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스 관의 비밀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95
엘러리 퀸 지음, 윤종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엘러리 퀸의 책은 예전에 몇권 읽었는데,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리스 관의 비밀>을 읽게 된 것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는 데는 공포.추리가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을 읽고 나서 훨씬 더 울적해졌다. 어찌나 재미가 없는지 ‘엘러리 퀸 전성기 최고 걸작’이라는 선전 문구에 속은 나를 원망해야 했다.
엘러리 퀸은 제법 인간적인 탐정이다. 잘난 척을 무진장 하는 셜록 홈즈나, 정보를 혼자 쥐고 있다가 막판에 “너 그 집 운전기사지?” “네” “넌 하녀고?” “네” 이래가면서 읽는 이의 얼을 빼놓는 포와르에 비하면, 뻐기기도 하지만 실수도 곧잘 하는 엘러리 퀸은 훨씬 인간적이다. 즉, 주인공 혼자의 영웅담이 아니라 독자와 더불어 사건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엘러리 퀸의 소설은 진정한 추리소설이라 할만하다. 자신의 추리가 틀린 뒤 엘러리 퀸이 하는 말. “멋모르고 날뛰던 바보 같은 제 모습을 생각하면...겸손해 할 줄 모르고 이기적으로 으스대던 꼴을 좀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그게 한두번에 그치는 게 아니다. 다음번엔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하다가 아니고, 그 다음엔 저사람을 의심하고, 또 그다음엔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나중에는 머리가 지쳐버려, 종반에 나오는 “독자 니들도 한번 생각해봐”란 문구가 짜증스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상대가 한 말이 아니다 싶었을 때, 엘러리 퀸이 한 소리도 영 귀에 거슬린다.
“샘프슨 검사님, 그 동안 범죄를 다루면서 도대체 뭘 배우셨습니까?”
아무 직책도 없는, 경감의 아들에 불과한 사람이 나이 많은 검사한테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 뒤 치고받고 싸웠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니 검사가 성격이 좋거나, 경감 빽이 무서워서 참았나보다.
책이 하도 지루해 범인이 밝혀진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대신, 이제야 다 읽었구나 하면서 책을 집어던졌다. 제목에도 나온 ‘그리스 관’에는 뭐 그리 대단한 비밀도 없었으며, 이 책은 결코 엘러리 퀸의 ‘최고 걸작’이 아니다. 잠이 안와서 고민하는 분들, 엘러리 퀸과 동명이인이거나 저자들의 먼 친척, 번역자의 지인들께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