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소견입니다. 반론으로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투사부일체를 봤다. 영화를 본 지 시간이 흘렀지만, 영화에서 느껴지던 불쾌감은 아직도 내 몸에 남아있다. 어느 평론가에 의하면 그 영화에서 머리를 때린 횟수가 116회라고 하던데, 그런 지나친 폭력 뿐 아니라 조폭에 대해 우리가 연상하는 전형적인 모습들이 고스란히 재탕되어 있었던 것도 짜증이 났다. <가문의 위기>에서 오렌지를 영어로 ‘델몬트’라고 하는 건 나름대로 귀엽지만, 그 영화에서 비행기를 ‘KAL'이라고 하는 데는 멀미가 났다. 뭘 기대하고 보냐고 핀잔을 줄 사람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간에 투사부일체는 안만들어지는 게 훨씬 나은 영화였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투사부일체가 570만을 돌파하면서 코믹영화 부문 신기록을 작성했단다. 기가 막혔다. “어떻게 그런 영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하지만 그 영화의 배급사가 CJ라는 걸 떠올린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보려고 한 영화가 매진인 경우, 포기하는 경우가 35%, 다른 극장으로 옮겨 그 영화를 보려고 하는 경우가 15%인 반면, 사람들의 절반은 같은 극장 내에 있는 다른 영화를 본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니 스크린 수가 많다는 것은 곧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얘기,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당신이 그녀라면>이 별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막을 내린 반면, 제작비에 비해서는 망했다고 할 수 있지만 <해적>이 500만을 동원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엄청난 스크린 수에서 찾을 수 있겠다.
문제는 배급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 해도 극장에 걸리지 않는다면 관객과 소통될 수 없다. 극장에 걸린다해도 아주 멀리 있는 극장에서만 상영을 한다면, 그것도 낮 시간에만 상영을 한다면 누가 그걸 보겠는가. 누가 뭐라해도 작금의 한국영화의 중흥은 스크린쿼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극장들은 수익이 보장되는 헐리우드의 대작 대신 한국영화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상영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영화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영화는 안봐!”를 신조로 삼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한국영화에 몰렸으며, 결국 50%가 넘는 유래없는 점유율을 기록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전도사인 참여정부는 설연휴를 앞둔 1월 26일, 스크린쿼터를 전격적으로 축소함으로써 한국에서 잘 나가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인 영화산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초석을 놓는다. 미국과의 FTA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GDP가 5천억불을 헤아리고, 수출 규모가 천억불을 넘는 우리나라에서 잘봐줘야 50억불에 불과한 영화산업을 희생시키는 것이 왜 FTA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하는지도 역시 알지 못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우리 영화는 이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그건 순전히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돈 잘 버는 영화인들에 대한 시샘 때문인지 축소에 대한 반대여론도 예전만큼 높지 않다. 그들은 말한다. “한국 영화도 이제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고.
경쟁, 좋은 말이다. 하지만 말을 탄 사람과 포르쉐를 탄 사람의 경주가 말이 안되는 것처럼, 헐리우드와 우리 영화의 경쟁이란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다. 예전보다 많이 오르긴 했어도 우리 영화의 제작비는 평균 50억원도 채 안되며,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해적>도 200억에 못미친다. 반면 헐리우드에서는 2천만불을 써서 만든 영화는 흔하디흔하며, 2억불, 3억불을 들여서 만든 영화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 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연애의 목적>이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극장에 얼마나 걸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못내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