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대청역 근처에서 친구와 식사를 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술이 먹고 싶었던 난 횟집에 가자고 제안했고, 그 건물에 있는 유일한 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회값은 무지 비쌌지만, 비싼 것에 걸맞지 않게 서비스며 맛이 엉망이었다. ‘잘 모르는 데서는 비싼 걸 먹지 말라.’는 교훈을 외면한 그 멍청한 선택은 두고두고 머리에 남아 나를 괴롭힌다.


반면에, 예술의 전당 근처에 ‘선궁’이란 중국집이 있다. 맛도 맛이지만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값이 싸서, 매우 흡족한 식사를 하고 나올 수 있다. VIP를 모시고 가도 칭찬을 받을만한 그런 집, 보름 전에도 귀빈-여기서 귀빈이란 미녀를 말한다-셋과 함께 갔다가, 뿌듯한 마음으로 배를 두드리고 나왔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지만, 내게 있어서 뮤지컬은 ‘선궁’이고, 오페라는 그 횟집이다(이건 물론 오페라에 대한 내 소양이 부족한 탓이다). 오페라를 볼 때 난 남들이 치니까 박수를 치고,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시계만 들여다보며 ‘언제 끝나나’만 기다린다. 대청역 횟집에서 카드로 그은 일이 지금도 생각나듯이, 오페라를 보고나면 내가 지불해야 했던 비싼 표값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는다. 꼭 오페라 뿐 아니라 언젠가 봤던 퍼포먼스 ‘델라구아다’도 왜 봤는지 후회되는 비싼 공연이었다. 반면 뮤지컬은, 그것도 영화에 비하면 턱없이 비싼 값일지라도, 재미와 더불어 가슴을 벅차게 하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내용도 다 이해가 가고,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이 나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거기서 난 남들이 쳐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친다.


뮤지컬 ‘맘마미야’를 봤다. 1인당 4만원의 표 값을 같이 본 미녀가 쐈다는 게 미안할 정도로 뮤지컬은 재미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었다. ‘결혼식을 앞둔 딸이 자신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는 세 남자를 초청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재미가 있었지만, ‘댄싱 퀸’을 비롯한 ‘아바’의 노래들이 전편에 흐른다는 게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학생 시절 팝송에 문외한이었고 ‘아바’ 역시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한 그룹이건만,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아바의 영향권 안에서 살았던 거였다. 게다가 뮤지컬에서 아는 멜로디가 나오는 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뮤지컬을 보고나서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무대에서 보는 여배우들이 하나같이 미모로워 보이지만, 막상 무대 뒤에서 만나면 몸도 크고 보기보다 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 유명 뮤지컬에 나오려면 경력도 화려해야 하니, 40이 넘은 건 당연한 일이건만, 무대에서 보는 배우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환상을 품게 한다. 그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오늘 난 막이 내리자마자 잽싸게 극장을 빠져 나왔다. 난 역시 뮤지컬 타입이다.


* 써놓고 보니까 비유가 정말 적절하지 않다는 걸 절감한다. 고급문화인 오페라를 어떻게 대청역 앞의 맛없는 횟집에 비유하는가. 그보다는 1인당 15만원짜리-안먹어봐서 가격은 모른다만-바닷가재에 비유하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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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06-26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도 꽤 크고, 나이(경륜)도 꽤 있어야 그 정도의 실력과 멋이 어우러져 나오는가 봅니다 ^ ^
맘마미아, 그야말로 신나는 뮤지컬이지요.

미완성 2006-06-26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체 공연비가 비싼 세상이다 보니까 뮤지컬을 4만원주고 보셨다니, 오, 꽤 싸네요? 맘마미야 예전부터 얘기 들었던 거 같은데 역시 좋은 공연은 오래 가나 봅니다. 전 함께 소리지를 수 있는 콘서트가 좋아요.

비연 2006-06-26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며칠 뒤에 보러가기로 했는데 마태우스님 평을 보니 더욱 기대된다는...^^
개인적으로 저도 델라구아다는 좀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었죠...;;;

2006-06-26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에 맡겨봐! 2006-06-2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맘마미야랑 미스사이공 중 갈등하다가 미스사이공 표를 예매했는데 마태님 평을 보니 이것도 봐야겠네요.

이매지 2006-06-2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맘마미아 공연을 봐서 이번에도 보러갈까 고민중인데.
좀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한 뮤지컬 같은 경우에는 되도록 앞이 좋지만.
맘마미아처럼 음악이 중심이 되는 뮤지컬은 뒤에서 봐도 괜찮을 듯 ^^
이번 공연에도 박해미씨가 도나로 나오나요?!

짱구아빠 2006-06-26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다>를 공짜 티켓이 생겨서 얼떨결에 본 후에 노리고 있는 뮤지컬이 몇 편 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미스사이공>,<맘마미야>,<지하철 1호선>정도... 근데 말씀하신대로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많이 주저하게 되는데,짱구엄마랑 <맘마미야>를 우선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마태님의 글을 보고 그 결심을 더욱 굳히게 되었네요..
저희 회사 플래티늄 카드로 예매를 하시면 할인 혜택이 있음을 참고하시구요 ^^.....

마태우스 2006-06-2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구아빠님/앗 전 플래티눔이 아니어요 글구 한번 봤기 때문에 또 안본다는...^^ 근데 정말, 음악만 들어도 신이 나고, 내용도 재밌어요.
이매지님/앗 님을 벌써 보셨군요 대단! 전 3층의 뒷줄에서 봤는데요, 뭐 크게 지장 없었어요. 연기도 다 보여요!'+
바람에맡겨봐님/안녕하시어요? 닉넴 여전하시군요^^ 확실히 알라딘 분들은 문화취향이 고상해요... 전 미스사이공이란 말 처음 들어보는데..
속삭이신 분/그,글쎄요. 전화 드리겠습니다아.
올리브님/구워드릴까요????<--죄송합니다. 조크였어요...
비연님/전 미녀님이 말 안해줬으면 있는 줄도 몰랐다지요. 역시 다양한 미녀를 사귀어야 합니다.
니노밍님/전 콘서트를 몇번 못가 봤어요. 같이갈 사람이 없어서요 흑.
hnine님/저만 빼곤 다 이 뮤지컬의 존재를 알고 계시는군요. 으음...책과 음악은 통하는가봐요. 하여간 멋진 뮤지컬이었어요

모1 2006-06-2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페라라....너무 졸린 것이란 생각에..음악시간에 선생님이 숙제로 오페라 보게 해서..그 이후로 오페라라고 하면...학을 뗍니다..하하..

choi777rus@daum. 2021-07-2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맛이 매우 오묘해서 맛을 느끼기에는 상당한 수련조차 필요한 비싼차가 있습니다. 와인도 그렇습니다. 수백만원, 극단적일 때는 수천만원까지 한다는 와인을 즐기려면 와인에 대한 공부와 수련과 내공이 필요합니다. 만원 이만원 와인도 감격하는 미각으로서는 고가의 와인을 제대로 감별할 수 없지요. 음악도 라면과 같은 음악이 있을 수 있지만 세계최고 쉐프가 만든 요리도 있읍니다. 고급예술을 즐기려면 그래서 내공이 필요하고 공부가 필요합니다. 오페라가 재미없다고 불평하시기 전에 클래식 쉬운 음악부터 첫계단을 밟아서 차근차근 올라가야 합니다. 패션쇼를 위한 작품 옷을 집에서 편하기 입는 옷처럼 쉽지 않다고 불평하면 안되지요.정상을 오르려면 땀을 흘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