마른 거죽뿐인 잡초들 사이로 뱀의 긴 몸통이 여러 토막으로 잘린 채 목격된 것이다.

짐작이 갔다. 일주일 전 K가 여기서 예초기를 돌릴 때 잡초 속에 숨어 있던 뱀이 얼결에 예초기 날에 잘렸다는 것을. 무성한 잡초들과 함께 봉변을 당하니 눈에 뜨이지 않았다가잘린 잡초들의 부피가 바짝 줄어든 오늘에야 목격된 것이다.

목격(目擊)이란 한자어는 이럴 때 유용했다. 그냥 보았다는 표현보다는 눈에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니까.

충격 받은 K는 황황히, 예초기를 돌리지도 못하고 그냥 든 채 농막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농막 안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자료를 검색하고 있었다. 좋은 세상이다. 스마트폰은 손 안의 컴퓨터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쨌든 K는 평화롭게 인터넷을 하는 아내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방금 전 비닐하우스 뒤편에서 벌어진 일을 일러주기로 마음먹었다. 수시로 잡초들을 김맨다고 풀숲을 누비는 모습이 걱정돼서다. 그렇기도 하고 그런다 해도 놀랄 아내 같지 않으니까. 언젠가는 K한테 꽈리 밭으로 들어가는 긴 뱀 한 마리를 봤다!’고 자랑처럼 말한 적도 있지 않았나.

여보 말이야, 방금 내가 비닐하우스 뒤편에 갔다가

하면서 벌어진 일을 그대로 전했다. 아내의 반응이 의외였다. 기겁해 소리쳤다.

아이고 끔직해.”

산 뱀은 괜찮고 토막 난 뱀은 끔직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K는 아내한테 덧붙여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함부로 잡초들 김맨다고 풀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나는 풀밭에 들어갈 때마다 예초기를 앞세워 돌리니까 걱정 없지.”

그러자 아내가 엉뚱한 말을 했다.

그 뱀 토막들을 어떻게 했어? 치웠어?”

그러고 보니 K는 그 자리를 황황히 떴다. 살아 있는 뱀도 그렇지만 토막 난 뱀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뭐라 즉답을 피하고서 침묵하며 앉아 있다가토막 난 채 내버려둔다면 앞으로는 예초기를 들고서도 그 쪽은 무서워서 가지 못할 것이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는 것일 텐데 그래 갖고 이 풀밭 천지에서 어떻게 농사짓나? 그렇다. 몹시 싫더라고 꾹 참고서 지금 다시 그 현장을 가서, 그 토막 난 것들을 다 치워버려야 한다.’

 

K는 다시 예초기를 들고서 그 현장에 갔다. 긴장해서 거죽만 남은 잡초들 사이를 살피자 역시 토막 난 뱀의 몸통이 보였다. 부엌칼로 썬 소시지의 토막들 같다. K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좀 더 자세히 살폈다. 놀랍게도 대가리가 삼각으로 뾰족한데다가 몸통의 무늬도 얼룩덜룩한 까치 살모사였다!

한 번 물리면 일곱 걸음을 띠기 전에 죽는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독사.’

더욱 놀라운 것은 예초기에 잘린 대가리 꼴을 봤을 때 대가리를 고추 세우고 있다가 잘렸다!’는 사실이다. 짐작이 갔다. 이놈이, 예초기가 굉음을 내면서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대가리를 바짝 세우고서 맞서려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만일 K가 예초기를 돌리지 않고 무심하게 풀밭에 들어갔다가는 이놈한테 발을 물려 비명횡사했을지 몰랐다.

천만다행이었다. 운이 좋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문득 엄습하는 두려움.

까치살모사를 단번에 처치하는 예초기라니. 이 무서운 것을 앞으로는 정말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K는 다른 때와 달리 예초기를 돌리지도 않고 들기만 한 채 조심조심 농막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2020년 어느 여름날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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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탓일까, 대형영상으로 중계되는 가요제에 청중이 한산한 것은.

하지만 가요제 경연에 참가한 분들의 열기와 주위의 가을햇살은 풍성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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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가을은 호수와 산과 하늘의 풍경에만 오는 게  아니다.

서면의 호숫가 어느 카페에도 왔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의 선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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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20.10.31.) 농장에 가서 한 일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무려 한 달 만에 농장을 갔기 때문이다. 사는 집에서 30리 가까운, 먼 데 있는 우리 농장이라 다른 바쁜 일들이 있으면 거의 방치하듯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바쁜 일들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하나하나 밝힐 것이다.

 

오늘 농장에 가서 한 첫 번째 일은 두릅나무들 낫으로 쳐주기였다. 원래는 봄에 두릅을 수확한 뒤 했어야 마땅한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늦가을인 오늘에서야 실행한 거다. 아내랑 낫으로 두릅나무들을 지상에서 60cm' 높이로 쳐 주며 다녔는데 100평 넘는 두릅나무 밭이라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내년 봄 밥상에 오를, 향긋한 두릅 반찬을 떠올리며 견뎠다.

 

두 번째 한 일은 농막 앞의 나무 벤치와 파라솔 정리였다. 겨우내 방치해두었다가는 나무 벤치나 파라솔이나 햇빛과 바람에 쓸 데 없이 삭는다. 그런 손해도 없다. 그래서 파라솔은 접어 창고에 넣었고, 나무 벤치는 천막으로 감싸 묶었다. 춘심산촌 농장이 단순히 농사만 짓는 곳이 아니라 주위의 변해가는 자연 풍경도 즐기는 곳이라는 증거로써 존재하는 나무 벤치와 파라솔. 내년 봄, 농사를 재개하는 어느 햇빛 화창한 날을 기다리며 긴 잠에 들어갔다.

 

세 번째 한 일은 비닐하우스 찢어진 데 보수하기였다. 비닐하우스가 8년째 되면서 햇빛과 바람에 삭아 여기저기 손상되기 시작했는데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시설농사의 기능을 잃는 건 당연하고 농장에 흉물스런 풍경이 생겨난다.

사실 사다리를 갖다 놓고 올라서서 비닐하우스를 보수하는 일은 위험도가 높다. 보수 테이프와 가위를 양손에 나눠들고 사다리 위에 서기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사다리를 디딘 발이 자칫 미끄러졌다가는 골절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닐하우스를 고개 젖혀 보면서 하는 작업이라 자세도 편치 않다. 다음번에는 보다 편하고 안전한 보수 방법을 찾아보고서 할 것이다. 여하튼 한 시간 가까이 걸려서 비닐하우스 찢어진 대여섯 군데의 보수를 마쳤다.

 

네 번째 한 일은 관정 폐쇄하기였다. 구체적으로는 관정 안 모터의 전기를 끈 뒤 그 속의 물을 빼내어 비우는 일이다. 만일 방치해두었다가는 머지않아 닥칠 영하의 날씨에 모터가 얼어서 동파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터는 몇 십 만원 되는 고가의 물건이다.

지하 60m의 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기능을 몇 달 간 정지시키는 일이라 신중해야 한다.

나는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라도 된 듯, 몽키 스패너와 십자드라이버를 양손에 나눠쥐고는 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전기부터 끈 뒤 시작했다. 10여 분간 긴장 속에 이뤄진 작업으로 관정 속 모터는 숨을 멎었다. 관을 통해 지상 가까이 올라와 있던 지하수가 어쩔 수 없이 한참 아래 지하로 다시 내려가 따듯한 지열 속에 겨울잠을 자기 시작했다.

농장이 겨울잠에 들어갔다.

 

아내와 나는 차의 시동을 걸어 농장을 떠났다. 이제 춘심산촌 농장은, 산천초목이 온통 푸른 내년 4월 어느 날부터 다시 숨을 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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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는 단순히 강 건너 갈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넘어 그리움의 수단이 아닐까?

영월 판운리 섶다리를 직접 눈으로 본 순간 나는 그 그리움을 체험하고 싶었다.

내 발길 아래 그리움이 하나하나 추억으로 바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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