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부터 신설된 논문작성법을 내가 맡게 되었다. 평소 글 잘쓰고 의식있는 의사들을 동경했고, 우리 학생들이 그들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 왔던 내게, 논문작성법 강의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을 듯싶었다. 머리를 좀 굴리다 생각한 것이 외부의 저명인사를 모시자는 거였다. 난 김규항, 변정수, 오한숙희, 심윤경님을 섭외했고, 다행히도 응해 주셨다. 내가 줄곧 걱정한 것은, 이분들이 평생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알까, 그리고 내가 이 강의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위에 열거한 네분을 모조리 모르겠다고 한 학생들을 보면서 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주 ‘달의 제단’의 작가 심윤경님이 오셨다. 학생들은 늘 하던대로 많이 떠들었고, 토익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꽤 눈에 띄었다. 예과 2년이 끝나기 전에 토익 육백몇점을 넘겨야 본과에 가는데, 지난 2년간 뭘 했는지 이제야 토익공부를 하는 것이다.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은지 떠드는 학생들도 눈에 거슬렸다. 난 ‘출석 안부를 테니 나가도 좋다.’는 말을 하고 싶어 죽겠었다. 심작가의 말이다.

“제가 말을 하면 같이 떠들고, 말을 그치면 자기들도 그치더라구요. 그래서 누가 떠드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모시기 어려운 분을 모셨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오한숙희님이 오신 어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스타강사인 오숙희님 앞에서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바빴고, 역시 일부는 토익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오숙희님은 강의를 중단했다.

“전 누가 떠들면 흐름이 끊기거든요. 조용히 좀 하세요.”

내가 야단맞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야단을 맞고 나서는 태도가 좀 나아지긴 했어도, 한시간이 지나니 다시금 떠드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제발 좀 나가달라’는 말을 하고싶었던 여러번의 순간들을 난 그냥 참아냈다. 오숙희님은 전문가가 아닌 기능인으로 전락한 의사들을 비판했는데,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진 학생들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숙희님은 “시간이 부족해서 의사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사회 참여도 좀 해달라는 말을 못했다”며, 내게 대신 좀 전해 달라고 했다.  과연 그 강의가 도대체 몇 명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오숙희님에 의하면 “씨앗이 잉태되어 있는 사람만이 바뀔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학생들 중 그 씨앗을 품은 학생은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사실은, 오숙희님 강의를 들을 때 난 좀 더 희망에 차 있었다. 지난 토요일, 강의를 들은 여학생으로부터 편지를 한통 받았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구요 저번 논문과작성 시간에 들어오셨던 그 작가분 얘기 너무 인상적이어서요~그냥 뭐랄까...저도 작년에 중앙일보에 시나리오공모하다 떨어지고 그랬었거든요^^;; 아직 예과생밖에 안됐는데 전 가끔 의대가 답답하단 생각이들어서요 근데 떨어진 이래 (사실 다시보면 정말 형편없지만ㅋ) 글쓰기를 포기할까 그랬는데 그분 이야기를 듣고 힘이좀 났달까요^^뭐 실력도 없고 그냥 막연한 어떤 작은꿈을 추진할 능력도 용기도 없지만요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다시 꿈을 키우고 싶을때 힘이 날것같아서요~감사하단 말씀 드리고싶어서요^^; 저 외부강의 잘 주의깊게 안듣는데 그분강의 정말 인상깊게 들었다고 전해주세요~교수님께서 기분 안나쁘셨으면 좋겠네요~그럼 안녕히계세요.월요일날 뵙겠습니다]


이렇게 기분좋은 편지를 써놓고 왜 기분이 나쁠 걸 걱정하는 걸까. 이 편지는, 이 강의에 쏟는 나의 노력을 완전히 보상해 줬다. 최소한 한명은 이 강의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해준 그 여학생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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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5-11-15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명이라도 싹 틔우셨으면 됐습니다. 무엇을 더 바라시는 겁니까?^^ 쭉정이는 거름 먹고 자라봐야 귀찮기만 하답니다. ㅋ 그리고 왠만하면 떠드는 학생들은 나가라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하시면 좋겠지만) 주의를 주시는 것은 필요할 것 같아요. 일단 그분들을 모신 분은 마태우스님이시고 또 학생들은 마태우스님 학생들이니 그렇게 조치를 해주시는 것이 그분들을 모신 예의에 합당한 것 아닐까요?^^

야클 2005-11-15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학생 A학점에 한걸음 다가갔군요. ^^

로드무비 2005-11-15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명이 아닐 거예요.^^

깍두기 2005-11-1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들도 그렇게 떠든단 말이어요?
초등학생들 머라하지 말아야겠네.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키워서 저렇게 된건가?ㅡ_ㅡ;;;
떠드는 애들 혼 좀 내세요.

oldhand 2005-11-1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 강의 듣고 싶어요.

줄리 2005-11-1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여학생 제대로 배웠네요. 감사하는것이 있을때 제대로 표현할수 있는것 중요한것 같아요. 마태님, 늘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싸이런스 2005-11-15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 강의를 준비한 마태님에 걸맞는 감동적인 학생이네요. 마음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을 볼때마다 전 힘이 난답니다. 다 연소시켜 아무것도 남지 않을때까지 그 불 꺼뜨리지 않고 잘 돌보길.. 그 학생을 위해 작은 기도해봅니다.

moonnight 2005-11-1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그러게요. 초등학생도 아닌데 떠들어요? -_-; 요즘 아이들이 다른 건가요? 제가 대학교 다녔을 땐 최소한 수업시간에 떠드는 사람은 없었던 거 같은데. ;; 마태우스 교수님. 따끔하게 한 마디 하셔야겠는데요. 그리고 제 생각에도 감명받은 사람이 그 여학생 한 명만이 아닐 거에요. ^^

바람돌이 2005-11-1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대학생도 떠드는군요.
저는 한학년 정원이 16명이던 과를 다녀서인지 조는건 몰라도 대학 때 떠든다는건 생각도 못했거든요. 선택과목은 심지어 5-6명이서 들을때도 있었으니....

마태우스 2005-11-15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예과 학생들은 좀 떠드는 편입니다. 나름의 세계관에 빠져있다보니...
문나이트님/초등학교 애들은 훨씬 더 떠들겠죠 아마... 무슨 할말들이 그리 많은지, 내 스타일이야!<--썰렁하죠?
싸이런스님/님도 여전히 마음의 불꽃을 태우고 계시면서...^^
줄리님/이게 좋은 글이라면 순전히 훌륭한 편지 덕분이겠지요^^
올드핸드님/청강이라는 훌륭한 방법이 있사옵니다^^
깍두기님/제 강의 때라면 몰라도 저명인사의 강의 때는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는...
로드무비님/그러길 빌어요...최소한 한명이니 분명 그렇겠죠.
야클님/워낙 글을 잘쓰니 에이학점은 원래부터 따논 학생이었죠
로렌초님/맞습니다. 제가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방기하고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앞으론 열심히...

혜덕화 2005-11-1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나물에 물주면 물 다 빠져버려도 콩나물을 자란다고 하죠. 아이들이 떠들어도 자기 나름대로는 받아들일만큼 받아들였을 거예요. 님의 학생들은 행복하겠네요._()_

호랑녀 2005-11-1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마태님네 제자들은 좋겠네요. 그넘들, 지들이 얼마나 값진 시간을 가졌는지 아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2005-11-15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1 2005-11-1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한숙희 한분만 알겠네요. 그런데 그런 수업도 하는군요.

마태우스 2005-11-16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앗 김규항님 모르시는군요. 글 읽어보심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호랑녀님/나중에라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혜덕화님/콩나물을 이용해서 그리도 멋진 댓글을 달아주시는 혜덕화님, 감사합니다.

2005-11-16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1-16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1-16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