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 15일(수)
마신 양: 소주--> 맥주
고시생을 보면 늘 마음이 짠하다. 좁은 방에서 고독과 싸우며 공부를 해야 하고, 옆방에 들릴까 싶어 전화도 마음대로 못한단다. 하지만 합격만 하면 신분이 급상승하는 게 또한 고시여서, 검사가 되어 압구정동에 사는 내 친구에게서 옛날 신림동 고시촌 시절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에 고시를 친 미녀를 만났다. “잘 못봤어요.”라고 웃는 미녀는 나이도 나이니만큼 이번에 안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단다. 회사에 다니느라 고시를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겨우 한번 떨어졌을 뿐인데도 이렇듯 고민을 해야 한다. 일년간 다시 고시촌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심난할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에 나오는 에릭 같은 남자라면 인생이 더 피곤해지겠지만,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걸 보니 다행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아주 맛있는 삼겹살을 먹었다. 난 찌개를 서비스로 주는 곳을 좋아하는데, 거기가 그랬다. 그녀가 서둘러 계산을 했다. 고시생을 등쳐먹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2차는 내가 샀지만, 맥주 몇병이라봤자 얼마나 나왔겠는가. 술이 덜 취한 것 같아 전철을 탔다. 자리에 앉으면 자버릴 것 같아 일부러 안앉는 센스를 발휘, 집까지 무사히 왔다. 고기를 잘 얻어먹은 것, 미녀임에도 불구하고 날 만나준 것도 고마운데 그녀는 내게 선물을 하나 보내왔다. 내가 모자에 심취한 걸 알고 모자걸이를 보낸 것. 길다란 끈에 모자를 끼우는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는 구조인데, 총 24개까지 걸 수 있다. 모자를 끼우고 끈을 어디다 걸까 고민하다가 옷걸이에 걸었더니 다음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왼쪽에 쌓인 책들은 내가 사재기했던 내 책이다^^
하지만 위 사진으로는 모자걸이의 위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아 힘도 없는 할머니에게 모자걸이를 들고 계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얼굴이 나오면 안된다고 그 뒤로 숨으셨다. 모자걸이를 선물한 내 좋은 친구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안그래도 박스에 담긴 모자를 매일같이 세는데-혹시 여동생네 애들이 만졌을까봐-이젠 세기가 쉬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