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혜리가 주연한 <파리애마>의 무대는 파리다. 난 그 영화를 개봉날 남자랑 봤는데, 유혜리의 싸인까지 받는 행운을 누렸다. 나중에 장가를 가라고 괴롭히는 엄마에게 싸인이 그려진 그녀 사진을 내밀었었다. 사진을 유심히 보던 우리 엄마, “너무 이쁜 여자랑 결혼하면 인생이 피곤해!”
하고자 하는 말은 유혜리가 아니라, 그 영화를 보면 파리 사람들은 때와 장소를 안가리고 키스를 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 사람들 허락을 맡고 찍은 건지 아닌지 몰라도, 아무 곳에서나 사랑의 표현을 하는 그들의 문화가 부러워 보였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대담한 스킨십을 하는 커플이 늘어났다. 남자가 여자를 무릎에 앉히는 일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며, 남자 손이 여자의 허리, 경우에 따라서는 히프에 가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드물긴 하지만 키스를 하기도 한다. 그런 걸 나이든 사람들은 “낯뜨거운”이라고 하던데, 난 잘 모르겠다. 남녀가 좋아해서 그 표현을 하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낯이 뜨거울까. 내 느낌을 말하자면 일단 봐서 좋고, 그리고 짜릿하기도 한다. 야한 장면을 보기 위해 극장에도 가는 판에, 실제 상황이 벌어지니 얼마나 짜릿한가. 아직은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데,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닌만큼 좀 떳떳하게 임해 줬으면 좋겠다. “남자가 조금 더 잘생겼으면 더 야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나와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어른들은 그걸 못마땅해 하는 눈치다. 모든 걸 ‘시기와 질투’로 해석하는 건 안좋은 버릇이지만, 여기선 한번 써먹어 보겠다. 어른들은 자기가 못그러니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닐까. 다 벗고 그런다면이야 안좋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키스 정도야 뭐가 나쁜가. 이와 관계없는 얘기지만 지나치게 노출을 한 미녀에게 뭐라고 한마디씩 안좋은 소리를 하는 것 역시 그 미녀와 잘될 수가 없다는 시기심에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자유주의자이자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 씨는 작년에 기발한 계획을 세웠다. 블랙데이라는 4월 14일에 5천쌍이 광화문에 모여 단체로 키스를 하는 것. 정확한 카운트를 위해 회비도 받고, 거기 상응하는 선물-티셔츠 등-도 주며, 홍보를 위해 유명한 커플, -예컨대 차인표, 신애라 씨 등-도 초대하는 멋진 행사였다. 하지만 그 계획을 발표하기 직전인 3월 12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고, 시민들은 광화문에 모여 키스 대신 촛불을 들고 “탄핵반대”를 외쳤다. 그러니까 그 탄핵은 우리나라 초유의 ‘키스데이’를 무산시켰으며, 애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은 아직도 머쓱하기만 하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정치는 예외가 없는지라 그런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스킨십은 정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