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문자를 보냈다.
‘베란쇼에서 같이 나오던 박지훈 변호사는 요즘 틀면 나오던데, 넌 뭐하냐?’는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에서 수임료 대신 감자를 받아서 ‘감자변호사’로 잔잔한 감동을 준 박지훈은
베란다쇼 이후 법대법, 아궁이 등 여러 프로에 나오고 있고,
어제 확인한 바에 의하면 SBS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의 컬투법정에 고정출연하게 됐단다.
그에 비하면 난 몹시 초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주에 한번 라디오 게스트로 나가고, 한달에 두어번 ‘아침마당’에 얼굴을 디미는 게 전부니까.
물론 최근 메디컬X라는 케이블 프로에 나가게 됐지만,
첫회 녹화를 해본 결과 오래 못가 잘릴 것 같은 강력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난 박지훈이 부러운 것일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추구하는 바가 있듯이,
나와 박지훈은 목표 자체가 다르니 말이다.
난 방송에 그다지 소질도 없거니와 방송으로 일가를 이루겠다는 마음도 별로 없다.
방송에서 재미있는 말을 할 때보다 글로 회자될 때가 훨씬 더 좋다.
책을 내는 게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긴 했지만,
내고 싶은 책도 너무나 많다.
게다가 대학에서 기생충을 연구하는 내 일에 100% 만족하고 있고,
베란다쇼로 얻은 인지도로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강의를 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반면 박지훈의 목표는 좋은 방송인이 되는 것 같다.
변호사 일보다 방송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했고,
방송 일이 잡히면 미련없이 재판을 연기하는 그의 행적도 그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게다가 박지훈은, 전에 다른 지면에서 얘기한 바 있지만, 참 좋은 사람이다.
베란다쇼를 통해서 얻은 것 중 가장 소중한 게 인지도가 아니라 박지훈과 친구가 된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래서 난 박지훈이 방송에서 성공하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언젠가 박지훈이 <아침마당>에 나가게 됐다고 했을 때,
“와! 정말 잘됐다”라고 반응한 건 그러니까 빈말은 아니었다
그가 고정을 뛰는 케이블보다 시청률이 훨씬 잘 나오는 공중파 TV에 나오다보면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곳도 많아질 수 있잖은가?
안타깝게도 아직 박지훈의 방송실력은, 물론 나보다야 훨씬 낫지만, 아직은 정상급이 아니다.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내기보단 누군가 이끌어 줘야 빛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라디오긴 해도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하게 된 건,
컬투의 뛰어난 리딩능력을 고려하면, 정말 잘된 일이다 (의리있는 컬투가 고맙기까지 하다).
아니나다를까. 라디오 방송 첫날,
박지훈 변호사가 입담을 과시했다는 식의 기사가 여럿 올라왔고,
실시간검색어에도 그의 이름이 올랐다.
케이블이나 종편에 아무리 나와도 기사 하나 안뜨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박지훈은 이런 내 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난 그의 활약이 기쁘다.
이게 다, 가고자 하는 길이 다른 덕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 박지훈은 내가 자신을 아침마당에 추천했다고 생각하던데, 그건 아니다. 마초 역할을 하던 이만기 님이 김해시장에 출마한다고 해서 그 역할을 대신할 사람으로 발탁이 됐다. 그 얘기를 박지훈에게 한번 했는데도 여전히 그는 내가 추천했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