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븐포트와 윌리엄스가 만난 윔블던 결승전은 보기드문 명승부였다. 2시간 50분 가까운 경기시간 내내 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코트에 쏟아부었고, 파인플레이가 속출하는 멋진 경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경기 수준에 걸맞지 않은 해설이 옥의 티였다.


MBC ESPN에서 해설을 맡은 박성희는 90년대 한국 테니스의 희망이었고, 혼자 묵묵히 테니스 상위랭커의 꿈을 이루려 노력했던 선수다. 2회전의 문턱을 번번히 넘지 못했지만 그랜드슬램 무대를 밟았던 몇 안되는 한국 선수. 하지만 그랜드슬램 경험이 있다는 것과 해설을 잘한다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 MBC는 박선수를 계속 해설자로 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봤으면 한다.


-해설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아나운서와의 대화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성희는 시종일관 자신의 말만 했다. 예컨대 아나운서가 “지금 소변이 마렵습니다”라고 하면 “그럴 땐 화장실에 가야겠죠”란 말을 해주는 게 해설자일 것이다. 하지만.

아나운서: 비너스 윌리엄스는 윔블던에서 데이븐포트와 세 번의 대결을 펼쳤는데요, 그 중 한번이 결승전이었습니다. 그때 윌리엄스 선수가 이겼죠.

해설자: (그때 2-0으로 완승을 했죠 같은 말을 해야 하는데).........침묵..

아나운서: (머쓱)...


아나운서: 이번 게임을 따내면 데이븐포트에게 유리해지겠죠?

해설자: (침묵)

아나운서: (머쓱해서) 자, 데이븐포트 선수, 브레이크 기회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설자는 경기 전체를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박성희는 시종 이런 말만 했다.

“크로스로 온 걸 다운더 라인으로 연결시켜 포인트를 따냈습니다”

“찬스 볼이 온 걸 침착하게 위너를 만들어 냈습니다”

“윌리엄스 선수, 대단합니다. 데이븐포트의 서비스를 계속 위너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윌리엄스 선수가 네트에 대쉬해서 드롭샷으로 포인트를 따내는군요”


경기 상황을 그대로 읊는 것에 불과한 이 멘트들은 사실 아나운서가 해야 할 말이다. 해설자라면 상대가 어떤 전략을 세우는지, 그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예컨대 “데비븐포트 선수, 먼저 공격을 해야 합니다” “아, 포핸드 쪽으로 줘야죠. 저건 아닌데요...” “무조건 첫 서비스를 성공시켜야 합니다”같은 말이 해설자가 해야 할 말이라는 거다.


-한가지 더 요구하자면, 테니스를 보는 사람 중에는 직접 테니스를 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감안해 그들 눈높이에 맞추는 멘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렇게 공이 정점에 올랐을 때 치면 위력이 배가됩니다만, 아마 분들이 치면 다 아웃될 걸요. 그게 자세를 낮추지 않아서 그래요”

“저게 평범한 범실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코스를 다운더라인으로 갑자기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거든요. 더구나 상대방 스트로크가 얼마나 셉니까”

“저 드라이브 발리, 아마 분들 치시면 다 네트에 걸리는데요, 저걸 잘 치려면 미리 자리를 잡아야지, 움직이면서 치면 안돼요”


-선수 시절 겪었던 경험담도 섞어 주면 좋겠다. 예컨대 아나운서가 “저럴 땐 어떤 심정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죽고 싶겠죠” 같은 아마스러운 멘트보다는 “옛날에 제가 그라프 선수와 경기를 할 때가 있었어요. 스트로크가 어찌나 센지, 받을 생각도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거든요. 지금 윌리엄스 선수가 그런 심정이 아닐까 싶네요”라고 말하면 훨씬 더 흥미진진한 해설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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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0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이 하시는 편이 낫겠네요^^ 정말 선수 출신치고 해설 잘 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다니까요. 차명석 정도^^

야클 2005-07-0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마태우스님이 해설하시면 너무 재미있게 잘 하실것 같네요. 진짜루~~ 가끔 바둑같은 경우 프로기사가 아닌 아마고수들이 해설 참 재미있게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

마태우스 2005-07-03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제 말이 그말입니다. 하지만 전 혀가 짧아서 안되요 흑흑.
별사탕님/아 차명석 씨, 정말 대단한 분이죠. 저도 좋아하는 분이구요, 내년에 저희 강의 한번 모실 생각입니다...

하루(春) 2005-07-0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에스비에스 심야프로에 박세리 프로가 나왔는데, 박세리 말 다 잘라먹고 아나운서가 자기 혼자만 다 해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거 보면서 혼자 열받아서 저게 뭐냐구 했던 적 있는데... 그 해설자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문제 많네요.

클리오 2005-07-0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옳은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

싸이런스 2005-07-03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이해가 되든 안되는 관심이 가든 안가든....자꾸 눈에 띄는 짓을 해야할 빠순이의 숙명......

세실 2005-07-03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옳소~ 마태님 말씀이 백번 옳아요~
역시 해설자는 앵무새 같은 말보다는 생생한 방송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의무겠지요. 경험담도 들려주면서~~~ 저도 경기를 지켜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테니스는 아님).
아참 나 아직...삐짐모드인데.....바브

마태우스 2005-07-0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아이 세실님, 화 푸세요... 글구 왜 삐지셨는지 말 좀 해주세요, 네??? 앞으로 안그럴게요...
싸이런스님/호호, 이번 댓글 정말 웃겼습니다. 글구 너무 저를 크게만 보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저 술마시자면 별로 거절 안하는데^^
클리오님/그런 태도, 아주 훌륭합니다. 제가 그래서 클리오님 좋아하잖아요
하루님/그 해설자 혹시 눈이 작지 않습니까? 눈이 작으면 원래 돋보이려고 별 수단을 다 쓰거든요...

balmas 2005-07-04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잠깐 봤답니다. 막판에 7:6이 돼서 데븐포트가 이기나 했는데,
조금 있다 다시 보니 윌리엄스가 역전시켰더군요. 대단하더라구요.
박성희 씨는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 듯 ... 조금 있으면 더 나아지겠죠. ^^;;

마태우스 2005-07-04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그래요. 나중에는 나아지겠죠^^ 관록이 붙으면요

oldhand 2005-07-0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세트째 보다가 잠 들어버렸습니다. 야밤이라서 소리를 거의 죽여놓고 봤는데, 해설이 그모냥이었군요. 전에 MBC-ESPN에서 해설 하시던 분은 잘 하던데, 왜 생뚱맞게 박성희가 윔블던 중계방송 해설을 맡았는지..(그것도 생중계를) 이것도 스타 마케팅인가요?

마태우스 2005-07-0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전 2세트 보다 잠들었죠...^^ 아무래도 여자 경기는 여자 해설자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에 하시던 분은 남자였죠 아마?

딸기 2005-07-0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이제보니 마태우스님, 테니스 프로...시군요 ^^
(민망해라;;)

짱구아빠 2005-07-04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타티비에서 두 사람의 결승전 실황중계를 보았습니다. (물론 화면만 열심히 보았죠 ^ ^) ... 부러운 것은 테니스는 이렇게 여기저기서 중계 해주는데 스쿼시는 왜 안해주냐고요....스쿼시는 해설 겁나게 못해도 좋으니까 텔레비젼 중계만이라도 해주면 감지덕지입니다. 인터넷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보기는 하지만 화면도 자꾸 끊기고 해설없이 진행되어 많이 답답하더군요..마태님의 글의 맥락과는 상관없는 땡깡 한 번 부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