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째 술
그저께, 초등 동창끼리 모였다. 3일간 술을 마셨더니 몸이 너무 안좋아,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1차를 하는 와중에 전화가 왔다. 어제 같이 마신 사람이다.
"지갑 다 찾아봤는데 없거든요. 미안해서 제가 오늘 한잔 대접하려는데, 한시간쯤 후에 괜찮으세요?"
난 지갑의 충격에서 이미 회복되었다고, 이미 그 일은 잊었다고 했는데,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이따 전화나 해보세요"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도 다른 이들과 술을 마시고 있으니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겠지 싶었다. 동창들이 2차를 가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 먼저 간다고 하고 집에 갔다. 집에 가서 동창 여자애-유부녀다-가 생일선물이라며 준 박스를 뜯었다. 개 그림이 그려진 잠옷이었다. 지난 20년간 추리닝 차림, 혹은 러닝 차림으로 잠이 들곤 했었는데, 내게 잠옷이 생기다니. 몸에 잘 맞는다. 잠옷을 입고 자리에 누웠는데, 전화가 왔다. '그'였다.
그: 뭐하세요. 저 지금 독수리다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 오늘만 좀 봐주면 안될까요? 죽을지도 몰라서...
그: 절대 안되죠. 빨리 나오세요. 애들도 다 보냈는데....
난 다시금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그날 내가 귀가한 시각은 오전 2시 43분이었다.
29번째 술
지옥의 5연전 끝날이지만, 어젠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다. 몸은 오징어처럼 늘어지기만 했고, 계속 잠만 쏟아졌다. 약속장소인 xx으로 가는 기차에서, 난 못내릴까봐 별의별 방법을 다 써야 했다. 자리가 있는데도 문가에 가 서있거나-너무 피곤해서 관뒀다-사이다를 산 뒤 옷 속에 넣는 방법-조금 있으니 적응이 되어 효과가 없어졌다-수염을 하나씩 뽑기도 했다-너무 아파서 신경질이 막 났다. 그러다보니 xx역이었고, 무사히 내렸다.
친구-그 친구는 술을 싫어한다-를 만나 저녁을 먹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안되겠다. "여기 소주 한병 주세요!" 소주 석잔이 들어가자 혼미했던 내 정신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거 알콜중독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술기운이 떨어지고 나자 다시금 피로가 쏟아져, 3차는 다시 소주집으로 갔고, 거기서 소주 한병 반을 마셨다. 두잔쯤 마시니 정신이 반짝 들어 언제 피곤했냐 싶어졌고, 이런 식이라면 세병도 먹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기차 시간 때문에 9시쯤 나와 집으로 갔다.
나름대로 푹 잤지만, 여전히 삭신이 쑤신다. 정말 힘든 한주였다. 오늘 쉬고 내일부터 다시금 5연전이 시작된다. 이렇게 체력이 약해졌다니, 운동을 좀더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