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의 일이다. 약속시간이 좀 남았기에 영풍에 들러 책을 보는데, 그 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책의 저자가 왠지 낯이 익었다. 이름을 보니 역시나 아는 사람, 그는 내 친구의 동생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네 동생 책 냈는데 왜 말 안했어? 내가 다 자랑스럽다.”

당시만 해도 난 모든 책을 인터넷 교봉에서 샀기에 그날밤 집에 가자마자 교봉에 주문을 넣었다. 그런데 막상 배송된 책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라 <나의 아름다운 이웃>,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 따졌다. 미안하다며 바꿔 준단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그래도 박완서님이 쓴 책인데 한번 읽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냥 놔두세요. <정원>은 따로 주문하죠 뭐.”


내가 <이웃>을 집어들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다른 책들에게 번번히 순위에서 밀렸기 때문. 하지만 놀러가서 읽기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에 주말여행을 가면서 그 책을 챙겨넣었고, 한번 읽기 시작하니 탄탄대로였다. 책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실수도 있었다. 난 이 책을 에세이집으로 생각했고, 처음 두 개의 에피소드는 저자분이 아는 얘기를 쓴 줄 알았다. 그런데 네 번째 이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장미여대 시절 장미의 여왕으로 뽑힌 경력이 있을만큼 용모가 뛰어난 재원이었다. 따르는 총각들도 많았었다.”

박완서님의 외모가 편안함을 주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 뭔가 이상해 머리말을 읽었더니 이럴 수가. 이건 박완서님이 70년대에 쓴 꽁트집이었다! 역시 난 바보다.


모든 책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난 70년대의 사회상을 다시금 회고할 수 있었다. 여자가 일을 하는 게 드문 일이었고, 스물일곱만 되도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여성 직원이 결혼을 하면 해고되는 게 대부분의 회사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다. “남은 문제는 직장이었다...결혼하면 사직한다는 건 아직도 여사원 간의 불문율이었다.(70쪽)”

부모를 모시고 사니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경우가 있었고, 아파트에 사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권층으로의 편입을 뜻했다.

“13층 베란다에서 도시를 굽어볼 때처럼 그가 이 도시에 와서 성공한 걸 실감할 때도 없었다(103쪽).”

아들을 낳으려고 계속 딸을 생산하는 가정도 있었으니, 하나나 둘이 고작인 지금으로 보면 신기한 일이다. 요즘엔 그때보다 더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하는데, 20여년 후엔 또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 변화의 방향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서운 세상이 올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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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0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은 6.25때문에 서울대를 중퇴하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작가들은 글쓰기가 녹슬거나 변형되어서, `차라리 이 작가가 그 시간 이후로 절필했더라면, 나는 이 작가의 훌륭한 글쓰기만을 기억할텐데'라는 아쉬움이 드는 반면 박완서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훌륭해지시는 것만 같아요. 초기의 콩트라든지 단편은 때로는 가볍게 톡톡 튀거나 때로는 더욱 진중해지는 느낌에 좋습니다. 우연이 아주, 멋지게 찾아들었군요.^^

기인 2006-06-01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심작가님 소설 참 좋게 봤어요. 박완서 선생님은 직접 뵌 적도 있는데, 정말 정정하시고 말씀도 잘하세요. 요즘 나도는(?) 박완서 선생님 사진은 모두 한 10년전 사진이랍니다. 이제 반올림하면 여든이시니, 실제로 뵈면 정말 호호 할머니세요 ^^;;

다락방 2006-06-0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작가님의 [달의 제단]을 무척, 아주 무척 가슴 아프게 읽었었어요. 박완서님의 이 작품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세상엔 정말 좋은 작품이 많은것 같아서 기뻐요 :)

조선인 2006-06-0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우연의 미학이로군요. ㅋㅋㅋ

히피드림~ 2006-06-02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라인 서점에서 그런 실수도 하는군요.
그나저나 책 재밌을것 같은데요.^^

꼬마요정 2006-06-0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우연이로군요~~^^
저도 읽고 싶어집니다. 마태님은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를 쓰시는군요~
벌써 마태님 덕에 몇 권 읽었는데, 이 책도 제 장바구니에 들어가겠군요~~^*^
더운 날씨...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마태우스 2006-06-0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아앗 요정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
펑크님/아무래도 온라인이니깐요^^ 그 시대를 회상하며 읽었지요
조선인님/제가 최근에 우연의 법칙이란 책을 읽었지 않습니까...^^
다락방님/그죠.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이 많이 있죠 인생이 짧은 게 안타까울 뿐...
기인님/여, 여든이라.... 참 곱게늙으신 것 같다는... 님은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신가봐요?
주드님/제가 님을 알게 된 것도 우연이죠 아름다운 우연!

하루(春) 2006-06-04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꽁트도 쓰셨군요. 이건 또 처음 알았네요.
저 요즘 박완서 산문집 읽고 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