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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괴팍한 아버지의 밥을 차리느라 결혼을 꿈도 꾸지 못하는 여자 (한파특보),
사업을 말아먹고 남편과 떨어져 시골에 숨어사는 여자 (흉몽)
남편을 교통사고로 보낸 뒤 트럭을 몰며 사는 여자 (폭염),
김이설의 단편집 <오늘처럼 고요히>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극한상황에 몰려있다.
아니 어떻게 이리도 불행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책을 읽다보면
그에 필적할 또 다른 주인공이 나타나곤 했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이전의 단편은 까맣게 잊고 새 단편에 몰입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근 하루만에 책을 다 읽어 버렸다.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다음에서 알 수 있다.
어제 강의록 준비 때문에 새벽 4시에 자면서
오늘 아침 천안에서 가락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가며 눈을 붙이려 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졸리지도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극한상황을 설계할 수 있는지, 작가의 능력에 그저 감탄하고
사람들이 왜 “김이설!”을 외치는지 알겠다.
외부강의를 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소설은 왜 SF가 없느냐고,
과학 전공자들이 소설을 좀 써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소설이란 게 우리가 외면하던 현실을 드러내 줌으로써
세상의 변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라면,
SF보다는 <오늘처럼 고요히>가 소설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한 게 아닐까 싶다.
십년쯤 전 김이설 작가님과 잠깐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둘이서 만난 건 아니고, 내가 속한 모임에 잠시 나오신 건데
그때가 작가님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였나 그 전이었나 헷갈리지만,
아무튼 그 당시만 해도 난 김이설 작가님이 이렇게 잘되실 줄 몰랐고,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말도 거의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작가님이 이렇게 멋진 책을 연달아 내실 줄 미리 알았다면
그때 좀 잘할 걸 그랬다.
참고로 난 작가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작가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신 같은 존재니, 어찌 평범한 인간과 같을 수 있겠는가?
가끔 날보고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원래 있는 기생충에 대해 기술하는 책을 냈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건 아니기에
그때마다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손사래를 치곤 한다.
그런 경우가 잦다보니 귀찮아서 “네 작가 맞습니다”라고 한 적도 몇 번 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내가 작가라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작가면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를 쓴 분한테도
'작가님'이라고 불러야 하잖은가?
아무튼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람을 보면 같이 놀기 싫은데,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이 너무도 많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배려가 없고 비인간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와중에도 열심히 책을 써가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김이설 작가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