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생선초밥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이 스위스에 져서 탈락한 것은.


금요일인 어제는 문제 잘 내기 워크숍이 밤 9시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저녁 메뉴, 세상에, 생선초밥이었다. 일인당 1만원이 넘는 고가의 음식이긴 해도, 나처럼 덩치가 산 만한 사람이 그거 열 개 먹고 떨어지라니 말이 되는가. 가뜩이나 점심도 부실하게 먹었고, 워크숍 때마다 있기 마련인 과자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는데. 다행히 참석한다고 해놓고 안온 사람들이 우리 조엔 셋이나 있었다. 나보다 더 뚱뚱한 선생이 말한다.

“어? 남는 게 있네? 저거 더 먹으면 되겠다.”

그랬는데 식사 후 우리보다 연장자인 모 과 선생이 전공의들 준다고 그걸 가져간다. 그걸 노리던 선생은 물론이고 거기 껴서 몇 개 더 먹어볼까 했던 난 닭 쫓던 개가 되었다. 멍-멍!


식사 후 재개된 워크숍 내내, 그리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는 내내, 난 배가 고파 죽는 줄 알았다. 집에서 예쁘게 앉아 빔을 쏘면서 스위스전을 보려던 생각은 이미 바뀌었고, 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새벽에 하는 축구 같이 보자!”

잠시 후, 난 친구 집에서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으며, 반주로 소주 한 팩을 마셨다. 잠시 이야기를 한 뒤 알람을 맞춰놓고 잠자리에 든 건 새벽 1시였다. 잠자리에 누운 난 버스 안에서 동료선생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동료: 내일 축구 어떻게 봐야 돼요? 새벽 4시에 일어날 자신이 없는데, 아예 밤을 샐까요?

나: 20대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 때 그러면 새벽 3시쯤 아마 잠이 들어버릴 걸요.

동료: 그럼 몇시간이라도 자는 게 낫군요?

나: 당연하죠! 제가 박찬호 야구 때문에 해봐서 알아요.


오늘 아침, 친구가 날 깨웠다.

“이봐! 큰일났어! 지금 6시 10분이라고!”

“엉? 알람 소리가 큰 시계가 있다면서 어떻게 된 거야?”

황급히 TV를 켰더니 한국이 16강에서 탈락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각을 해본다. 내가 축구를 보면서 손가락을 모아 빔을 쏴 줬다면 스위스가 찬 그 프리킥이 골로 연결됐을까. 심판이 헤까닥 돌아서 그런 터무니없는 판정을 내렸을까. 조재진의 헤딩슛과 이천수의 멋진 슈팅을 골키퍼가 막았을까? 그리고 토고가 프랑스에게 그렇게 무력하게 졌을까? 스포츠에서 가정은 아무 의미가 없지만, 내가 가진 초능력을 제대로 발휘도 못해보고 진 건 너무도 아쉽다. 내가 자버린 이유는 뭘까. 다 생선초밥 때문이다. 저녁으로 생선초밥 대신 평소처럼 볶음밥을 주문했다면 라면에 밥을 먹는 일도 없었을 테고, 반주로 소주 반병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난 새벽 4시 홀연히 일어나 쭈그린 자세로 앉아 빔을 쏴댔겠지. 마음먹고 찬 볼이 예상과 달리 휘어지는 것에 스위스 선수들은 당황했을 것이고, 우리 선수들은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걸 느끼며 더 열심히 뛰었겠지. 월드컵이 또 열리려면 4년을 또 기다려야 하지만,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4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4년 후엔 더 강력한 초능력을 길러 경기에 임해야겠다. 그리고, 시합 전날엔 절대로 생선초밥은 먹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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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24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맞아요, 완전, 생선초밥 때문이라구요.. ^^

파란여우 2006-06-24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덩치가 산만한?...산(山) 만한?(알아서 정정하실테고요)
근데 산(山)이라면 우리집 뒷동산이 웃는데요.
어쨌거나 님의 생선초밥과 제 오징어 볶음과 맥주 한 병이 문제였군요.

마태우스 2006-06-24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부끄러워요 지금 고쳤어요... 님도 안보셨군요 오징어볶음에 맥주라, 라면에 소주보다 더 좋은데요^^
배혜경님/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꾸벅.

미완성 2006-06-2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선수들도 마음 푹 놓고 좀 쉬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심판의 판정은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지나간 일이니까, 선수들의 인터뷰처럼 다시 2010년을 향해 열심히 달렸음 좋겠네요. 먼저 가족과 휴식을 푹~ 취한 담에.
역시 일본음식은 마태님 인생에 도움이 안 되나 봅니다-_-;; 이 아래엔 또 진라면 글이 있군요. 뭐니뭐니해도 라면의 최고봉은 오징어 짬뽕이라구요 흥;
여우님, 부산...사실 지금 바람 엄청 불고 좀 추워요;;

비자림 2006-06-2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여기 와서 많이 웃고 갑니다. 고마워요, 마태우스님(코맹맹이 소리)
"4년 후엔 더 강력한 초능력을 길러 경기에 임해야겠다. 그리고, 시합 전날엔 절대로 생선초밥은 먹지 않을 것이다. "
마지막이 압권이네요. 호호 즐거운 주말 되세요.^^

깐따삐야 2006-06-24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에게 꼭 깨워달라고 이야기하고 잤던 저는, 경기를 다 보고나서는 왜 깨웠냐고 난리를 쳤답니다. 제가 봤기 때문에 진거라구요. 별별 핑계를 다 갖다붙이게 될 정도로 안타까웠지요. 어쨌든 지금은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Mephistopheles 2006-06-24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태님 손잡고 입산수도해서 4년후 아예 남아공으로 날라가서(부양신공)
강력한 빔을 쏘고 싶은 맘이 굴뚝같습니다..

sooninara 2006-06-2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엔 부디 더욱 강력한 빔을 쏘아주시길..

하루(春) 2006-06-2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꿎은 생선초밥이 아니라 소주 한 팩이 원인이었다고 봐요. 저는.

건우와 연우 2006-06-2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판도 경기의 일원이라는 박지성선수의 언급을 접하고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세련돼가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이제 젊은선수들은 4년후에 더 노련해져서 남아공땅을 밟겠지요. 그때는 더욱 강력한 빔을 쏘아주세요.^^

누미 2006-06-2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낄낄낄......... 낄낄낄.....
앞으로 우울할 땐 마태우스님 방에 들를게요.

2006-06-25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06-26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원래 그게 잘됐다 안됐다 하는 거죠. 하지만 중요한 건 끈질기게 앉아서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머리 식히는 것보다 더디더라도 진도나가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그렇단 거구요.... 님은 몰아치는 스타일일지도 모르지요. 물론 잘 지내고 있답니다^^
누미님/안뇽하세요. 기대를 충족시켜 드려야 할텐데...^^
건우와연우님/그때쯤엔 초능력이 더 강해져 경기 흐름을 바꿀 정도가 될 거 같아요. 열심히 연마할께요^^
하루님/소주 한팩은 반병 정도밖에 안되는 아주 적은 양입니다. 생선초밥이 더 큰 문제지요!!!^^
수니님/저만 믿으십시오(4년 후에는 까먹을 걸 기대하며 큰소리 뻥뻥...)
메피님/그게 좀 어렵습니다. 물 긷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거든요^^
깐따삐야님/경기를 봤는데 지면 정말 마음이 쓰라리죠. 그마음 저두 알아요...
비자림님/사람들 중엔 "내가 안보면 진다"느니 "SBS를 보면 이긴다" 같은 걸 믿는 사람이 많지요. 그런 것보다는 제 레이져빔을 믿으십시오^^
니노밍님/계속 진라면에 태클을 거시네요. 근데요 엊그제 먹은 진라면은 잘못 끓여서 맛이 없었어요. 라면 자체의 맛보다 잘 끓이는 게 더 중요하겠지요. 우리 언제 한번 만나야 할텐데, 그죠?

바람에 맡겨봐! 2006-06-2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태님을 보면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신하균이 생각나요. 혹시 마태님 가방에도 물파스랑 때수건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