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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시대 -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알고 있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인물 분석의 대가 강준만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무수히 인용해가며 원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국내에서 발행하는 거의 모든 종이매체를 탐독하는데, 내가 읽은 <이건희 시대>에도 스포츠서울을 비롯한 일간지, 심지어 언론노보, 이름도 처음 듣는 월간지 <사람과 일터>를 포함한 354개의 참고문헌이 망라되어 있다. 이건희에 대해 강교수만큼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물텐데, 2만명에 달한다는 그의 인물파일은 그래서 현대 인물에 관한 자료로는 가장 뛰어날 것이다.
이런 성실성 외에 강교수는 타이밍도 뛰어나다. DJ의 정계복귀 직전에 나온 <김대중 죽이기>가 그의 집권에 큰 힘이 되었고, 2001년 말에 나온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은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을 가져왔으니 그를 가리켜 ‘킹메이커’라고 부르는 것도 전혀 과장은 아니다. 이 책 역시 고대 학위수여 사건과 X-파일을 통해 삼성이 주목받고 있는 현 시점을 고려하면 실로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이건희의 실체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경영자였고, 돈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았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몇가지만 얘기해 본다. 저자는 이건희가 “침묵 하나로 섹시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고 말한다. “...20, 3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건희는 압도적 우위로 매력적인 재벌총수 1위에 뽑혔는데, 그의 섹시함은 침묵의 카리스마로 평가가 내려졌다”(66-7쪽)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이건희는 무지하게 말을 많이 했다. 그것도 모자라 책도 여러권 냈는데 그를 어찌 ‘침묵의 카리스마’라고 부를 수가 있는가? 그가 하는 말이 모두 기사화되는 걸 감안하면 말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장단 회의에서 혼자 떠들고, “검은 양복에 흰양말은 안된다”는 소리까지 하는 사람을 ‘침묵자’라고 부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또하나 하고픈 얘기. 저자 역시 이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건희는 기업에 오너가 있어야 한다고 노상 주장한다. 이병철도 그랬지만, 이건희 역시 그의 윤리적 결함을 제외한다면 경제적으로는 뛰어난 경영자다. 하지만 이재용이, 그리고 그에게서 태어날 4세가 이건희처럼 유능한 경영자가 아니면 어떻게 하나?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건대 그건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집단지도체제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이재용이 계열사를 맡아서 수백억원의 손실을 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이건희의 말마다나 잠이 오지 않는다. 이재용에게 승계를 시키는 건 좋은데 이왕이면 경영 부문에서 능력이 검증된 뒤에 하든지, 영 자질이 없어 보인다면 셋이나 되는 딸에게도 기회를 주면 안될까? 노조를 박살냈다는 이유로 이건희가 “세계에서 유명한 남자 100명보다 낫다”고 평했던 대처 수상도 여자인데, 왜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딸들에게는 일말의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일까?
끝으로 한마디 더. 이 책을 읽고나서 난 이건희가 거의 회사에 출근을 안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소문도 있는 모양이던데, 역시 자기 회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서울서 천안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고, 기차에서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로서는 이 시각에도 요새처럼 지어놓은 집구석에서 은둔하고 있을 이건희가 참으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