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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열정을 말하다 ㅣ 인터뷰로 만난 SCENE 인류 1
지승호 지음 / 수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하나. 내 책상머리에는 <감독, 열정을 말하다>는 책이 놓여 있다. 책의 두툼함을 보나, 몇 장 들춰 본 느낌으로 보나 저자가 얼마나 열심히 썼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상황이 좋아지면 가장 먼저 읽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놈의 상황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
둘. 책을 다 읽지도 않고 리뷰를 쓰는 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주 후진 책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리뷰라는 게 책 전부를 관통하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믿기에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쓰는 걸 원칙으로 해 왔다. 하지만 너무 원칙만 고수하는 사람은 좀 피곤하다.^^
셋. 지금은 새벽 두시, 내 연구실이다.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저장해 둔 ‘짜장범벅’을 꺼내 먹었다. 그때 갑자기 책 표지에 있는 감독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윤제균. <낭만자객>의 감독이다. <결혼이야기 2>도 끝까지 봤던 내가 중간에 극장을 박차고 나가게 만든 영화. 그날 이후부터 혹시 감독이 윤제균일까봐 감독 이름을 유심히 보게 만들었던 영화. 알바에게 속은 게 분해서 지금도 제목만 들으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그런 영화. 도대체 그는 그 영화에 대해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난, 일곱명의 감독 중 윤제균 편을 펴들었다.
시작은 삐딱함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짓을 해도 싫다. 좋은 말을 하면 위선 같고, 나쁜 말을 하면 “원래 나쁜 놈이니까 저러지”라고 하게 된다.
-“저는 코미디 영화지만, 감동이 있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혀를 끌끌 찼다. 그래서 <낭만자객>을 그렇게 감동적으로 만들었니?
-“아니,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따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배우 캐스팅에 관한 그의 철학이란다. 그런데 왜 관객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는 거니? <색즉시공>까지 재미있게 봐서 믿었었는데.
-“<낭만자객> 같은 경우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못 읽어주셨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쭈, 이제 흥행 못한 걸 관객의 우둔함으로 돌리네? 난 말야, 윤제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읽었어. 단지 그걸 얘기하는 방식이 너무도 유치찬란해서 짜증이 났던 거야.
-지승호: 요즘 신인감독들의 작품 비율이 높은데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윤제균: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언제까지 신인일 것 같지? 응? 지승호는 다시 그걸 지적했다.
지승호: 하지만... 맨날 신인밴드만 나오고 그러면 음악계 자체의 깊이는 떨어지잖아?
윤제균: 감독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3초 후에 안타까워할 말을 왜 하는데?
이렇게 삐딱하던 나도 윤제균 편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니 미움이 누그러짐을 느낀다. 지승호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의 솔직한 마음이 전달된 덕분.
“(낭만자객) 당시에는 두편의 성공이 가져다 준 영광 때문에 많이 교만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 누구나 한 번의 실수는 한다. <색즉시공>은 재미있게 봐놓고, 그리고 그가 제작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도 무지 재미있게 봐놓고서, 한편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계속 사람을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나도 살면서 잘못한 게 엄청 많은데 말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능력이 있고 또 그걸 보여준 사람이니, 윤제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겠다. <킬러 윤대리>든 뭐든 그가 감독한 영화를 더 보고 판단을 내리자. 실패를 겪은 사람이니 두 번 다시 <낭만자객>은 나오지 않겠지. 윤감독님, 인터뷰 하시기 정말 잘했습니다. 사실 제가 영화를 보게 할 능력은 없어도, 영화 볼 사람을 못보게 만들 능력은 좀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