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뮌헨>을 보면서 내내 궁금했다.
“저 남자, 어디서 봤는데 누구더라?”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 나온 이름을 본 나는 미녀에게 말했다.
“어머, 쟤 에릭 바나야!”
<반지의 제왕>에서 스타가 되고, <트로이>에도 나왔던 그 미남을 난 몰랐다. 그의 상관으로 나오는 남자에게 “진 해크만 아니냐?”고 하기도 했으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그뿐이 아니다. 예고편을 보는데 낯익은 여자가 화면에 등장한다.
“쟤가 누구지? 어디서 보긴 봤는데...”
원래 그런 게 생각이 안나면 정말 짜증난다. 다행히 예고편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리즈 위더스푼, 내가 괜찮게 본-특히 주연배우를-‘금발이 너무해’의 히로인 아닌가. 어떻게 그녀를 모를 수가 있담? 미녀가 날 위로한다.
“머리 색깔 바꾸면 모를 수도 있지 뭐. 나도 몰랐는데.”
하지만 이럴 수는 없는 것이, 극장을 나오면서 또다시 한건을 했다. 영화 포스터에 ‘은밀한 여교사’인가 하는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고, 야시시한 포즈를 취한 여자 뒤에 한 남자가 서있다.
나: 이 여자는 누구지?
미녀: 문소리 아냐?
나: (한심하단 표정으로) 문소리가 이렇게 생겼냐? 너는 말을 해도...
미녀: (무안한 표정) 아닌가?
나: 저 남자는 에릭인데 여자는 누굴까?
미녀: 쟤가 에릭이라고? 쟤는 지진희야!
난 배우 이름을 아래에서 찾으려 했었는데, 친절하게도 포스터 위에 큼지막하게 써있다. 문소리.지진희 주연. 둘 다 아는 배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공감각적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듯하다. 어려서부터 사람을 잘 못알아봤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나아질 리는 없다. 친구 어머니가 길가에서 날 보고 아는 체를 하셨을 때 내가 했던 말, “안녕하세요?....그런데...누구 어머니시죠?”
그분이 나랑 굉장히 친한 친구의 어머님이라 무지 놀랐다. 내가 유난히 기생충 알 판독에 약한 것도 공감각이 떨어져 있는 탓이 아닐까?
물론 내가 다른 감각도 다 이렇게 저하되어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숫자에는 아주 강한데, 어려서부터 야구선수들의 타율과 타점, 홈런 개수 같은 걸 노력도 안하고 줄줄 외웠고, 전화번호도 웬만한 건 다 외워서 건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랑 술을 마시다 나랑 그리 친하지도 않은 친구 얘기가 나왔기에, 걔가 대입시험에서 몇점을 맞았고 걔네 과가 총 77명인데 걔가 그 중 66등으로 입학했다는 걸 맞춘 것. 설마 하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본 내 친구는 그 이후부터 날 더 존경한다.
자기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 게 좋다면 지금 난 길을 잘못 든 거다.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은 혹시 암호해독 같은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