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찍어 찬사를 받은 류승완이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들었을 때, 그의 팬들은 대중과 타협했다는 이유로-정확한 기억은 아니다-그를 비난했다. 소위 매니아를 거느린 감독은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영합하면 감독으로서의 성공은 어렵다. 영화라는 건 대중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이고, 그 대중 안에는 나처럼 우매한 사람도 포함된다 (아니 절대 다수가 나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매니아들은 좋아하는 감독이 나같은 사람에게 친절한 영화를 만들면 실망을 금치 못하고, 우르르 몰려가 비난을 한다.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떴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눈높이는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맞춰져 있지만, 난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 영화를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매니아들은 예술 영화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잣대를 대중영화 감독에게 적용시키고, 그 잣대에 따라 감독을, 그리고 영화를 비난한다. 그런 사람들이 비난하건 말건, 난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좋다. <주먹이 운다>처럼. 내게 있어서 류승완은 정말 좋은 감독이다.

류승범과 최민식, 두 연기파 배우가 나오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예전에 <히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첩혈쌍웅> 비슷한 뻔한 줄거리지만,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난 숨이 막혔었다. 그 느낌을 <주먹이 운다>의 두 배우로부터도 받을 수 있었다. 둘의 연기는 그만큼 훌륭했고,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화면이 꽉 차 보였다. 화면이 둘로 분할되어 둘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을 때, <히트>를 볼 때보다 훨씬 더 심하게 숨이 막혔었다. 최민식도 최민식이지만,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 류승범의 명연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달콤한 인생>의 폭력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진 데 반해, 이 영화에 나오는 폭력은 이야기의 맥락상 필요한 것으로 느껴졌기에 귀를 물어뜯는 엽기적인 장면에서도 난 짜증을 내지 않았다. 영화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의 인생이 교대로 나오면서 진행된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마다-특히 그게 한국 영화일 때는 더더욱-난 걱정이 된다. 끝이 안좋아서 지금까지의 재미가 다 날아갈까 봐. 다행히도 이 영화는 그런 용두사미식의 영화와 차원이 틀리다. 서로 다른 길에서 헤매던 둘은 결국 한 무대에서 만나는데, 그게 워낙 자연스러워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 만남이 너무도 짠하고 안타깝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권투 영화다. 민족주의적인 정서까지 더해져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각광을 받던 권투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훨씬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등장해서 일게다. TV나 영화 속의 폭력은 권투에 댈 게 아니며, 박진감 면에서 권투와 비교할 수 없는 K-1도 성행 중이다. 그러니 웬만한 폭력에는 사람들이 둔감해져 권투 같은 걸 볼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물론이고 <달콤한 인생>에서도 권투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면 권투를 부활시키려는 음모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음모에 편승했건 안했건간에,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본 느낌이다. 영화 자체도 워낙 재미있지만, 류승범을 포함해서 남자들의 누드를 원없이 볼 수 있다는 것도 여자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류승완, 류승범, 최민식 만세다.
* <친구> <실미도> <태극기> ... 순 남성 중심의 영화만 만들어지는 느낌..... 이 영화를 보고 울었던 나도 마초?