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집에 있는 차는 어머님이 2000년에 구입한 거다. 시기가 시기니만큼 그 차의 용도는 몸이 편찮으신 아버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이었는데, 아버님은 그 차를 2년도 채 못타시고 돌아가셨다. 어머님은 아버님 생각이 난다면서 그 차를 파신다고 했다. 나중에 고모들을 태우고 어딜 가다가 딱이 할 말도 없고 해서 엄마가 하신 말을 했다. 고모의 말이다.

“하긴, 지가 차 쓸 일이 어디가 있어?”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 그 말을 전했다. 엄마는 흥분하셨다.

“내가 왜 차 쓸 일이 없어? 할머니도 태우고 다녀야 하고, 나도 약속이 있을 수 있고. 또 우리 아들도 운동 갈 때 쓰잖아?”


하지만 어머님이 차를 안파신 건 고모의 말씀 때문은 아니다. 아빠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그 차를 팔고 다른 차를 사기엔 돈이 모자라서였다. 그러고 보니 그 차를 산지도 벌써 7년째, 달린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오래되서 그런지 겉보기에 많이 낡았다. 문이 우그러져 문짝을 갈았었고, 이른 새벽 여의도 고수부지에 주차를 시켜 놨다가 술에 취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들이받는 바람에 차 뒷부분이 크게 망가진 적도 있다 (고친다고 고쳤지만 예전의 모습은 되찾지 못했다). 어제 아침에는 황사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서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털털한 나는 “별 탈도 없는데 한 오년 더 타도 되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어머님은 차를 바꾸고 싶으신가보다. “너 복권은 도대체 언제쯤 되는거냐?”라는 엄마 말씀에 그냥 웃고 말았다. 술만 반으로 줄였다면 목돈을 내밀며 “보태서 사세요.”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엊그제는 그 차에 도둑이 들었다. 엊그제, 라고 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 토요일 아침에 슈퍼를 다녀오신 어머님이 도난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차는 그냥 집 앞에 세워져 있었으니까. 잃어버린 게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재떨이에 넣어 둔 천원짜리 대여섯장과 동전 이천원어치가 전부다. 다행히 카세트를 떼어가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특이한 건 차 사물함에 들어 있던 자일리톨 껌도 가져갔다. 웃음이 나왔다. 그 껌을 가져가서 얼마나 영화를 누리겠다고.


비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차는 단순한 가구 이상의 것이다. 운전석에 올라앉아 차를 운전할 때면 차와 하나가 되는 걸 느끼지 않는가. 게다가 차에는 차로 인해 일어난 추억들이 담뿍 담겨져 있다. 어머님은 아직도 차에서 아버님의 흔적을 느낀다지만, 난 차를 탈 때마다 내 옆좌석에 앉았던 여러 미녀들을 생각하게 된다. 어머님과 달리 내가 차를 바꾸기 싫은 이유가 혹시 그게 아닐까? (지금사 생각났는데 새 차를 사면 기스가 날까봐 운전하기가 불안해지는 것도 이유가 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제부턴 술을 줄이고 돈을 모으련다. 몇 달쯤 후, “엄마 이거 보태서 차 사세요.”라고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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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1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 정도는 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나오는 차종도 너무 많고 다양하고 바꾸는 주기도 엄청 짧아졌어요.. 우리 앞집에 사는 총각은 5년사이에 벌써 3번이나 바꾸더군요.

바람돌이 2006-04-1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차도 2,000년 식이니까 같네요. 저는 이 차 폐차할때까지 앞으로 10년은 더 탈건데요. ^^(근데 요즘은 고속도로 나가는게 쬐끔 불안해집니다. ^^)

플라시보 2006-04-1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홈 프린스의 차도 언젠가는 그렇게 추억이 생길까요? 차에 좀 무관심한 편인 저는 아직까지도 그 차가 좀 생소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운전을 하지 않아서인가봐요.

2006-04-10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4-11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ni 2006-04-1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차는 97년식이에요. 여전히 쌩쌩해요.

조선인 2006-04-11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12월 대물사고로 폐차한 후 아직 차 없이 버티고 있어요. 내년까지는 안 사고 버틸 작정인데, 뜻대로 될런지. 흐흐흐

클리오 2006-04-11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 이미 파산하셨다는 페이퍼 읽었어요... 그런데 몇 달 내에 복구가 되시겠어요?^^

urblue 2006-04-1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차는 98년식. 2008년까지 탈 생각입니다.

하루(春) 2006-04-1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자~ 그 정도 결의면 가능성이 보입니다. ^^

야클 2006-04-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車가 아니라, 茶라도 어머니가 사실 때 돈 좀 보태드리세요. ^^

호랑녀 2006-04-1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어제도 차 뒷문 찌그러트렸는데...ㅠㅠ

마태우스 2006-04-11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아이고 그러셨어요.... 차 망가지면 정말 속상하죠...
야클님/그래도 야클님한테는 돈을 아끼지 않을께요^^
하루님/그렇죠? 다시 재기할 수 있겠지요?
블루님/와 저도 엄마 설득해서 십년 타야겠네요...
클리오님/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가잖아요^^
조선인님/아이가 있으면 차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냥 궁금해서요
냐오님/알겠습니다. 더 타겠습니다^^
속삭이신 분/아 곧 연락드릴께요 죄송해요
플라시보님/님의 격려는 언제나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새벽별님/와와 십삼년... 자동차 십년타기를 넘어서셨군요! 대단하십니다.
바람돌이님/그래요, 아직 고장 잘 안나고 그러니 더 타자고 꼬셔야겠어요.
메피스토님/그 총각, 재력가신가봐요^^


ceylontea 2006-04-1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 차는 93년식... 99년에 샀구요... 아직도 좋아요.. ^^ 단지 스포츠카라 지현이랑 타기 불편스럽죠... 그런데.. 지현이가 좀 크니 그럭저럭.. ^^

코마개 2006-04-1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제 차는 95년식.
아직 잘 나갑니다. 앞으로 10년 더 탈 생각. 뻗는 날 폐차하고 뚜벅이가될겁니다.

해적오리 2006-04-11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막내 동생이 타는 차도 예전에 저희 아빠 타시던 차거든요. 93년인가 94년에 산거에요. 아직까지는 괜찮은거 같아요.
맞아요, 마태님, 조개구이만 안샀어도(딱 이번까지만 쓸께요 ㅋㅋ), 정치가 지망생만 안 만났어도, 술을 섞어마시는 거 조금만 덜했어도 벌써 어머니 차 바꿔드리셨을 거에요. =3=3=3

조선인 2006-04-12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불편하긴 하지만,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버텨볼려구요. 헤헤

마태우스 2006-04-1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사실 예전엔 차 없이도 잘 살았었죠. 지금은 그때보다 대중교통도 좋구...^^ 화이팅입니다
해적님/아앗 94년에 사신 걸 아직도...울 엄니는 너무 빠른 거군요...마지막 말씀 명심할께요.(갑자기 수전노가 되려니...이거 컨셉과 다른데...)
강쥐님/아앗 십년도 아니고20년 타시려구요? 대단하세요
실론티님/호오 스포츠카를 타신다구요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