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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비숍님의 서재에서 이런 펌글을 봤다.
“알랭 드 보통의 시대가 온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아멜리 노통브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받는 외국작가 3인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셋이 모두 퇴조하면서 보통이 무섭게 뜨고 있다는 거다. 정말 그렇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국내는 서민 씨, 국외는 베르베르를 꼽았었다. 하지만 <뇌>를 읽으면서부터 베르베르와 멀어지기 시작했고, 노통브와는 올해 완전히 갈라섰다. 베르베르와 갈라선 이유는 소재의 진부함이었고, 노통브와 그리 된 이유는 특유의 대화체에 완전히 질려버린 탓이다. 그 공백을 폴 오스터나 존 그리샴같은 작가들이 차지하려 하지만 재미와 교양에 대한 내 갈망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러던 차,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보통이란 자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린 것.
처음으로 읽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란 책은 그의 진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여자와 사랑하다 헤어진다는 단순명쾌한 줄거리에 복잡다단한 심리묘사를 덧붙여 아름다운 장편소설로 만들었는데, 그 책에 충격을 받은 나는 닥치는 대로 그의 책을 사들이고 있다. <불안>은 <프루스트에게 물어보세요>에 이어 내가 읽은 보통의 세 번째 책이다. ‘불안’이란 주제로 얼마나 길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책을 읽기 시작하자 금세 사라졌고, 읽고 난 뒤 한 사흘 정도는 뿌듯함에 사로잡혀 식사량을 늘렸던 것 같다. ‘보통’은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해석해 주는데,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직장에서 잘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내게 어떤 길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고,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해법들을 읽는다고 해서 그 불안감이 없어지진 않는다 (하긴, 그 해법은 이미 알고 있다. 논문을 써라! 그것도 많이!). 하지만 고대와 현대, 그리고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을 접하면서 나 스스로가 유식한 사람이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즉 보통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된다. 대개 세편쯤 읽고나면 식상할 만도 하건만, ‘보통’은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새로움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우리가 늘 접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기에 더더욱 감탄스럽다.
저자인 ‘보통’은 69년생,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어리다. 변진섭이 ‘홀로된다는 것’을 부를 때 “내 동년배가 노래를 부르네?”라며 신기해하다가 서태지가 나왔을 때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오빠라고 하긴 좀 그러네.”라고 하다가, ‘언타이틀’이 ‘날개’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는 “야, 내가 어떻게 고교생이 부르는 노래를 좋아하고 있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곧 적응을 해 양파나 영턱스 노래를 열심히 따라불렀지만, 이제 노래 뿐 아니라 책에서도 나보다 젊은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 같다. 삼십대가 열흘밖에 안남은 지금, 그게 조금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