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친절
스페인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다. 길을 물으면 어찌나 친절하게 가르쳐주는지,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을 물어봤는데도 한보따리나 되는 스페인 말을 쏟아붓곤 했다. 물론 내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니 “이 바보야 바로 옆에 있는 건물도 모른단 말이야?”같은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장황한 설명을 해대는 광경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딱 한번,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매일 가던 분식집 비스무레한 한국식당에 질려서 가이드가 가르쳐 준 한국식당(뒤에 나오겠지만 ‘서울정’이다)을 찾아 갔다. 이 길이 맞는가 싶어서 버스 정류장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다우닝 가로 가려면 이 길 따라서 가면 되느냐?”라고 유창한 스페인어로 물었다. 그 아주머니는 역시나, 유창한 스페인어로 대답을 해줬다. 예, 아니오를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그때, 뒤에 있던 청년이 나에게 왔다. 그리고는 마구 화를 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매우 적대적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우린 미안하다고 하고서 그곳을 피했지만, 적의에 찬 눈으로 날 노려보던 청년의 눈은 지금도 생각난다. 그는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우리가 자기 어머니-그의 말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madre, 즉 어머니라는 단어 하나였다-에게 무리한 요구라도 한다고 생각했을까.
별 웃기는 사람 다 보겠다고 미녀에게 말했을 때, 그녀의 말은 날 부끄럽게 했다.
“우리도 한국에서 그러잖아.”
그랬다. 동남아인들이 내게 뭔가를 물으려고 했을 때, 난 무의식적인 거부감으로 자리를 피하거나, 그들과 대화하기를 꺼렸다. 내게는, 그들이 내게 돈이라도 요구하거나 최소한 이득을 주지는 않을 거라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다. 황망히 자리를 피해버리는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귀국해서 동남아인을 만나면 잘해줘야지, 하는 결심을 했다.
2. 가이드
‘서울정’이라는 곳을 알게 된 것은 그전에 가던 ‘한강 레스토랑’이 단체 손님을 맞느라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기진 배를 싸안고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겠구나 생각했는데, 한 여자분이 나오더니 서울정이라는 곳을 가르쳐 준다.
“맛은 거기가 훨씬 좋을 거예요.”
난 그녀의 인도대로 서울정에 갔다. 그곳 역시 단체손님 때문에 빈자리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주인: 어렵게 오셨으니 앉아서 드세요. 근데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나: 한강 레스토랑 갔더니 어떤 여자분이 가르쳐 줬어요. 검은테 안경을 쓴...
주인: 혹시 그 여자, 남자처럼 생겼어요?
나: 네.
주인: 미스정이 가르쳐 줬구나.
그 미스정이라는 사람에게 “서울정 주인이 그러는데 당신보고 남자처럼 생겼데요”라고 말하면, 그 뒤부터는 아무리 어려워도 그 식당에 사람을 보내지 않을 것 같다.^^
3. 교수
서울정 역시 한국인 단체손님 때문에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그런데 같이 있던 스페인 미녀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그 손님들과 등을 지고 앉는다.
“왜 그래요?”
“아는 사람이 한명 있어서요.”
미스 스페인은 미술사를 전공했는데, 그때 알게 된 사람이 그 중에 있단다. 어쨌거나 그들이 빠져나간 뒤, 미모의 식당 주인이 우리 옆으로 온다. 이말 저말 하다가 그 손님들 얘기가 나왔다.
주인: 단체는 잘 안받으려고 했는데, 하도 사정하기에 받았어요. 교수 팀이라는데, 까다로울 거라고 얘긴 들었지만 정말 까다롭데요. 교수들은 왜 다 그런지 모르겠어요.
이때 스페인 미녀가 날 가리키며 고자질을 한다.
“이분도 교수래요!”
주인이 날 보더니 묻는다. “교수들은 왜 그래요?”
“그, 그게...음, 그러니까...학교에서 대접 받는 걸 사회에서도 받으려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어찌어찌 변명을 하긴 했지만, 진짜 교수들은 왜 다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