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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재미있다고 명성이 자자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영화는 때를 놓치면 비디오로 봐야 하지만, 책은 원할 때는 언제고-3년 안에는-볼 수 있다는 게 커다란 장점이다. 떠들썩한 명성대로 난 이 책을 매우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건 이 책이 잘나가는 위선자들에 대한 냉소와 조롱을 유감없이 퍼붓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인 마이클 무어가 원체 장난꾸러기여서 그런 것도 있다. 부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무어가 한 질문을 보라. '조지, 자네 정말 성인 수준으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가?(68쪽)'
최근 나온 <웃음은 최고의 전략이다>라는 책 제목처럼, 자기 주장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난 시종 진지하게-다른 말로는 지루하게-팔레스타인의 참상을 고발한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보다 마이클 무어가 이 책에서 발랄하게 묘사한 몇줄의 내용들이 미국인들에게 중동문제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무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널 엿먹이겠다고 하면서 엿먹이는 놈과 안그런 척하면서 엿먹이는 놈 사이에서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말이다(301쪽)] 그래서 그는 랠프 네이더를 지지하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선거 직전 부시의 당선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플로리다에서 고어에게 표를 던질 것을 호소한다.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놓고 갈등해야 했던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한 상황인데, 한국에서 노무현이 당선된 데 비해 미국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 그 이후 벌어진 일들로 보건대, 무어가 옳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아주 작은 차이밖에 없지만, 그 작은 차이는 한반도의 운명에 아주 커다란 차이를 가져왔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이 되었다면 우리 현실도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까? 검찰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정부 하에서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지고, 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른 걸 보면 누가 되었던지 우리의 삶에는 그다지 큰 변화는 없었을 것 같다.
언론들은 노무현 당선의 의미를 '변화에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를 바라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변화라는 것은 대통령 하나 뽑아놓고 나자빠진다고 오는 것은 아니다. 변화에의 욕구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싸워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평소 프로축구를 외면해 오다가 A매치만 열렸다 하면 전국민이 축구팬이 되는 우리나라 축구처럼, 우리 정치도 선거 때만 반짝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당이 겨우 5% 남짓한 득표밖에 하지 못하고, 천만 노동자 운운하면서도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100만에 불과한 나라에서, 홍세화님이 늘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자가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나라에서, 변화는 오지 않는다. 변화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며, 노력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니까.
끝으로 이 책에서 공감했던 말들을 두개만 적어본다.
[갑자기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겼으면 집권자인 우리들을 쫓아내야 마땅할 텐데, 웬걸, 우리를 위해 표를 던지는 것 아닌가(195쪽)]
여성의 지위가 세계 최하위인 우리나라에서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남자들은) 손을 콧구멍, 항문....으로부터 멀리하자. 버스나 기차에서 ...다리를 모으고 앉자(203쪽)]
동서를 막론하고, 남자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