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술 목표를 100회 이하로 잡았다.

일주에 2회, 결코 만만치 않은 목표다.

하지만 요즘의 나를 보면 목표달성이 꼭 꿈만은 아닌 것 같다.

술을 안마시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니까.


월요일날

단란파 친구들이 가족 동반 모임을 했다.

가족이 없는지라 그런 데 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미국서 온 친구가 간만에 귀국했는데 안가면 서운할 것 같았다.

역시나 모임은 끝장이었다.

나 말고 다섯쌍이 왔는데

평균 1.8명의 자녀를 보유하고 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 애였고

혼자 앉아있는 내게 배려를 한다든지 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소재가 떨어질 때면 “넌 요즘 잘 지내냐?” “머리는 기르기로 했냐?”고 할 뿐.

평소에는 그런 상황에서도 잘 놀았는데

그날따라 나도 그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난 노트에다 최근에 본 ‘백 투 더 퓨쳐’ 감상문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두어시간 같이 있는데 왜 그렇게 지루했는지

음식이 맛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고량주를 따라준 친구에게

배탈이 났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술을 한잔도 안마셨다.

10시가 다 되어 헤어졌는데

그렇게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 뒤면 술 생각이 간절히 난다.

“누굴 불러 술을 마실까?” 고민하다가

그냥 집에 갔다.

술친구는 즐거울 때 만나야 하는 존재며

그들에겐 내 넋두리를 들어줘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고

러닝머신을 5킬로쯤 뛰다 잤다.


어제도 그랬다.

학생 문제로 아침에 잠깐 뛰어다닌 걸 제외하면

하루종일 ‘그놈의 노빈손’에 매달려 있었다.

잘만 하면 초고를 그날 보낼 수 있겠다 싶어서 더더욱 열심히 글을 썼다.

결국 오후 다섯시 반쯤 메일을 보냈고

3개월간 낑낑대던 일이 끝나서인지-물론 수많은 수정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몸이 텅 빈 것 같았다.

예년같으면 그 빈자리를 술로 채웠겠지만

어제는 그냥 집에 가자고 생각을 했다.

물론 버스를 기다리는데 높은 분한테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사랑스러운 써클 후배들과 술을 왕창 마셔버렸지만

큰일이 끝났음에도 술을 안마시려는 자세가 돋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 술자리에 가는 동안 또 다른 높은 분에게서 술마시자는 전화가 온 걸 보면

목표 달성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난 2차에 합류를 했고

높은 분이 거기까지 계산을 했다.

“3차는 제가 쏘죠.”

단란한 곳에 갔다면 내가 내야 했을 돈을 카드로 긁었다.

단란한 곳에 가서 쓰는 돈을 끔찍하게 아까워하는 나지만

어제 쓴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도 반가웠고

젊디젊은 학생들과 수다 떠는 게 정말로 즐거웠다.

올해 첫 술을 그들과 마셔서 좋았다.

집에 와서 라면을 먹은 게 옥의 티지만

술자리가 즐거워서인지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활기찬 하루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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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6-01-0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목표를 50회로 잡았는데, 이 추세라면 가능할 듯 합니다. .. 송년 모임도 두번인가 밖에 안가졌고, 올해도 4일째인데, 아직 술을 한번도 안 마셨으니까요.

비로그인 2006-01-0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제가 일년간 마시는 술의 양보다, 마태우스 님께서 하룻저녁에 드시는 술의 양이 더 많으실 듯. 흐흣 술 알레르기가 있는데 일년에 백회 이하라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술마신 다음날, 이렇게 일찍 일어나실 수도 있다니 신기합니다.

sweetrain 2006-01-0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님 토닥토닥...

BRINY 2006-01-0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술(알콜)이 아니라 첫 술(밥 한 술)인 줄 알았더니...

엔리꼬 2006-01-04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나네요.. '첫 술에 배부르랴' 쿨럭

비로그인 2006-01-04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내로 한 번 더 술일기 쓰셔야 겠네요 ^^

Mephistopheles 2006-01-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을 자주 안 접하는 저로써는 그냥 그 분위기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하늘바람 2006-01-0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죽하시면 영화감상문을 쓰셨을까요? 마음 푸셔요 마태우스님도 그렇게 아기 챙기실 날이 올거랍니다. 언제 그랬냐느듯 말이에요. 그런데 그놈의 노빈손 참궁금하군요

moonnight 2006-01-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동반 모임. 저도 참 뻘쭘해하죠. ^^; 애들 학원 얘기, 시부모 얘기, 재테크 얘기. 뭐 그런 얘기들 하고 있음 당연 재미없으니까 멍하니 딴 생각 하게 되고. 넌 왜 그리 조용하냐. 는 타박 듣고 얘기에 집중할라 해도 뭐, 또 재미가 없고. ^^; 수고많으셨어요. 토닥토닥. 올해 첫 술이 즐거우셨다니 저도 기뻐요. 저도 올핸 술을 도대체 몇 번 마시고 다니는 건지 한 번 세볼라고요. ^^; 마태님의 즐거운 술일기 올해도 기대할께요. ^^

2006-01-04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04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01-0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맞아. 결혼한 친구들 만나면 계속 애들 얘기, 아파트 값 오른 얘기, 이런 얘기들만 계속 해서 넘 지루해요. 2살 밖에 안된 애 유치원 어디 보낼지 까지 얘기하고, 어떤 마트가 분유가 제일 싸다 이런 얘기.... 당근 지루하죠. 그래서 저도 이런 모임을 피하게 되네요. 올해 100회 꼭 이루어질꺼예요!^^

플라시보 2006-01-04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 2회. 매우 양호하군요. 근데 워낙 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지라 지키려면 여간 어려운게 아니겠는걸요? 이제 님과 술 마시려면 번호표 받아들고 살포시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흐흐^^

모1 2006-01-05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 2회~성공하시길..

마태우스 2006-01-05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이번주는 어제로서 주 2회를 마셔버렸습니다. 근데 오늘 술약속이 또...첫주부터 이게 뭡니까ㅠㅠ
플라시보님/호홋, 그놈의 인기를 다스리는 게 목표달성의 관건이랍니다. 님이야 번호표를 안받아도 괜찮은 게, 새치기라는 게 있잖습니까^^
수선님/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100회 중에 님과의 술자리가 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속삭이신 분/아니어요.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는 게 너무도 안타깝네요. 그 회사 주식이라도 사놓을 걸...
속삭이신 분/지난번에 헤맨 탓에 이번엔 기필코 잘 찾아가야겠다고 생각 중이어요. 감사드립니다.
달밤님/멋진 경쟁자가 생겨서 좋습니다^^. 님의 첫 술일기, 아주 멋졌어요.
하늘바람님/들어가는 순간부터 소외감을 느꼈어요. 자리배치가 영... 그래서 좀 삐딱하게 됐죠...
메피스토펠레스님/전 술보다 분위기를 더 좋아해요. 첫 술자리같은 분위기라면 마셔도 안취할 것 같았어요(물론 더 마셨다간 정신을 잃었겠지요^^)
고양이님/저도 그럴 것같은 강력한 느낌이 드는데요^^
서림님/새로운 댓글의 황제로 서림님이 떠오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역시나....^^
브리니님/그러게 말입니다 호호호호.
단비님/열심히 하겠습니다!
주드님/제가 연속해서 술을 마시는 게 가능한 이유는 다음날 숙취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난다니깐요.
우는달님/님이 연말에 두번밖에 술을 안드셨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12월만 잘 버티면 50회 달성은 일도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