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왔어요!”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표정으로 날 맞으셨다.

“엄마, 밥 주세요. 배고파요”

“당연하지! 조금만 기다려. 닭, 돼지, 소 다 줄게”


오늘은 간만에 집에 일찍 가는 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난 이런 상상을 하며 혼자 웃음지었다. 하지만 집에 가니 엄마는 안계신다. 언제쯤 오시는지 휴대폰을 해봤지만 역시 안받으신다. 밥 생각이 사라지고 피로가 몰려온다. 잠을 자다가 아홉시 쯤 일어났다. 엄마는 그때까지도 오시지 않았다. 결국 난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었다. 냉장고를 열어본다. 뭐가 가득 든 것 같은데 막상 먹을 반찬은 없다. 할 수 없이 김치를 꺼낸다. 라면을 다 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살 것 같다. 내가 엄마를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출사건을 일으키던 열흘 전 그날, 엄마는 드디어 할머니를 돌봐주실 분을 구했다. 그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갑자기 생긴 자유를 만끽하느라 십대 소녀가 돼버리셨다. 밤 11시쯤 들어가도 엄마는 안계셨고, 아침엔 7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가셨다. 사흘만에 집에 들어온 지난 토요일, 간만에 엄마한테 인사나 하려고 아침 일찍 방문을 열었지만 침대엔 이불 뿐이었다. 휴대폰을 보니 문자가 와있다.

“메밀축제 보러 봉평 가는 길이야. 집 잘 봐라”

문자를 보고나니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엄마가 드디어, 내가 바라는 그런 삶을 사시는구나 싶어서.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심심하지 않으시다. 밥 때가 되었는데 엄마가 안온다고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다. 원래부터 인기 짱이었던 엄마는 이제 훨훨 날고 계시다. 엄마의 말이다.

“자유가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어”

아주머니에게 드리는 돈은 60만원, 엄마가 자유를 만끽하는 데는 그거면 충분했다.


하지만 엄마의 자유는 한시적이다. 60만원이란 저가에 쓸 수 있는 아주머니를 여동생이 그냥 넘길 리는 없으니까. 그보다 훨씬 비싼 연변 아주머니에게 두 아이를 맡겨 오던 터였는데, 추석이 지나면 할머니를 돌보던 그 아주머니는 여동생 집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단다. “그럼 어떡해?”란 내 질문에 엄마는 “새로 구해야지”라고 답했지만, 60만원도 마지못해 받아들인 우리 엄마가 그보다 더 비싼 아주머니를 구할지 의문스럽다. 아주머니도 “똑같은 말을 몇 번씩 한다”는 할머니와 있기 꺼려한다지만, 여동생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울 엄니가 한스럽다. 다른 딸들 같으면 없던 아주머니도 새로 구해주겠지만, 여걸인 동생은 있던 아주머니도 빼앗아 간다. 엄마가 간만에 얻은 소중한 자유를 조금만 더 누리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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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9-2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렇게 좋으신걸 이제사 다시 누리시다니요..어여 오래있을분을 구하셔야 할텐데요..

이리스 2006-09-2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는 정말 엄청난 힘을 가졌죠. ^^

ceylontea 2006-09-2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머니 좋으시겠어요.. 정말 오래 계실 분을 구해서.. 할머니도 어머니도 편히 지내시기를.

2006-09-21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또또유스또 2006-09-2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자도 보내실 수잇는 세련되고 멋진 어머님이시군요...
더 좋은 분 구하셔서 어머님의 나날들이 멋지고 행복한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봉평의 그 멋진 어머님들 중에 님의 어머님께서도 계셨던 듯.. ^^

춤추는인생. 2006-09-22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도 여동생도 고려해야겠지만.
실은 전 어머님 자유만끽이 가장 중요한거 같아요. 그 행복한 나날이 오래가시길..!

울보 2006-09-22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딸들은 하나같이 못되었어요,
저도 마찬가지구요,,에고 저도 어머님의 자유가 쭉 지속되기를 빌어요,

클리오 2006-09-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나 마태님의 여자형제분들은 대단하시군요.. 그리고 어머님, 너무 멋져요!!

마태우스 2006-09-23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역시 그렇죠? 클리오님 멋져요
울보님/감사합니다 꾸벅
춤추는 인생님/그래야 할텐데요.........감사합니다
유스또님/아 맞다 님도 봉평 가셨다고 하셨죠.. 그 페퍼 보고 반가웠는데...
속삭이신 분/담번엔 꼭...제맘 아시죠
실론티님/감사합니다.저도 그러길 빕니다
구두님/저도 자유가 제일 좋습니다^^
해리포터님/제말이 그말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9-2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덩달아 어머님의 자유에 축하를 드리려 했는데, 너무 짧아 아쉽네요.
그래도 한번 맛본 자유의 힘은 무서우니, 쫌더 노력해서 사람 찾아보셔요.
몰랐을때는 또 그렇게 지내셨어도 알고난뒤에는 더 갑갑하시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