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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테라피 - 심리학, 영화 속에서 치유의 길을 찾다 ㅣ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의 테라피 시리즈 3
최명기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어느 아내나 그렇겠지만 내 아내 역시 잔소리가 좀 있는 편이다.
매사에 제대로 일처리를 못하는 내 특성상 잔소리가 필요하긴 하고,
아내 말이 대개 맞는지라 변명을 별로 안해 왔지만,
어제는 좀 달랐다.
아내: 왜 늦게 왔어?
나: 표를 늦게 예매했더니 매진이라, 늦은 기차를 탈 수밖에 없었어.
아내: 그러게 왜 그 모임을 갔어? 내가 가지 말랬지!
나: 미국서 5년만에 친구가 왔는데, 어떻게 안가냐?
내가 이렇게 한 건 어제 서울과 일산을 오가며 읽은 책 때문이었다.
정신과 의사 최명기가 쓴 <시네마테라피>는 영화, 그것도 좀 오래된 영화들을 소개한 책이다.
단순히 소개만 했다면 굳이 ‘정신과의사’를 강조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 책에서 영화는 인간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수단이 된다.
책 제목에 ‘치료’를 뜻하는 ‘테라피’가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
예를 들어 저자는 자살을 하고픈 충동이 일어날 때 <체리향기>를 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권한다.
실제로 그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노인의 말 때문에
죽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는데,
이 영화를 권하는 게 “죽을 용기로 남은 인생을 살아봐”같은 진부한 충고보다 자살을 막는 데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갑자기 아내의 잔소리에 토를 달게 계기도 이 책에 소개된
브레송 감독의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였다.
시골마을에 부임한 젊은 신부가 그 순진한 성격 때문에 마을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백작부인을 죽게 만들었다는 오해도 받는 등 갖은 고초를 겪다가 죽는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그 신부를 이용하고 오해한 마을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당하는 신부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든 게 “그는 해명하지 않는다”였다.
저자에 따르면 해명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하단다.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내가 갈수록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게 내가 해명을 안하기 때문이라는.
그 후 나는 아내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적극적 해명을 시도했고,
아내는 결국 폭발했다.
“아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토를 달고 그래? 잘못했으면 잘못한 거지!”
아내에게 설명했다. 사실 내가 이렇게 토를 단 게 다 <시네마테파피> 때문이라고.
아내는 말했다.
“그 책은 악마의 책이구만! 당장 갖다버려!”
좋은 책도 상황에 따라서는 악마의 책이 될 수 있는 법,
책에서 배운 지식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써먹자.
괜히 아내한테 저항했다가 더 크게 야단맞은 남편의 절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