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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소금>과 <당신>을 읽은 뒤 뒤늦게 박범신 작가의 팬이 됐다.
그 여세를 몰고 주문한 게 바로 <주름>,
소설의 주인공인 ‘김진영’은 시인인 천예린과 바람이 나는데,
이야기의 대부분이 둘 사이의 지독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 사랑이 어찌나 지독한지 나중에 읽다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둘의 관계는 칼자루를 쥔 게 여자 쪽이라,
여자가 사랑을 나누다 도망가면 남자가 쫓아가고, 여자가 또 도망가고,
이런 과정이 책 전반에 걸쳐서 되풀이된다.
도망가는 것도 스케일이 커서,
서울에서 대전, 대전에서 부산, 뭐 이렇게 가는 게 아니라
케냐에 갔다가 모로코에 갔다가 스코틀랜드와 북극해를 어우르는 장대한 도망인데,
너무 긴 여정이다 보니 나중엔 지겨웠다.
알고보니 이 책은 오래 전 나왔던 책인데 원래 내용을 줄이고 또 줄여
2006년에 개정판으로 나온 거란다.
그 이전 버전 대신 개정판을 읽은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전 버전을 읽었다면 읽다가 지쳐 쓰러질 뻔했다.
이 소설엔 둘간의 정사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것도 너무 많이.
나이가 나이다보니 불륜을 비롯해 야한 장면이 나오는 이야기에 솔깃해하긴 하지만,
이건 뭐 시도때도 없이 하는 장면이 나오고,
심지어 몇 달씩 벌거벗고 사는 광경까지 연출하니,
야하기는커녕 ‘적당히 좀 하지!’란 한숨이 내 입에서 터져나오기까지 했다.
“단순히 부도덕한 러브 스토리로만 읽지 않기를 바란다.” (430쪽)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하지만,
난 “꽃뱀에게 넘어간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한 꽃뱀”, 이렇게밖에 이 소설을 정리할 수가 없다.
회사돈까지 횡령하면서 여자를 쫓아가고, 그녀의 노예로 살겠다고 날뛰는
50대 아저씨를 저거 말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편을 연달아 읽었으니 이제 당분간 박범신 작가를 멀리할 생각이다.
읽다보니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 김진영이 몸이 안좋아 열이 팔팔 끓을 때,
“그녀는 ...얼음주머니를 내 이마에 문질러주고 있었다.” (270쪽)
소아과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안 사실인데 열이 날 때 얼음주머니는 별로 좋지 않단다.
물수건으로 이마를 문질러 주면 열이 내려가는 건 사실 물이 증발하면서
기화열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며,
얼음주머니는 피부 혈관을 수축시켜 열 발산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찬물보다는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게-이마보단
면적이 넓은 가슴 쪽을-훨씬 좋다고 한다.
소설을 읽고 난 결론.
역시 돈거래는, 아무하고도 하지 않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